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리포니아 2022 - 10. 세상이 굴러가게 하는 비용 5.5 달러


LA 시내를 돌아다니다가 블루보틀 매장에 들어갔다. 이게 그 유명하다는 푸른 병 카페란 말이지. 깔끔하고 한적한 매장에 들어가 5.5 달러 짜리 아이스 볼드 12온스 커피를 시켰다. 유명세 치고는 손님이 굉장히 적어서 대형 테이블을 나 혼자 쓰는 호사를 누렸다.

커피를 마시는데 매장 유리 밖으로 노숙자가 보였다. 지나가는 사람들과 신호에 걸린 차에게 계속해서 시비를 걸고 있었다. 한참을 그러고 있는 모습을 보며 거 참 난폭하네, 하고 생각을 하고 있는데 그 노숙자가 갑자기 카페 쪽으로 걸어왔다. 어?

순식간에 매장 안으로 들어온 노숙자는 손님들에게 시비를 걸지는 않았지만 대신 매장에 전시되어 있는 물건들을 괜히 건드리고 다녔고, 잠시 후 카운터로 가서 뭐라고 뭐라고 말을 하더니 커피 두 잔을 공짜로 받아서 양손에 들고 유유히 카페를 나섰다. 그러더니 지나가는 차에 커피를 뿌려대고 남은 커피는 땅에 쏟아버리고는 다른 곳으로 갔다.

그 광경을 본 후 고개를 숙여 내 커피를 보았다. 순간 나는 돈을 내고 커피를 사 마시는데 가게에 들어와서 난리친 사람은 커피 두 잔을 공짜로 받아갔다는 생각이 들어 피식 웃음이 나왔다. 카페 관리자 입장에서야 언제 올 지 모르는 경찰에게 신고하고, 기다리고, 그 동안 그 노숙자가 손님들에게 난동을 부리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느니 커피 두 잔 쥐어 보내는 것이 이득이었겠지. 그런데 그러면 나 같은 얌전한 손님들은 뭔가 억울하지 않나?

그런 생각을 잠시 하다가 그러거나 말거나 하고 한번 풋 웃어버리고는 남은 커피를 마저 마셨다. 창 밖에서는 또 다른 노숙자가 어디선가 나타나 길 건너편에 있는 멕시코 치킨집에 들어가서 소란을 피우는가 싶더니 잠시 후 치킨을 손에 들고 나오고 있었다.

반 년도 더 지난 지금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든다. 그 때 내가 냈던 5.5 달러는 그 곳에서 내가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면서 커피를 마시기 위한 비용이었다고.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희한하게도 그 좋은 일을 하면 내가 상을 받는 것이 아니라 내가 돈을, 혹은 시간을, 혹은 정성을 써야 한다. 커피를 예로 들자면 남에게 폐를 끼치면 커피를 공짜로 받지만 얌전히 있으면 커피를 마시기 위해 돈을 내야 하는 것이지. 계산기를 두드려보면 행패를 부리는 게 이득이다. 하지만 세상은 이런 계산은 치워버리고 그러거나 말거나 규칙을 지키며 살아가는 사람들 덕에 굴러간다. 그렇게 나는 그 날 세상이 굴러가게 하는 비용 5.5 달러를 냈다.

캘리포니아 2022 - 9.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https://youtu.be/PVvgPrHEqCA

 

대학생 때 한 달 넘게 일본 배낭여행을 간 적이 있었다. 하루에 한국 돈 약 4만원 정도로 숙박비와 식비를 포함한 여행비를 충당하던 빠듯한 여행이었다. 여행 중 오키나와에서 우민추(海人, 바닷사람이라는 뜻의 오키나와어)라고 적혀있는 티셔츠를 보았었는데 맘에 쏙 들었지만 한국 돈으로 약 2만원 정도 되던 금액이 당시에는 부담이 되어 몇 날 며칠을 고민하다 오키나와를 떠날 때까지 결국 사지 못했다. 웃기게도 그렇게 돈을 아껴서 그랬는지 여행 후반에는 돈이 남았었다. 그 티셔츠를 몇 장은 충분히 살 수 있을 정도로.

비록 티셔츠는 못 샀지만 그 경험 덕에 깨달은 것이 있다. 살까 말까 고민되면 일상에서는 사지 말아야 하지만 여행중에는 사야 하고, 할까 말까 고민되면 일상에서는 하지 말아야 하지만 여행중에는 해야 한다. 일상에서는 다음, 다다음 기회가 있지만 여행중에는 기회가 한 번씩 밖에 없기 때문이다. 설령 나중에 후회하더라도 여행 중에는 하고 나서 후회하는 것이 하지 않고 아쉬워하는 것 보다 낫다.

