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인터넷에 접속하자 이어령 선생님의 저서에 관한 기사가 떴다. 눌러서 읽는데 뭔가가 이상했다. "고 이어령 선생은…"

뭐라고?

허겁지겁 다른 기사를 찾아봤다. 아니기를 바랐지만 맞았다. 돌아가셨구나. 속보 기사가 뜬 게 불과 몇 시간 전이었다.

2.
이어령이라는 이름을 처음 알게 된 것은 아마도 초등학생 고학년 때였던 것 같다. 당시 매달 사 보던 하우PC라는 컴퓨터 잡지에 이어령 선생님의 인터뷰가 실린 적이 있었다. 당시 어린이였던 나에겐 어렵고 관심도 가지 않는 내용이어서 대충 읽고 넘겼다. 하지만 기억에 남은 것이 있었다. '아, 잘은 모르지만 엄청 유명한 분인가 보다. 축소지향의 일본인이라는 책도 엄청 대단한 책인가 보네.'

3.
이어령 선생님의 이름을 다시 보게 된 것은 대학생이 되어서였다. 어느 날 서점에 갔는데 '디지로그(Digilog)'라는 책이 전시되어 있었고, 다음에 갔을 때에는 '지성에서 영성으로'라는 책이 전시되어 있었다. '아, 그 유명한 분 책이구나.' 그런데 책을 좋아하는 체질인데도 희한하게 그 책들이 읽히지가 않았다. 몇 년 후, 이십 대 중반이 되었을 때 다니던 교회 목사님께서 '지성에서 영성으로'를 꼭 읽어보라고 추천해 주셨지만 그래도 읽지 않았다. 왜인지 모르게, 꼭 자석의 같은 극끼리 밀어내듯이 나는 이어령 선생님의 책에 가까이 갈 수가 없었다.

4.
어떻게 될 지 모르는 게 사람 일이고, 그래서 나는 생각지도 못했던 홍콩에 와서 살게 되었다. 간만에 짧게 한국에 갔다가 홍콩으로 돌아오던 30대 초반 어느 날이었다. 습관처럼 들어간 인천공항 서점에서 '읽고 싶은 이어령'이라는 책을 보게 되었다. 그 날은 선생님의 책과 내가 서로를 밀어내지 않았던 것인지, 아니면 그 때까지 실은 서로를 밀어냈던 게 아니라 서로를 등 뒤에서 당기고 있었던 것인지 그 날 나는 그 책을 집어들고 계산을 할 수 있었다. 비행기에 앉아서 책을 폈다. 그래, 그 유명한 분 책을 한 번 읽어보자.

바로 그 순간부터 비행기가 홍콩 첵랍콕 공항에 내리는 그 순간까지 나는 책에서 눈과 손을 떼지 못했다. 말과 기호를 통해 나라와 사회와 문명과 문화를 분석하는 그 방식에 반했던 것이다. 그 때까지 그런 글은 본 적이 없었다.

5.
그 후 나는 이어령 선생님의 책을 닥치는대로 구해서 읽었다. 절판된 책은 중고서점을 뒤져서라도 찾아냈다. 어림잡아도 선생님의 책을 20권은 넘게 읽은 것 같다. 지금도 우리 집 책꽂이의 한 칸은 이어령 선생님의 책만으로 가득 차 있다.

다 너무나도 인상적인 책들이었지만 특히 기억에 남는 책을 꼽자면 '축소지향의 일본인', '지성에서 영성으로', '빵만으로는 살 수 없다' (개정판 '의문은 지성을 낳고 믿음은 영성을 낳는다') 세 권을 꼽고 싶고, 그 중에서도 딱 한 권을 골라야 한다면 주저없이 '축소지향의 일본인'을 선택하고 싶다. 기원전부터 지금까지 이어지는 한 나라의 역사와 문화와 사회를 하나의 단어로 관통해서 설명하는 책은 흔치 않을 것이요, 그 나라 사람이 아니라 외국인이 그 나라 말로 그 작업을 해냈다는 것은 더욱 있을 수 없는 일일 것이다 ('축소지향의 일본인'은 원래 일본어로 먼저 나오고 일본에서 베스트셀러가 된 후 한국어로 번역된 책이다). 이 책에 대해 많고 많은 평이 있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평은 동경대 하가 도루 교수의 평이다. "이것을 읽지 않고는 일본인의 자기 인식의 혁신은 있을 수 없다. 그건 그렇다 치고 일본인이 한국에서 한국말로 이처럼 능란하게 한국 문화를 논할 날은 대체 언제쯤이면 올 것인가."

