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리포니아 2022 - 4. 나는 태평양 해안 도로에서 살아남았다

 

태평양 바닷가를 따라 이어지는 캘리포니아 1번 주도(州道), 우리로 치면 지방도를 따라서 하루에 열 시간을 운전했던 날이었다. 도로 바로 옆으로 보이는 절벽과 태평양이 바람과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모습은 정말 웅장했고 위엄이 넘쳤다. 바람이 얼마나 거셌는지 새가 날면서 앞으로 가지 못하고 제자리에 떠 있는 특이한 광경을 볼 수 있을 정도였고 파도는 가는 길 내내 어디에서나 무섭고 육중하게 절벽을 때리면서 하얗다 못해 창백한 물보라를 거대하게 만들어내고 있었다. 경치가 특히나 멋진 곳에는 vista point라는 이름의 전망 지점들이 만들어져 있었고 그렇지 않더라도 군데군데 비포장 갓길이 확장된 곳들이 있어서 잠시 내려서 경치를 볼 수 있었다. 경치가 너무 좋아서 중간중간에 계속 멈춰서 경치를 보다 보니 구글 지도에서는 6시간쯤 걸린다고 나온 거리를 가는 데에 시간이 거의 두 배로 걸렸다.

한 4시간가량 운전했을 즈음 조금씩 피곤이 몰려왔다. 근 10년 만에 운전대를 잡아서 긴장이 되어서 그렇기도 했겠고, 4시간이면 서울에서 대구까지 가고도 남는 시간이니 피곤할 법도 했다. 빨리 어딘가에 내려서 좀 쉬고 커피를 사 마시고 싶었다. 그런데 가도가도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사람도 없고 차도 없고 집도 없고 가게도 없었다. 더 가다 보니 작은 마을이 있다는 표지판이 나오길래 희망을 갖고 계속 달렸지만 도착했더니 마을 전체(그래봤자 건물 몇 개가 다였지만)가 아무도 없이 텅 비어 있었다. 아마도 운전자들에게 휴게소 역할을 하던 마을이었던 것 같은데 안그래도 오지인 데다가 코로나까지 겹쳐서 사람이 오지 않자 사람들이 다 떠나간 것 같았다. 희망이 실망으로 바뀌는 순간이었고 정신은 더더욱 멍해져만 갔다. 그렇다고 미국에서, 차 안에 짐을 놓고 주차해 놓으면 창문 깨고 훔쳐가는 나라에서 차를 갓길에 대고 잠시 잘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계속 달리면서 빨리 마을이 나타나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달리고 또 달렸다. 한국이었다면 아무리 산간 벽지여도 이 정도 달렸으면 모퉁이를 도는 순간 한방 오리백숙이나 옻닭 집 정도는 나왔을 텐데 정말이지 사람의 흔적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런 길을 계속 달리다 보니 이제는 화장실까지 급해져 왔다. 그래도 화장실이 급해지자 그 덕에 잠은 좀 깼다. 이런게 이이제이(以夷制夷)라는 건가. 하여튼 정말이지 너무 힘들었고 그저 살기 위해 계속 운전을 했다. 나중에는 머리가 멍한 것을 넘어서서 온 몸의 감각이 다 무뎌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즈음 갑자기 반대편 차선 쪽으로 앞에 주유소가 보였다.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 주유소를 절대로 놓치면 안 된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마지막 힘을 내서 주유소로 들어갔다. 주유소로 들어가 차를 대고 내리는 순간 긴장이 확 풀리며 마음에 평안이 찾아왔다. 주위를 둘러보니 작은 가게가 있었다. 미니 마트(mini mart)라고 쓰여 있는 간판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문이 잠겨 있어서 순간 당황했지만 다행히 몇 분 후 주인 할아버지가 와서 문을 열어주셨다. 이미 커피로 해결될 정도의 피곤이 아니었기에 레드불을 샀다. 가격이 엄청 비쌌지만 그 곳 까지의 운송비를 생각하면 납득이 갔다. 계산을 하려는데 기념품용 냉장고 자석이 보였다. 자석에는 '나는 태평양 해안 도로에서 살아남았다 (I survived Pacific Coast Highway)'라고 쓰여 있었다. 태평양 해안 도로(Pacific Coast Highway, PCH)는 캘리포니아 1번 주도의 또 다른 이름이다. 순간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다. 이 길 운전하는 게 나만 힘들었던 게 아니었구나, 다들 이쯤 오면 힘들어서 제 정신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나도 공감가는 문구에 이끌려 그 냉장고 자석도 같이 샀다.