캘리포니아 1번 주도(州道)에서의 운전이 7시간을 넘어 8시간 째로 접어들던 때였다. 해는 뉘엿뉘엿 져 가고 도로에는 산그림자가 깔리기 시작했다. 이제는 밤이 되기 전에 빨리 산타 바바라에 도착해서 숙소에 짐을 풀어야 했다. 1번 주도를 달리며 태평양을 보겠다는 목표는 이미 충분히 달성한 후였다. 1번 주도가 아직 남아있기는 했지만 남은 부분은 바닷가가 아니라 내륙의 외진 마을들을 거쳐가는 길이었다. 내비게이션은 빙빙 돌아가는 1번 주도 대신 가까운 길을 알려주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1번 주도를 더 달려보고 싶었다. 특별히 그래야 할 이유는 없었다. 반대로 그러지 말아야 할 이유는 많았다. 11년만에 운전대를 잡은 것이어서 아직 밤 운전은 위험했고, 남아있는 1번 주도는 딱히 특별할 것이 없는 평범한 도로일 것 같아 보였으며, 내일의 일정을 생각하면 조금이라도 빨리 숙소에 도착해서 쉬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하지만 결국 고민 끝에 잠시 차를 멈추고 일부러 강제로 1번 주도를 달리도록 네비게이션을 재설정했다. 이유는 단 하나였다. 그러고 싶어서. 숙소에 좀 늦게 도착하면 어떻고 다음날 좀 피곤하면 어때. 여행중에 할까 말까 고민될 때에는 모름지기 해야 한다.

캘리포니아 1번 주도는 태평양 해안 도로 (Pacific Coast Highway, PCH), 카브릴로 도로 (Cabrillo Highway), 쇼어라인 도로 (Shoreline Highway), 해안 도로 (Coast Highway) 등의 구간으로 나뉘는데 보통 여행 책자에서 소개하는 캘리포니아 1번 주도는 태평양 해안 도로 구간이다. 강한 바람, 깎아지른 절벽, 태평양이 만들어내는 육중한 파도와 굉음이 계속해서 이어지는 길로, 내가 그 날 오전부터 줄기차게 달려왔던 바로 그 길이었다. 이제 태평양 해안 도로는 끝이 났고, 내가 네비게이션의 충고를 무시하고 더 가기로 한 캘리포니아 1번 주도는 카브릴로 도로 (Cabrillo Highway) 구간이었다.

별 기대 없이 들어선 카브릴로 도로는 조용한 시골길, 정지용 시인의 시 '향수'의 표현을 빌자면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그런 곳이었다. 하지만 그래서 좋았다. 특별히 멋지거나 화려한 경치는 없었지만 그렇기 때문에 마음이 편안해졌다. 사람도 차도 거의 없는 시골길을 운전하며 카브릴로 도로의 한적함을 충분히 누리고 또 누렸다. 낮 내내 태평양 해안 도로를 달리며 바람과 절벽과 파도와 바다 때문에 흥분되었던 마음이 시골길을 천천히 달리는 동안 기분 좋게 차분해졌다.

소설은 발단, 전개, 위기, 절정을 거쳐 결말이 나야 하고 한시(漢詩)는 기, 승, 전을 지나 결까지 가야 한다. 독자를 흥분시키고 긴장하게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마지막에 가서 독자의 긴장을 풀어주고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는 것 역시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카브릴로 도로는 캘리포니아 1번 주도를 달리는 사람이라면 꼭 가 보아야 하는 곳이다. 태평양 해안 도로가 1번 주도의 절정이라면 카브릴로 도로는 잔잔한 마무리다. '향수'의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다는 표현이 참 잘 어울리는 곳, 그래서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히겠냐는 그 다음 표현 역시 참 잘 어울리는 곳이 바로 카브릴로 도로다.

카브릴로 도로는 롬폭(Lompoc)이라는 마을을 지나면서 끝이 났고 그 즈음부터 산타 바바라까지는 미국 101번 국도가 캘리포니아 1번 주도를 대체하면서 1번 주도가 잠시 끊어져 있었다. 해는 진작에 다 져서 깜깜한 밤이었고 아침에 운전을 시작한 지 10시간이 지나서야 산타 바바라의 숙소에 들어설 수 있었다. 체크인을 하면서 직원과 이야기를 하다가 오늘 아침에 몬터레이에서 출발해서 온 거라고 했더니 직원이 말했다. "와우, 롱 트립."

