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손처럼 많은 오해를 받고 있는 기독교 덕목도 없을 것이다. 겸손은 기독교에서 매우 강조되는 덕목이지만 정작 어떻게 하는 것이 겸손인지에 대한 논의는 그다지 많지 않다. 그러다 보니 한국 문화에서 말하는 겸손과 기독교의 겸손을 혼동해서 자기 자신을 비하하는 것이 겸손인 줄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마태복음 16:24)" 라는 구절이 종종 맥락에 맞지 않게 잘못 인용되고, 사람들의 칭찬에 "아니에요~" 내지는 "아유 저는 실력 하나도 없는 사람이에요~" 라고 대답하는 것이 겸손한 것으로 여겨지곤 한다.

성경에서 말하는 겸손은 그런 것이 아니다. 예수님은 스스로 겸손하다고 하셨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마태복음 11:29)" 그 예수님께서 또한 이렇게 말씀하셨다. "...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마태복음 28:18)"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다 받았다고 공개적으로 말씀하시는 모습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겸손과는 거리가 멀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기 때문에 그렇게 당당하게 말씀하실 수 있으셨던 것이고, 그것을 우리에게 바로 적용하는 것은 어렵다고 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바울도 비슷한 모습을 보여줬다. 사도행전 20장에서 바울은 자기가 겸손하다고 말한다. "나는 겸손과 많은 눈물로, 주님을 섬겼습니다. ... (사도행전 20:19, 새번역)" 그 바울은 같은 20장에서 또 이렇게 말한다 "나는 모든 일에서 여러분에게 본을 보였습니다. ... (사도행전 20:35, 새번역)" 한국 문화에서라면 "내가 한다고 열심히 했지만 그래도 부족한 게 많았을 줄로 압니다." 같은 말이 나와야 할 것 같은 상황인데 바울은 자기가 모든 일에 대해 다른 사람들에게 본을 보였다고 당당히 말한다.

성경이 말하는 겸손은 있는 것을 있는 그대로 말하는 것이지 스스로를 깎아내리는 것이 아니다. 자기 자식이 밖에 나가서 "저는 능력도 없고 부족하고 할 줄 아는 것도 없고..." 하며 자기 비하를 입에 달고 다니는 것을 좋아하는 부모는 없을 것이다. 하나님 아버지도 자녀가 스스로를 비하하고 멸시하는 것을 원하지 않으신다. 그런 것은 참된 겸손이 아니라 짝퉁 겸손이요 겸손의 모조품이다.

하지만 이것을 오해해서 시험을 잘 본 후에 모든 반 친구들 앞에서 "나는 너네들보다 똑똑해" 라고 한다거나, 사업에 성공해서 큰 돈을 번 뒤에 다른 사람들에게 "나는 당신들보다 능력이 훨씬 뛰어나" 라고 하는 것이 겸손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그것은 사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상황상 맞는 말 같아 보이는데 왜 사실이 아니라는 걸까?

기독교인은 자기의 모든 능력의 원천이 하나님이시며 또한 내가 이룬 그 모든 일도 하나님께서 그렇게 되게 해 주셨기에 가능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내가 잘 해서 일이 잘 되었다고 하는 것은 기독교 사상에 맞지 않는다. 예수님은 스스로를 가리키시며 "... 아들은 아버지께서 하시는 것을 보는 대로 따라 할 뿐이요, 아무것도 마음대로 할 수 없다. ... (요한복음 5:19, 새번역)" 라고 하셨고, 사람들에게는 "... 너희는 나를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요한복음 15:5, 새번역)" 라고 하셨다. 바울이 한 말을 보면 더욱 이해가 잘 된다. "그렇다면 아볼로는 무엇이고, 바울은 무엇입니까? 아볼로와 나는 여러분을 믿게 한 일꾼들이며, 주님께서 우리에게 각각 맡겨 주신 대로 일하였을 뿐입니다. 나는 심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자라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심는 사람이나 물 주는 사람은 아무것도 아니요, 자라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고린도전서 3:5-7, 새번역)"

각 사람은 자기의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 능력도 사실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것이다. 하지만 그 점은 차치하더라도, 사람이 자기 능력으로 무언가를 열심히 하더라도 그 일이 이루어질 것인지를 결정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신 것이다. 바울이 자기가 씨앗을 심고 아볼로가 물을 주었지만 그 씨앗이 싹을 틔우고 자라도록 하신 분은 하나님이시라고 말했던 것과 같이 말이다. 그것을 인정하는 것이 겸손이다.

정리하자면 첫째로, 사람의 능력이 뛰어날 수 있다. 그러나 둘째로, 사람의 능력이 아무리 뛰어나더라도 하나님께서 문을 열어 주시지 않으면 그 사람은 아무것도 이룰 수가 없다. 이 두 가지 중 하나만 생각하고 강조하는 데에서 겸손에 대한 오해가 생긴다. 둘째만 강조하다 보면 내가 가진 능력을 깎아내리고 스스로를 비하하는 것을 겸손이라고 착각하게 되고, 반대로 첫째만 강조하다 보면 내 삶에서 이루어진 모든 것들이 다 내가 열심히 하고 잘 해서 된 것이라고 생각하는 교만에 빠지게 된다. 첫째와 둘째를 잘 조화시키는 것이 건강한 겸손을 이루는 길이다. 삼국지에서 제갈량이 탄식하며 외친 말이 좋은 마무리가 될 것이다. 모사재인 성사재천 불가강야(謀事在人 成事在天 不可强也), "일을 꾸미는 것은 사람이지만 그 일이 이루어지는 것은 하늘에 달려 있다더니, 정말이지 억지로 할 수가 없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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