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시위 관련해서 페이스북에 돌아다니는 문구 중에 특별히 인상적인 문구가 있었다. "우리 집이 얼마나 좁은데! 내가 감옥 가는 걸 무서워할 것 같아?"

부동산은 홍콩의 심각하고도 고질적인 문제다. 유학 온 대학생들이 인턴할 때 사는 5평짜리 원룸 월세가 135만원인데 한국으로 비교하자면 서울대, 카이스트 위치에 있는 홍콩대와 홍콩과기대의 졸업생 초봉 중앙값(median)이 각각 300만원, 270만원이다.[1][2][3] 홍콩의 대학 진학률이 15% 정도에 불과하고 홍콩대와 홍콩과기대가 흔히 말하는 입시 커트라인 상위권 대학임을 감안하면 홍콩에서 20대 직장인이 자취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니, 어렵게 따질 것 없이, 홍콩의 최저 임금이 시급 기준 5625원이다.[4] 하루 8시간씩 30일을 꼬박 일하면 얄미울 정도로 정확하게 5평짜리 원룸 월세 135만원이 딱 나온다. 이러니 홍콩 젊은이들은 결혼을 못 하고, 결혼을 해도 부부가 각자의 부모님 집에 따로 산다.

지금의 홍콩 시위를 이해하는 열쇠는 여기에 있다. 젊은이들이 "우리 좀 살게 해줘" 라고 외치고 있는 것이다. 외지인에게 부동산 시장이 열리는 바람에 부동산 구매자와 실수요자가 달라져서 부동산 값이 폭등했으니 이것 좀 해결해달라는 것이다. 세계적인 관광도시이고 아시아 금융의 허브이면 일수록 홍콩인들의 삶은 팍팍해져 가니 어떻게 좀 해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동안 꾹꾹 눌려 쌓여 있던 불만을 뻥 터뜨린 결정적인 사건이 범죄인 송환법이었던 것이고.

어떻게 되는 것이 잘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번 시위가 잘 해결되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홍콩에 살면서 느낀 점은 적어도 주거용 부동산에 대해서만큼은 실수요자 위주의 정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올해에 신규 분양하는 홍콩의 한 아파트는 한 채의 넓이가 3.6평(36평이 아니라 3.6평), 가격은 2억 6천만원이다.[5] 누가 뭐래도 이건 아니다.

- 주석

[1] 글에서 사용한 환율은 1 홍콩 달러당 150원.
[2] 20,042 홍콩 달러. 홍콩대에서 발간한 Graduate Employment Survey 2018을 참조.
[3] 18,100 홍콩 달러. 홍콩과기대에서 발간한 Graduate Employment Survey 2018을 참조.
[4] 37.5 홍콩 달러. 홍콩 노공처(노동부) 자료 참조.
[5] Tuen Mun 지역에 있는 T-Plus라는 128 스퀘어 피트(3.6평)짜리 아파트 가격이 최소 173만 홍콩 달러(2억 5950만원). South China Morning Post의 Developer slashes prices of T-Plus flats by 38 per cent to get first-home buyers to give Hong Kong’s smallest abodes a look-in 기사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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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도 더 전, 학원 강사를 할 때의 일이다. 중학생 수학 수업에서 2차 함수를 가르치게 되었는데 그날따라 갑자기 학생들에게 2차 함수 그래프를 직접 그려보게 하고 싶어졌었다. 문제 풀려고 대충 그리는 것 말고 진짜로 모눈종이에 칸을 다 맞춰서. 그래서 수업시간에 모눈종이를 가지고 들어갔고 아이들은 낑낑대면서 그래프를 그렸다. 그 전까지 대충 오목한 컵 모양으로 그려놓고 x절편과 y절편 좌표만 표시할 때와 달리 모눈종이에 그래프를 직접 그리자 제곱값이 얼마나 가파르게 상승하는지를 바로 알 수 있었다. y는 x제곱이라는 단순한 함수만 하더라도 x가 4, 5쯤만 되면 모눈종이를 벗어났다. 그 날 그 수업 자체만 놓고 보면 문제도 하나도 안 풀고 진도도 거의 못 나갔지만 그 수업 이후로 학생들이 2차 함수를 친숙하게 느끼게 되었던 기억이 난다.

수학에도 실습이 필요하다. 예를 들자면 이런 거다.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나 때는 도형과 작도 문제를 풀 때 평행하지도 않은 선을 그려놓고 평행하다고 믿으면서, 대충 짜부라진 감자같은 것을 그려놓고 원이라고 여기면서 풀었다. 선생님들은 가끔 분필을 끼워 사용하는 커다란 칠판용 컴퍼스를 자와 함께 쓰셨지만 학생들이 자와 컴퍼스를 쓰는 일은 없었다. 이 때 만약 자와 컴퍼스로 이런저런 것을 작도하는 실습이 있었다면 얼마나 재미있었을까.