101번 국도 때문에 끊어진 캘리포니아 1번 주도는 산타 바바라 이후에 다시 나타나서 LA로 향하게 된다. 원하면 다음 날 1번 주도를 더 탈 수도 있었다. 하지만 카브릴로 도로가 내 캘리포니아 1번 주도 여행을 잘 마무리해 주었기에 더 이상 미련은 없었다. 내일 LA로 갈 때에는 고속도로를 타야지. 노곤한 몸으로 기분좋게 잠에 들었다.


캘리포니아 2022 - 8. 인생은 운전

나는 하나를 완벽히 끝내지 않으면 다음 단계로 잘 넘어가지 못하는 성격이다. 어릴 때 비디오 게임을 할 때면 화면에 나타나는 동전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다 먹어야 했고 이야기 진행이 중요한 컴퓨터 게임을 할 때면 맵에 있는 장소를 다 방문하고 모든 등장인물을 다 만나봐야 직성이 풀렸다. 대학원생 때는 기말고사까지 다 끝난 다음에도 수업 때 이해가 가지 않았던 내용을 들고 교수님을 찾아갔었고, 대학교 때 배웠던 함수형 프로그래밍 언어가 깊이 이해가 가지 않아 사회인이 된 지금까지도 시간이 날 때마다 틈틈이 함수형 프로그래밍 언어 공부를 시도해 왔다.

이런 나에게 있어 볼거리가 넘쳐나는 캘리포니아 1번 주도(州道)에서의 운전은 어떤 의미에서 고역이었다. 황홀한 풍경이 쉬지 않고 계속해서 나타났지만 나는 계속 앞만 보고 차만 몰아야 했다. 낮에는 그래도 마음에 여유가 있어서 도로 옆 간이 쉼터 공간이 나타나면 차를 대고 경치를 보곤 했지만 해가 조금씩 붉은빛을 띠며 서쪽 수평선에 가까워지기 시작한 후로는 마음이 급해져서 비어있는 도로를 끝없이 달리고 또 달렸다.

그렇게 달리다 보니 끝없이 이어질 것만 같던 깎아지른 해안 절벽과 삐죽삐죽한 젊은 산들이 어느새 시나브로 사라지고 그 자리를 둔탁하게 닳은 오래된 얕은 언덕과 초원이 메우고 있었다. 하얗게 쨍했던 한낮의 햇빛이 북쪽의 날카로운 절벽과 참 잘 어울렸다면 붉은 기가 도는 초저녁의 햇빛은 얕은 언덕과 초원에 잘 어울렸다. 어느새 이렇게 경치가 바뀌었지 하고 놀라던 찰나 멀리 무언가 검은 것이 보였다. 자세히 보니 소였다. 여러 마리의 소가 넓은 풀밭을 돌아다니며 자유롭게 풀을 뜯고 있었다.

아, 이게 말로만 듣던 방목형 목장이구나. 소들이 주인도 없이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게 신기해서 자세히 보고 싶었지만 목장이 도로 옆에 있었기에 소를 오랫동안 볼 수가 없었다. 운전자에게는 전방 주시의 의무가 있지 않나. 못내 아쉬워 운전하면서 고개를 잠깐씩 돌려 소들을 보려 했지만 그러자 운전도 잘 안 되고 소도 잘 안 보였다. 그렇게 한참을 시도하다가 결국에는 소를 제대로 보는 것을 포기하기로 했다. 아쉬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소를 보자고 도로 한복판에서 멈출 수도, 아니면 차를 돌려 오던 길을 되돌아갈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이 소들은 - 적어도 이번 여행에서는 - 내가 자세히 관찰할 정물화의 대상이 아니라 휙휙 지나가는 크로키의 대상이라는 것을 인정하기로 했다. 그러자 마음이 편해졌다.