6.
그러던 중 선생님께서 암에 걸리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슬펐다. 슬픈 마음에 홍콩에서 어디로 보낼지도 모르는 손편지를 몇 장에 걸쳐서 썼다. 편지 마지막 인사말은 이랬다. "선생님과 동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 제게 복입니다." 편지를 다 쓰고 나니 어떻게든 해야 할 것 같아서 신문 기사와 인터넷을 샅샅이 뒤져 유일하게 발견한 주소인 평창동의 영인문학관이라는 곳으로 국제우편을 보냈다. 그 해 말, 연말연시를 맞아 한국에 잠시 들어가려고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이메일이 왔다. "보내주신 글, 잘 받았습니다. 몸이 불편하여 긴 글 보낼 수 없지만 귀경 하시면 직접 이야기를 나누려 합니다. 신간이 나오면 증정본도 보낼 예정 입니다. 이어령 드림"

7.
메일을 받은 때로부터 10일 후 나는 난을 사 들고 평창동의 영인문학관으로 갔다. 비서님께서 나와서 맞아주셨다. 선생님께로 하루에도 수많은 연락이 오며 대부분은 비서님께서 거르시는데, 내 편지는 너무 구구절절해서 선생님께 전달해 드리셨다며, 편지를 영인문학관으로 보낸 것이 참 잘 한 선택이었다고 말씀하시며 웃으셨다. 선생님께서 신간 작업으로 바쁘신데 딱 30분 시간을 내셨다고 하셨다. 이윽고 방문을 두드렸고 문이 열렸다. 순간, 뭐랄까, 어렸을 때 자주 봤던 'TV는 사랑을 싣고' 느낌이 났고 시간이 갑자기 느리게 흐르는 것 같았다. 그 후 30분간 선생님께서는 수많은 이야기를 해 주셨다. 받아적을 시간도, 질문을 할 시간도 없었다. 마치 수압이 센 수도꼭지에서 물이 터져나오는 것 같았다. 나중에 집에 가서 기억하고 있던 내용을 정리해보니 A4 용지로 3장이 나왔다. 30분은 금방 흘렀고, 내가 처음 읽었던 선생님의 책인 '읽고 싶은 이어령'에 친필 서명을 받고 선생님과 사진을 찍은 뒤 인사를 드리고 영인문학관을 나왔다. 그 후 한두 달쯤 지나 선생님께서는 나를 만나주셨을 때 마무리 작업중이셨던 신간 '한국인 이야기'에 서명을 해서 우편으로 보내주셨다.

8.
그 후 선생님과 더 연락이 닿은 일은 없었다. 홍콩으로 돌아온 후에도 인터넷으로 선생님 소식을 종종 보고 강연 영상도 많이 찾아서 보았다. 치료를 할 시간에 글을 쓰겠다며 암 치료를 안 하신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제발 치료를 하셔서 더 오래 건강히 사셨으면 좋겠다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작년쯤이었을까, 신문과 뉴스에서 뵌 선생님은 내가 찾아뵈었을 때에 비해 눈에 띄게 수척해져 계셨다.

그리고 오늘 선생님은 고 이어령 선생님이 되셨다.

참 슬프다. 당신 스스로 죽음을 준비하고 계신다는 말씀을 많이 하셨지만 그래도 실제로 선생님의 부고를 들으니 슬프고 정신이 없다. 선생님을 만나는 계기가 되었던 손편지의 마지막 문구를 살짝 고쳐야 할 것 같다.

선생님과 동시대에 살았던 것이 제게 복입니다. 지난 번에 못 여쭤봤던 것은 나중에 천국에서 뵙고 많이 여쭙겠습니다.

1.
한국어에는 ㄱ, ㄴ, ㄷ, ㄹ, ㅁ, ㅂ, ㅇ 7개의 받침 소리가 있다. 일상에서 많이 볼 수 있는 ㅅ, ㅆ 받침은 소리로는 ㄷ과 똑같다. 중국어(보통화)에는 ㄴ, ㅇ, R 3개의 받침이 있고 광동어에는 ㄱ, ㄴ, ㄷ, ㅁ, ㅂ, ㅇ 6개의 받침이 있다. 일본어에서는 ん이 ㄴ, ㅁ, ㅇ 받침 소리를, っ가 ㄱ, ㄷ, ㅂ 받침 소리를 내기 때문에 총 6개의 받침 소리가 나타난다.

2.
자세히 보면 한국어에만 유일하게 ㄹ 받침이 있다. 중국어로 숫자를 셀 때 우리가 흔히 이 얼 싼 쓰 하며 읽지만 사실 2의 중국어 발음은 얼이 아니라 어R에 가깝다. 다른 동아시아 언어, 예를 들어 몽골어 등에 대해서는 내가 아는 바가 없지만 어쨌든 ㄹ 받침이 한국어의 개성 포인트라고 해도 될 법하다.