생각해보면 수학에도 실습거리는 많다. 운동장에 지름이 100 발자국 짜리인 원을 그린 후에 둘레를 따라 걸어보면서 진짜로 둘레가 314 걸음이 나오는지를 세어 봐도 좋을 것이고, 공을 가득 덮도록 색종이를 모자이크처럼 붙였다가 뗀 후에 색종이의 넓이를 구해서 공의 겉넓이가 진짜 4 곱하기 원주율 곱하기 반지름의 제곱인지를 확인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아니면 설날이나 추석 때 친척들 키를 다 재서 정규분포를 가정한 뒤 평균과 표준편차 값을 구해볼 수도 있을 것이고.

그런 실습을 통해서 학생들의 수학에 대한 관심도와 이해도를 향상시킬 수 있을 것이다. 피아노에 대해 공부하는 것과 피아노를 쳐 보는 것이 다르고, 요리 방송을 보는 것과 직접 요리를 해 보는 것이 다르고, 지구에서 달까지의 거리를 계산하는 것과 직접 우주선을 타고 달에 갔다 와 보는 것은 다르니까. 나중에 혹시 기회가 된다면 그런 교육을 해 보고 싶다.


중국 서남부에 있는 운남(雲南) 성은 인도, 사우디 아라비아, 이집트 등과 같은 위도에 있지만 고도가 높아서 여름에도 서늘한 곳이다. 운남성 여강(麗江) 시의 경우 평지가 이미 해발 2500m 정도 되어 백두산 높이와 비슷하고, 이곳에 있는 높이 5598m 짜리 옥룡설산은 만년설이 있을 정도다. 삼국지를 즐겨 읽은 사람에게는 맹획의 고장으로 유명할 것이다.

2016년 12월에 이 곳에 여행을 갔었다. 도착하자 마자 먼지 한 점 없이 맑은 공기에 감탄했고, 몇 걸음 걷지 않아 먼지만 없는 게 아니라 공기도 없어서 숨이 잘 안 쉬어진다는 것을 깨달았다. 일주일 내내 약한 고산병 증세로 추정되는 소화불량과 두통을 달고 살았지만 즐거운 여행이었다. 우리가 중국 하면 흔히 생각하는 한족이 아닌 여러 소수 민족들의 역사가 얽혀 있는 곳이라 볼 것도 많고 생각할 것도 많았다. 만약 신라가 676년에 나당전쟁에서 승리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우리나라 자리에는 중국의 어느 성이 신라성 정도의 이름으로 들어서 있었을 것이고 한민족은 중국의 한 소수민족이 되었을 것이며 인터넷에는 “이민족의 향기를 느낄 수 있는 중국 신라성 5박 6일 여행 특가상품” 같은 게 팔리고 있었겠지.

하여튼 생각할 것이 참 많던 운남성 여행에서도 특히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옥룡설산이었다. 말이 여강이지 숙소에서 매우 멀리 떨어져 있어서 아직 달이 떠 있던 새벽부터 일어나서 승합차를 타고 몇 시간을 달려가야 했다. 가이드로부터 두툼한 노란색 방한복과 함께 헤어스프레이 통처럼 생긴 산소통을 받고 옥룡설산 발치까지 가서 케이블카를 탔다. 케이블카가 출발하던 곳의 높이가 이미 해발 3356m였고, 케이블카에서 내린 곳은 4506m, 대충 한라산 두 개 반 정도의 높이였다. 보통 지평선을 보려면 평야에 가야 하는데 그 정도 높이까지 가자 산으로 가득찬 지평선을 볼 수 있었다. 관광객이 들어가지 못하도록 막아놓은 난간 저쪽으로는 사람의 발자국이라고는 전혀 찍혀있지 않은 눈인지 얼음인지 모를 것이 소복이 쌓여 있었다.

그 눈은 몇천 년을 그 자리에 그렇게 쌓여 있었을 것이다. 가끔씩 날아와서 쉬다 간 매라면 모를까 그 자리에서 시야에 가득 차게 들어오는 끝없이 펼쳐진 산을 본 사람은 없었을 것이고, 설령 역사에 알려지지 않은 어떤 한 모험가가 옛날에 그곳까지 올라갔었다 하더라도 내가 케이블카에서 보았던 광경은 못 보았을 것이다. 과장을 좀 보태자면 그곳의 산과 눈과 하늘은 2016년 12월에 나에게 그 경치를 보여주기 위해 적어도 수천 년, 어쩌면 수만 년을 묵묵히 기다려왔던 셈이다.

“너희가 보는 것을 보는 눈은 복이 있다. 많은 임금이 너희가 지금 보고 있는 것을 보고자 하였지만 보지 못했다.” 운남성 여행을 곱씹을 때 마다 이 성경 구절이 생각난다. 운남성의 왕이었던 맹획도, 맹획을 잡으러 왔던 제갈량도, 중국의 그 어떤 황제도 내가 보았던 광경은 보지 못했다. 북경에 인공으로 이화원을 지을 정도로 경승지를 좋아하던 황제들이었으니 기회만 되었다면 옥룡설산의 비경을 보러 가지 않았을 리가 없다. 중국을 쥐고 흔들던 황제들도 보지 못했던 경관을 입장료와 케이블카 비 몇만 원만 내고 본 내 눈은 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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