인생은 유턴 없는 운전과 참 비슷하다. 유턴 없는 길에서는 한번 지나온 곳에 다시 갈 수 없고, 인생에서는 한번 지나온 시간을 다시 살 수 없다. 운전을 하다가 창 밖에 있는 소를 제대로 보지 못 했더라도 다시 볼 수 있는 방법은 없고, 살면서 제대로 하지 못해 후회되는 일이 있더라도 그 시간으로 되돌아가 그 일을 고칠 수는 없다. 갈림길 직전에 방향을 잘못 잡고 있는 것을 깨달았다면 우물쭈물할 시간 없이 바로 그 순간 잽싸게 길을 바꿔야 한다. 그렇게 계속해서 수많은 아쉬움을 남기며 앞으로 앞으로 가야 하는 것이 운전이고 우리의 삶이다. 그리고 지금 놓친 풍경에 아쉬워하기보다는 앞에 있는 모퉁이를 돌았을 때 갑자기 눈앞에 펼쳐질 장관을 기대하는 것이 여행자의 바른 운전 태도이고 바른 삶의 태도이다. 덧붙이자면 그렇게 멋진 경치가 많이 나타날 길을 선택하는 것이 삶의 지혜이고.

이런 생각을 하자 마음이 편해졌고 해는 점점 지면서 붉다 못해 주황색이 된 게으른 빛을 느릿느릿 뿌리고 있었다. 그 빛을 받으며 나는 남으로 남으로 향했다. 그리고 한참 뒤 이야기이지만, 캘리포니아 여행을 다 마치고 집에 돌아간 나는 책장에 있던 함수형 프로그래밍 언어 책을 버릴 수 있었다.

 

캘리포니아 2022 - 2. 나는 태평양을 볼 거야

 

비행기를 탈 때의 복장은 편한 게 제일이라는 것이 내 지론이다. 특히나 장거리를 가야 할 때는 더욱 그렇다. 흔히들 쪼리라고 부르는 플립플랍을 신고 바지도 통이 넓은 것으로 골라 입었다. 디스크로 고생한 후로는 목베개와 허리 쿠션도 챙겨서 다닌다. 환승 비행기는 나리타 공항에서 오후 5시 이륙이었는데 샌프란시스코는 그 때가 밤 1시였다. 미국에서 상당히 빡빡한 일정이 기다리고 있었기에 시차적응으로 고생하고 싶지 않아서 비행기가 이륙하자 마자 멜라토닌을 먹고 바로 잠을 청했다. 새벽같이 집에서 나왔어서 피곤해서 그랬는지 멜라토닌이 잘 들어서 그랬는지 비행기에서 아주 잘 잤다. 아마도 둘 다 때문이었겠지. 중간에 깨서 기내식을 먹을 때에는 일본 비행기라 간만에 일본어도 써 볼 수 있었다. 그래봤자 "주스 오네가이시마스 (주스 주세요)" 정도였지만.

 

얼마나 잤을까. 시계를 보니 샌프란시스코 기준으로는 아침이었기에 그 때부터는 커피를 마시며 기를 쓰고 깨어 있었다. "고히 오네가이시마스 (커피 주세요)." 창밖을 보니 땅이 보였다. 미국이구나. 주거 지역 바로 옆에 진부한 표현이지만 끝이 없는 산맥이 이어지고 있었다. 자연, 그것도 그냥 자연이 아니라 대자연이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자연. 이번 미국 여행의 목표 중 하나는 자연이었다. 홍콩에 살면서 도시는, 사람이 만든 물질 문명은 질릴 정도로 보았다. 1 제곱 킬로미터마다 캘리포니아에서는 98명이 살고 홍콩에서는 6300명이 산다고 한다. 한국은 516명.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고들 하고 나는 그 말에 동의하지만, 어쨌건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운지 아닌지를 알려면 꽃을 좀 볼 수는 있어야 하지 않나. 사람이 멋지게 가꾸어 놓은 화단의 꽃이 아니라 산, 들, 길가에 스스로 피어 있는 그런 꽃들을 말이다. 사람으로 꽉 찬 도시에서는 자연을 찾아보기가 힘들다. 자연은 사람이 자취를 감춘 후에야 자기를 드러내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자연은 무심하고 무정하다. 자연은 사람이 왜 자취를 감추었는지 전혀 신경쓰지 않는다. 그래서 김훈 작가는 셀 수도 없이 많은 사람이 죽은 전쟁인 임진왜란을 다룬 '칼의 노래'를 이렇게 시작했다.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

 

비행기는 점점 낮아졌고 내 아래에 있던 구름은 정확히 내 눈높이로 올라오더니 이윽고 하늘 위로 올라가 버렸다. 이젠 비행기에서 내릴 시간이었다. 미국에 왜 왔냐는 입국 심사 직원의 질문에 학회에 참석하기 위해 왔다고 대답했다. 돌아가는 항공권이 있냐길래 보여줬더니 왜 샌프란시스코로 들어와서 LA에서 나가냐, LA까진 어떻게 갈 거냐고 물어왔다. 차를 빌려서 LA까지 갈 거야. 손으로 운전하는 시늉을 하며 말했더니 그렇게 운전한다고? 하며 되묻고는 오케이, 통과.