3.
고전 한자 발음은 현대 중국어보다 광동어와 한국어에 더 잘 남아 있다고 한다. 정작 지금의 북경 지역은 예전부터 여러 민족이 모여서 치고박고 하면서 발음이 섞여서 고전 한자 발음이 잘 안 남아 있다나. 그래서인지 광동어와 한국어의 한자 발음은 꽤 비슷하다. 시간(時間)을 예로 들어보면 중국어 발음은 싀지앤, 일본어 발음은 지깡이지만 광동어 발음은 시간이다.

4.
그런데 광동어와 한국어의 한자 발음을 비교해 보면 재미있는 규칙을 찾을 수 있다. 광동어 한자 발음의 ㄷ 받침(ㅅ 받침) 소리가 한국어에서는 죄다 ㄹ 받침으로 바뀌어 있다는 점이다. 숫자 칠(7)은 광동어로 '찻'이고 팔(8)은 '빳'이다. 주윤발은 '자우윤팟'이고 카페에서 음료를 뜨겁게 해 달라고 하려면 더울 열(熱)자를 써서 '잇'이라고 하면 된다.

5.
이 규칙을 발견하고 매우 신났었는데 알고 보니 언어학자들이 진작에 찾아 놓았던 것이었다. '운미 [t]의 [l]화'라는 전문가스러운 표현이 이미 있고, 학자들은 친절하게도 거기에 추가 설명까지 달아 놓았다. 고전 한자어의 ㄷ 받침이 한반도로 오면서 죄다 ㄹ 받침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즉 광동어의 한자 발음이 더 원조라는 소리다. 훈민정음 해례본에서도 이 점이 신경쓰였는지 ㄹ 받침은 원래는 순우리말에서만 써야 하고 한자에는 쓰면 안 되는데 습관상 한자에도 ㄷ 대신 ㄹ 받침이 쓰이고 있다고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且半舌之ㄹ, 當用於諺, 而不可用於文. 如入聲之彆字, 終聲當用ㄷ, 而俗習讀爲ㄹ, 盖ㄷ變而爲輕也.).

6.
왜 한국어에서는 ㄹ 받침이 번창하게 되었을까. 이런저런 설이 많은데 엄밀한 증명과 논문은 학계에 맡기고 그저 단순하게 생각해보자면 '그 발음이 당시 한국사람들에게 편했어서'가 그 이유였지 않을까. 지금도 거센소리보다 된소리, 예사소리가 더 편하기 때문에 오타쿠는 오덕후가 되고 배터리는 빳데리가 되고 있지 않나. 즉 한자가 한국어에 들어오기 전 부터 한국어에서는 ㄹ 받침이 엄청 많이 쓰이고 있지 않았을까 싶다.

7.
순우리말에서 ㄹ은 연속되는 소리나 동작을 나타낸다. 그래서 물은 '졸졸' 흐르고 불은 '활활' 타고 새는 '훨훨' 날고 추울 때 몸은 '덜덜' 떨리고 잠은 '쿨쿨' 자고 노래는 '랄랄라' 하고 부르고 돌은 '데굴데굴' 굴러간다. 반대로 ㄱ은 단절되는 소리나 동작을 나타낸다. 숨은 '턱' 막히고 길은 '꽉' 막히고 공은 손으로 '탁' 잡고 바둑돌은 '딱' 하고 내리치게 된다. 여기서 ㄱ을 ㄹ로 바꿔보면 느낌이 안 사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길이 '꽐' 막힌다고 하면 '꽉' 막힌다고 하는 것에 비해 느낌이 안 산다. '굴렁쇠'는 잘 굴러갈 것 같지만 '국겅쇠'라고 하면 이름만 들어도 답답하다.

8.
이어령 선생님께서 ㄹ의 연속성과 ㄱ의 단절성을 다 품고 있는 한국어 표현으로 자주 언급하시는 것이 떼굴 떼굴 떽떼굴이다. '굴'의 ㄹ 받침 때문에 뭔가 굴러가는 것 같다가 '떽'의 ㄱ 받침 때문에 멈추게 되고, 다시 떼굴 하면서 굴러가게 된다. 하여튼 한국어의 ㄹ은 단순한 음가가 아니다. ㄹ만으로도 연속이라는 뜻을 갖고 있는 것이다.

9.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른다는 말이 있는 것 처럼 옛사람들은 ㄱ을 낫과 연결시켜 생각했다. 그러면 ㄹ은 어땠을까? 1800년대의 유명인 김삿갓의 시 중 이런 작품이 있다. 한자와 한글을 절묘하게 섞어서 쓴 시다.

