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산을 업으로 삼다 보니 습관적으로 최적화를 생각하게 된다. 코드를 이렇게 바꾸면 속도가 몇 퍼센트 빨라질까에서부터 시작해 몇 시 몇 분에 집에서 나가서 몇 번 버스를 몇 분 동안 기다리다가 그래도 버스가 안 오면 전철을 타고 가는 것이 소요 시간의 기대값을 가장 짧게 만들까 하는 생각에 이르기까지 최적화라는 주제는 항상 내 머릿속에 박혀 있다. 어쩌면 벽(癖)이라고 불러도 무리가 없을 것 같다.

그래서 집에서 설거지를 할 때면 종종 동시에 세탁기를 돌려 놓곤 했다. 세탁기는 무조건 한 시간동안 돌아야 하니 설거지를 하는 동안 세탁기를 돌려 놓으면 설거지가 끝날 때 즈음에 세탁도 얼추 끝날 거고, 그러면 시간 낭비 없이 바로 빨래를 널 수 있지 않는가. 이걸 전산 용어로는 파이프라이닝(pipelining) 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런 방식이 시간의 양은 최적화해주지만 시간의 질은 최적화해주지 않는다는 것을 요즘 깨닫고 있다.

설거지를 마쳐갈 때 즈음이면 커피 한 잔 내려 마시면서 조금이라도 쉬고 싶은 생각이 든다. 그러다가 책장에 꽂혀 있는 책도 한 번 꺼내서 뒤적거려 보게 되고, 아니면 노래라도 한 곡 듣게 될 것이다. 아니면 한 10분 정도 잠깐 누워서 눈을 감고 조용히 있을 수도 있겠지. 어쩌면 때맞춰 창 밖에서 짹짹거리는 새 소리를 듣게 될 지도 모른다.

그런데 설거지를 끝내고 나면 빨래도 딱 맞춰서 끝나 있으니 커피도 못 마시고, 책도 못 펼쳐 보고, 노래도 못 듣고, 잠깐 누워있거나 새 소리를 듣는 것은 더더욱 못한 채 바로 빨래를 널어야 한다. 그렇게 빨래를 다 널고 제습기까지 틀고 나면 마치 내일의 죠의 마지막 장면처럼 털썩 주저앉아서 "하얗게 불태웠어..." 라고 중얼거리게 된다. 시간이 많이 생기기는 했지만 그 시간은 내가 힘이 다 빠진 채 널부러져 있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죽은 시간이다.

사실 생각해보면 전산에서도 마찬가지다. 시간을 최적화하면 필연적으로 CPU 사용량은 올라가게 되어 있다. 쉽게 말해 스마트폰이 뜨끈뜨끈해지고 배터리가 빨리 닳게, '광탈하게' 되는 것이다.

이제는 시간의 양이 아니라 질을 생각해야 할 때이다. 레닌은 양이 곧 질이라고 했다지만 그 말은 적어도 설거지와 빨래 후의 쉬는 시간에는 적용되지 않는 것이 분명하다. 지금도 다 된 빨래가 세탁기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지만 무시한 채 이렇게 조금이라도 쉬려고 앉아 있으니 새 글 하나를 쓸 수 있지 않았나. 자, 이제는 설거지 할 때는 설거지만, 빨래 할 때는 빨래만 하자. 그 사이의 비는 시간은 최적화해서 없애버려야 하는 시간이 아니라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 기지개라도 키고 커피라도 한 잔 내려 마셔야 하는 생명의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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