지금까지 살면서 학교에서건 사회에서건 자연은 정복의 대상이라는 관점과 자연은 보호의 대상이라는 관점, 이 두 관점만을 배우고 접해 왔다. 글쎄, 사회 전체나 인류 전체로 보면 그럴 수도 있겠지. 하지만 적어도 그 날 나에게 있어서만큼은 자연은 정복의 대상도 보호의 대상도 아닌, 내가 생존을 위해 발버둥쳐야 하는 곳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대자연 속에서 정복이나 보호가 아니라 생존을 위해 발버둥치면서 새삼 내가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를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사람의 존엄성을 믿는 사람이고, 그렇기에 사람이 자연을 두려워하거나 경외(敬畏)까지 하게 되는 것은 너무 과한 것이요 바람직하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동시에, 살면서 적어도 한 번쯤은 대자연 속에서 내가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를 깨닫는 경험을 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 역시 한다. 그러고 나면 매일매일의 비슷한 일상 속에서도 냉장고에 붙어 있는 '나는 태평양 해안 도로에서 살아남았다' 자석을 볼 때마다 기쁜 마음으로 미소를 짓게 될 것이다.

 

캘리포니아 2022 - 2. 나는 태평양을 볼 거야

 

비행기를 탈 때의 복장은 편한 게 제일이라는 것이 내 지론이다. 특히나 장거리를 가야 할 때는 더욱 그렇다. 흔히들 쪼리라고 부르는 플립플랍을 신고 바지도 통이 넓은 것으로 골라 입었다. 디스크로 고생한 후로는 목베개와 허리 쿠션도 챙겨서 다닌다. 환승 비행기는 나리타 공항에서 오후 5시 이륙이었는데 샌프란시스코는 그 때가 밤 1시였다. 미국에서 상당히 빡빡한 일정이 기다리고 있었기에 시차적응으로 고생하고 싶지 않아서 비행기가 이륙하자 마자 멜라토닌을 먹고 바로 잠을 청했다. 새벽같이 집에서 나왔어서 피곤해서 그랬는지 멜라토닌이 잘 들어서 그랬는지 비행기에서 아주 잘 잤다. 아마도 둘 다 때문이었겠지. 중간에 깨서 기내식을 먹을 때에는 일본 비행기라 간만에 일본어도 써 볼 수 있었다. 그래봤자 "주스 오네가이시마스 (주스 주세요)" 정도였지만.

 

얼마나 잤을까. 시계를 보니 샌프란시스코 기준으로는 아침이었기에 그 때부터는 커피를 마시며 기를 쓰고 깨어 있었다. "고히 오네가이시마스 (커피 주세요)." 창밖을 보니 땅이 보였다. 미국이구나. 주거 지역 바로 옆에 진부한 표현이지만 끝이 없는 산맥이 이어지고 있었다. 자연, 그것도 그냥 자연이 아니라 대자연이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자연. 이번 미국 여행의 목표 중 하나는 자연이었다. 홍콩에 살면서 도시는, 사람이 만든 물질 문명은 질릴 정도로 보았다. 1 제곱 킬로미터마다 캘리포니아에서는 98명이 살고 홍콩에서는 6300명이 산다고 한다. 한국은 516명.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고들 하고 나는 그 말에 동의하지만, 어쨌건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운지 아닌지를 알려면 꽃을 좀 볼 수는 있어야 하지 않나. 사람이 멋지게 가꾸어 놓은 화단의 꽃이 아니라 산, 들, 길가에 스스로 피어 있는 그런 꽃들을 말이다. 사람으로 꽉 찬 도시에서는 자연을 찾아보기가 힘들다. 자연은 사람이 자취를 감춘 후에야 자기를 드러내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자연은 무심하고 무정하다. 자연은 사람이 왜 자취를 감추었는지 전혀 신경쓰지 않는다. 그래서 김훈 작가는 셀 수도 없이 많은 사람이 죽은 전쟁인 임진왜란을 다룬 '칼의 노래'를 이렇게 시작했다.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

 

비행기는 점점 낮아졌고 내 아래에 있던 구름은 정확히 내 눈높이로 올라오더니 이윽고 하늘 위로 올라가 버렸다. 이젠 비행기에서 내릴 시간이었다. 미국에 왜 왔냐는 입국 심사 직원의 질문에 학회에 참석하기 위해 왔다고 대답했다. 돌아가는 항공권이 있냐길래 보여줬더니 왜 샌프란시스코로 들어와서 LA에서 나가냐, LA까진 어떻게 갈 거냐고 물어왔다. 차를 빌려서 LA까지 갈 거야. 손으로 운전하는 시늉을 하며 말했더니 그렇게 운전한다고? 하며 되묻고는 오케이, 통과.

 

시차 덕분에 나중에 돌아갈 때 뱉어내게 될 하루를 벌었다. 회전초밥처럼 빙글빙글 돌고 있는 짐을 찾아서 입국장으로 향했다. 입국장으로 향하는 금속 문 위에 붙어 있는 문구가 나를 반겨줬다. 웰컴 투 샌프란시스코. 입국 심사 직원에게 미처 다 하지 못한 이야기가 마음 속에서 뛰기 시작했다. 차를 빌려서 LA까지 갈 거야. 나는 태평양을 볼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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