사람들끼리 어렸을 때의 추억을 이야기하다 보면 꼭 나오는 것이 할머니, 할아버지와의 일화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손자 손녀가 시험을 망쳤어도 별 것 아니라고 하신다. 재수를 하게 되어도 별 것 아니라고 하신다. 취업이 안 돼도 사람은 다 살게 되어 있다고 하신다. 하지만 오늘 입맛이 없어서 저녁을 안 먹었다고 말씀드리면 표정이 바뀌시며 세상 무슨 일이 있어도 밥은 먹어야 하는 것이라고 하신다.

고령자들이 공유하는 이 정서가 앞으로 전 세계의 정치와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것도 매우 많이. 출산률이 갈수록 낮아지는 동시에 평균 수명이 계속해서 길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10대, 20대는 신기술에 열광한다. 새 핸드폰 디자인이 중요하고, 친구들과 연락을 할 때에 자기들의 감정을 잘 표현해 줄 최신 이모티콘을 써야 하고, 멋진 차를 타고 싶어한다. 그리고 기업은 그 수요를 만족시키는 상품을 계속해서 만들어낸다.

점점 나이를 먹을수록 그런 것에서 관심이 멀어지게 된다. 3년 전 스마트폰을 줘도 카톡 되고 인터넷 되면 됐지 싶다. 이모티콘은 친밀한 인간관계와 별 상관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차는 튼튼하고 잘 굴러가기만 하면 된다. 자족, 화목, 평안, 안정, 익숙함 등의 단어와 점점 더 친밀해지게 된다.

지금 우리가 예상하는 미래의 모습은 모두 지금의 과학, 기술의 발전속도가 계속해서 유지될 것이라는 가정에 기반해 있다. 과연 그럴지 생각해보아야 한다.

"지금, 인류에게 부족한 것은 무력도 아니오, 경제력도 아니다. 자연과학의 힘은 아무리 많아도 좋으나 인류 전체로 보면 현재의 자연 과학만 가지고도 편안히 살아가기에 넉넉하다. 인류가 현재에 불행한 근본 이유는 인의가 부족하고 자비가 부족하고 사랑이 부족한 때문이다. 이 마음만 발달이 되면 현재의 물질력으로 20억이 다 편안히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백범 김구의 '나의 소원'에 나오는 유명한 구절이다.

인류 전체로 보면 현재의 자연 과학만 가지고도 편안히 살아가기에 부족함이 없다는 이 사상을 고령화 사회에서는 많은 사람이 공유하게 될 것이다. 재수를 피하는 것 보다 끼니를 제 때 먹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사고가 점점 더 널리 퍼질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미래 사회에서의 과학 및 기술 발전은 지금과는 그 형태가 매우 다를 것이다.

'글쓰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생 뭐 있나의 두 가지 의미  (0) 2020.05.21
최소한 시신은 없었다  (0) 2020.05.17
가락  (0) 2020.04.06
이어령 선생님과의 대화  (0) 2020.01.12
저출산 대책  (0) 2019.11.21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