 

시차 덕분에 나중에 돌아갈 때 뱉어내게 될 하루를 벌었다. 회전초밥처럼 빙글빙글 돌고 있는 짐을 찾아서 입국장으로 향했다. 입국장으로 향하는 금속 문 위에 붙어 있는 문구가 나를 반겨줬다. 웰컴 투 샌프란시스코. 입국 심사 직원에게 미처 다 하지 못한 이야기가 마음 속에서 뛰기 시작했다. 차를 빌려서 LA까지 갈 거야. 나는 태평양을 볼 거야.


중국 서남부에 있는 운남(雲南) 성은 인도, 사우디 아라비아, 이집트 등과 같은 위도에 있지만 고도가 높아서 여름에도 서늘한 곳이다. 운남성 여강(麗江) 시의 경우 평지가 이미 해발 2500m 정도 되어 백두산 높이와 비슷하고, 이곳에 있는 높이 5598m 짜리 옥룡설산은 만년설이 있을 정도다. 삼국지를 즐겨 읽은 사람에게는 맹획의 고장으로 유명할 것이다.

2016년 12월에 이 곳에 여행을 갔었다. 도착하자 마자 먼지 한 점 없이 맑은 공기에 감탄했고, 몇 걸음 걷지 않아 먼지만 없는 게 아니라 공기도 없어서 숨이 잘 안 쉬어진다는 것을 깨달았다. 일주일 내내 약한 고산병 증세로 추정되는 소화불량과 두통을 달고 살았지만 즐거운 여행이었다. 우리가 중국 하면 흔히 생각하는 한족이 아닌 여러 소수 민족들의 역사가 얽혀 있는 곳이라 볼 것도 많고 생각할 것도 많았다. 만약 신라가 676년에 나당전쟁에서 승리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우리나라 자리에는 중국의 어느 성이 신라성 정도의 이름으로 들어서 있었을 것이고 한민족은 중국의 한 소수민족이 되었을 것이며 인터넷에는 “이민족의 향기를 느낄 수 있는 중국 신라성 5박 6일 여행 특가상품” 같은 게 팔리고 있었겠지.

하여튼 생각할 것이 참 많던 운남성 여행에서도 특히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옥룡설산이었다. 말이 여강이지 숙소에서 매우 멀리 떨어져 있어서 아직 달이 떠 있던 새벽부터 일어나서 승합차를 타고 몇 시간을 달려가야 했다. 가이드로부터 두툼한 노란색 방한복과 함께 헤어스프레이 통처럼 생긴 산소통을 받고 옥룡설산 발치까지 가서 케이블카를 탔다. 케이블카가 출발하던 곳의 높이가 이미 해발 3356m였고, 케이블카에서 내린 곳은 4506m, 대충 한라산 두 개 반 정도의 높이였다. 보통 지평선을 보려면 평야에 가야 하는데 그 정도 높이까지 가자 산으로 가득찬 지평선을 볼 수 있었다. 관광객이 들어가지 못하도록 막아놓은 난간 저쪽으로는 사람의 발자국이라고는 전혀 찍혀있지 않은 눈인지 얼음인지 모를 것이 소복이 쌓여 있었다.

그 눈은 몇천 년을 그 자리에 그렇게 쌓여 있었을 것이다. 가끔씩 날아와서 쉬다 간 매라면 모를까 그 자리에서 시야에 가득 차게 들어오는 끝없이 펼쳐진 산을 본 사람은 없었을 것이고, 설령 역사에 알려지지 않은 어떤 한 모험가가 옛날에 그곳까지 올라갔었다 하더라도 내가 케이블카에서 보았던 광경은 못 보았을 것이다. 과장을 좀 보태자면 그곳의 산과 눈과 하늘은 2016년 12월에 나에게 그 경치를 보여주기 위해 적어도 수천 년, 어쩌면 수만 년을 묵묵히 기다려왔던 셈이다.

