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초에 이공계 장학금이라는 게 생겼다. 간단하게 말해서 의약계통을 제외한 이공계 학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나라에서 주는 장학금이었다. 등록금 지원은 물론이고 경우에 따라 교재비까지 주는 획기적인 장학금이었다. 왜 그랬을까? 이공계가 인기가 없어서였다. 당시 이과 수능 응시생은 문과 응시생의 절반이었다. 나라에서 보기에 이공계가 중요해 보이는데 고등학생들이 이공계 진학을 하지 않으니 돈을 주기로 한 것이었고, 다른 말로 하자면 이공계의 전망은 나라에서 돈을 줘야 할 정도로 깜깜하다는 것을 나라가 인정한 꼴이었다. 돈 받아도 안 가는 이공계가 돈을 내면서도 가는 다른 학과와 비교된 것은 덤이었다.

2010년대가 저물어가는 지금, 신문을 볼 때마다 이공계로 수험생들이 몰린다는 기사를 보게 되는 요즘에는 참 생소하게 들릴 10여년 전 이야기이다. 왜 10여 년 전에는 돈을 준대도 기피대상이던 이공계에 지금은 사람이 몰릴까. 이공계 장학금을 꾸준히 줘 왔어서? 아니다. 장담하는데 이공계 장학금 제도를 지금 갑자기 없애 버려도 이공계로 여전히 사람이 몰릴 것이다. 예전에 법대와 의대로 지원자가 몰렸던 게 장학금 때문은 아니었지 않는가. 사람들은 전망을 본다. 당장 등록금을 많이 내더라도 졸업 후에 자기에게 도움이 될 것 같으면 그 학과에 지원하고, 반대로 장학금을 많이 받을 수 있더라도 졸업 후의 전망이 어두컴컴하면 그 학과에 지원하지 않는 것이다.

입시 이야기를 주저리 주저리 한 것 같지만 사실은 저출산에 대한 이야기이다.

얼마 전 본 신문 기사에는 2006년 부터 지금까지 한국 정부가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69조 원을 썼다고 나와 있었다. 하지만 결과는 세계 최저의 출산률이다. 이는 위에서 언급한 이공계 장학금과 같은 맥락에서 봐야 한다. 첫째 낳으면 얼마, 둘째 낳으면 얼마, 셋째 낳으면 얼마, 어린이집 얼마 식으로 정부와 지자체에서 지원해준다는 소식을 보며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할까? '아, 애 낳아서 키우는 게 나라에서 돈을 줄 정도로 기피할 만한 일이구나' 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이공계 기피 현상을 해결한 것이 이공계 장학금이 아니라 좋아진 이공계 졸업 후의 전망이었듯, 저출산 해결은 정부 보조금이 아니라 육아가 즐거울 것이라는 전망을 국민들에게 보여주는 것에 있다. TV에 연예인들이 나와서 예능이라는 미명 하에 결혼생활을 무슨 인생의 파멸마냥 이야기하며 히죽거리는 한, 어린이집에서 무 한 조각으로 수십명 치의 무국을 끓였다는 소식이 들리는 한, 중고등학생들이 같은 반 친구를 피범벅이 되도록 두들겨 팼다는 뉴스가 들리는 한, 대졸자들이 집을 사려면 20년 동안 월급을 한 푼도 안 쓰고 다 모아야 하는 한 269조가 아니라 더 큰 돈을 쏟아부어도 출산률은 올라가지 않을 것이다.

무가지보(無價之寶)라는 말이 있다. 진짜 보물은 값을 매길 수 없는 법이다. 출산은 그 가치를 돈으로 환산하는 것 자체가 불경스러울 귀한 일인데 그 귀한 출산에 대한 문제를 돈을 퍼부어서 해결하려 했기에 역대 정책이 다 실패한 것이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즉 어슴푸레한 새벽의 아름다움, 팔랑거리며 날아가는 나비, 시원한 바람 소리, 투명하게 빨간 단풍잎, 쨍한 겨울 하늘을 국민들이 마음 놓고 느낄 수 있는 사회가 되는 순간 사람들은 정부에서 보조금을 주지 않아도 그 아름다움을 내 자식에게도 보여주고 싶어서 자녀를 갖게 될 것이다.

'글쓰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락  (0) 2020.04.06
이어령 선생님과의 대화  (0) 2020.01.12
홍콩 시위에 대한 단상 2  (0) 2019.11.14
한복의 멋, 양복의 스타일  (0) 2019.09.20
홍콩 시위에 대한 단상  (0) 2019.09.06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