“너희가 보는 것을 보는 눈은 복이 있다. 많은 임금이 너희가 지금 보고 있는 것을 보고자 하였지만 보지 못했다.” 운남성 여행을 곱씹을 때 마다 이 성경 구절이 생각난다. 운남성의 왕이었던 맹획도, 맹획을 잡으러 왔던 제갈량도, 중국의 그 어떤 황제도 내가 보았던 광경은 보지 못했다. 북경에 인공으로 이화원을 지을 정도로 경승지를 좋아하던 황제들이었으니 기회만 되었다면 옥룡설산의 비경을 보러 가지 않았을 리가 없다. 중국을 쥐고 흔들던 황제들도 보지 못했던 경관을 입장료와 케이블카 비 몇만 원만 내고 본 내 눈은 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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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객꾼들 경매 붙이기

 

여행을 하다 보면 가장 짜증나는 존재가 호객꾼들이다. 공항이나 버스 터미널을 나서기가 무섭게 수많은 호객꾼들이 주위를 둘러싸고 일부는 시끄럽게, 일부는 조곤조곤 말을 건다. 그런 호객꾼이 세네 명 이상이 되는 순간 정신이 없어지고 짜증이 솟구치기 마련이다. 하지만 중국 운남성 여행을 통해 그런 호객꾼을 여행의 재미로 바꿀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곤명 근처의 유명한 관광지 석림을 구경하고서 시외버스를 타고 곤명으로 돌아갔을 때였다. 계획이 바뀌어서 처음 가 보는 터미널에 내리게 되었는데 그곳에서 다시 시내 중심부로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전혀 모르는 상태였다. 무작정 버스 터미널 밖 큰길가로 나가보니 택시와 사설 운수 차량들이 줄지어 서 있었고 호객꾼들이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너무 시끄럽고 정신이 없어서 일단 터미널 안으로 다시 들어왔지만 결국 택시를 타야 한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었다.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를 하고 택시들이 줄지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순식간에 호객꾼들이 내 주위를 감싸고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한 호객꾼이 "빠싀(80원)!" 를 외쳤다. 시내까지 거리가 얼마인지는 모르겠지만 택시비로 중국에서 80원(한국 돈 약 18000원)은 말도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짜증이 나서 뒤돌아서는데 그 옆의 호객꾼이 "70원!" 하고 외쳤다.

 

그 순간 머릿속에서 무언가 번뜩이는 게 있어서 첫 호객꾼을 쳐다보며 이렇게 말했다.

 

"니 슈어 빠싀 콰이. 타 슈어 치싀 콰이. 니 뚜오 샤오 치엔? (너는 80원 불렀어. 이 사람은 70원 불렀어. 너 얼마 해 줄래?)"

 

그러자 나를 둘러싸고 있던 호객꾼들이 일순간 당황하는 것이 느껴졌다. 잠깐의 정적을 깨고 갑자기 제 3의 호객꾼이 크게 소리쳤다.

 

"60원!"

 

이제 누가 봐도 내가 이긴 싸움이었다. 편의상 순서대로 호객꾼 A, B, C라고 하자. 나는 호객꾼 B에게 다시 말했다. "이 사람은 60원에 해 준다는데?" 그러자 호객꾼 B가 40원을 불렀다. ‘아싸!’ 하는 순간 호객꾼 A가 엄청난 영업 비밀을 실토했다. "야, 너네 일행 두 명이잖아? 그런데 저 사람 지금 한 명에 40원이라고 하는거야!" 그 말을 듣고 호객꾼 B를 쳐다보자 그 사람이 죄 지은 표정으로 얼어 있었다. 자, 경매 다시 시작이다.

 

"량거런 이치 뚜오 샤오 치엔? (두명 합쳐서 얼마?)"

 

80, 70, 60, 50을 거쳐 결국 40원까지 내려갔다. 50원쯤부터 호객꾼들이 하나 둘씩 자리를 뜨기 시작했고 40원에는 한 명만 남아 있었다. 30원까지 깎아 보려다가 귀찮아서 40원으로 합의를 봤다. 두 명 합친 가격이 40원이라는 것을 두세 번씩 확인했다. 80원, 만약 그것이 1인 가격이었다면 두 명에 160원이었던 처음 가격에서 최종 40원으로 택시비를 깎은 순간이었다.

 

지금까지 나는 경제학에서 말하는 ‘정보의 불평등’ 때문에 여행지에서는 여행자가 항상 바가지를 쓰게 된다고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이번 여행을 통해서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경제학에는 정보의 불평등보다 더 우선되는 수요와 공급의 법칙이 있었다. 호객꾼 때문에 짜증으로 날릴 뻔한 하루가 재미있는 이야깃거리가 된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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