腰下佩ㄱ(요하패기역)
牛鼻穿ㅇ(우비천이응)
歸家修ㄹ(귀가수리을)
不然點ㄷ(불연점디귿)

이 시는 김삿갓이 지나가는 머슴에게 길을 물었다가 무시를 당한 후 쓴 시로, 해석하면 다음과 같다.

허리 아래에는 ㄱ을 달랑 차고,
소 코에는 ㅇ을 뚫었구나.
집에 가서 ㄹ을 수양해라.
안 그러면 ㄷ에 점 찍게 될 것이다.

ㄱ은 머슴이 허리에 찬 낫을, ㅇ은 둥그런 모양의 쇠코뚜레를, ㄹ은 한자 몸 기(己) 자를, ㄷ에 점을 찍는다는 것은 죽을 망(亡)자를 가리킨다. 즉 "허리에 낫 차고 소 코에 코뚜레 끼우고 가는 이 놈아, 집에 가서 자기 수양을 하지 않으면 죽게 될 것이다" 라는 뜻이 된다. 김삿갓이 요즘 유행하는 프리스타일 랩 경연 프로그램에 나왔다면 엄청난 디스곡을 쏟아냈을 것 같다. 하여튼 옛 사람들은 ㄹ을 볼 때 한자 몸 기(己) 자를 떠올렸다는 것을 이 시를 통해 알 수 있다.

10.
다시 리을과 기역 이야기로 돌아와서, 순전히 아마추어이자 언어학 개론조차 안 들어본 일반인으로서 마음대로 추측해보자면 '살다', '죽다' 역시 ㄹ과 ㄱ의 법칙이 적용된 단어이지 않을까 싶다. ㄹ 받침은 동작의 이어짐이고 ㄱ 받침은 동작의 멈춤이다. '살다'는 누가 뭐래도 이어지는 것 아닌가. '죽다'는 멈추는 것이고. 혹시 또 모른다. 이것 역시 진작에 학자들이 찾아 놓은 것일지도. 어쨌든 그럴싸한 추측이지 않나.

11.
ㄹ과 ㄱ이 이렇게 극명한 대조를 보인다면 그 둘이 합쳐진 ㄺ은 어떤 뜻을 가지는지 갑자기 궁금해졌다. ㄺ이 사용된 단어는 몇 개 되지 않기 때문에 거의 전부를 이 글에도 나열할 수 있다. 내가 찾은 건 15개인데 이게 전부일 것 같다.

동사 (11개): 갉다, 굵다, 긁다, 낡다, 늙다, 맑다, 묽다, 밝다, 붉다, 얽다, 읽다

명사 (4개): 닭, 삵, 칡, 흙

아마추어답게 무식하고 용감하게 때려맞춰 보자면, 다 들어맞는 것은 아니지만 대략 보면 부드러운 것, 즉 ㄹ과 딱딱한 것, 즉 ㄱ이 함께 뒤엉켜 있는 상태에 ㄺ이 쓰이는 것 같다. 갉는 것은 딱딱한 것, 즉 ㄱ을 없애가는 ㄹ의 과정이지 않나. 긁는 것도 마찬가지고. 낡는 것은 생기가 넘치던 ㄹ이 딱딱한 ㄱ으로 변해가는 과정이고 얽는 것은 연한 것인 ㄹ과 딱딱한 것인 ㄱ이 '얽히고 설키는' 과정이다. 삵은 고양이처럼 귀여운 ㄹ이지만 맹수로서 사나운 ㄱ이고, 닭은 ㄹ처럼 '훨훨' 날아가고 싶지만 얼마 못 날고 ㄱ이 되어 땅에 '뚝' 떨어지는 새다. 칡은 살아있는 ㄹ이지만 거칠고 딱딱한 ㄱ이고 흙도 부드러우면서 거칠다.

12.
모든 사람은 늙어가고 있다. 갓 태어난 신생아도 어제보다 오늘 하루만큼 늙은 것이다. 내가 어쭙잖게 생각해 본 ㄺ 이론대로라면 나이를 먹어 간다는 것, 즉 늙는다는 것은 부드러운 ㄹ과 딱딱한 ㄱ이 혼재되어 있는 상태이지 않나 싶다. 살아있는 ㄹ 받침에서 죽어있는 ㄱ 받침으로 가는 중간 과정이 늙어가는 ㄺ 받침인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든다.

13.
모든 사람은 늙어가고 있기에 모든 삶은 ㄹ도 ㄱ도 아닌 ㄺ이다. 반대되는 두 개념, 모순되는 두 개념이 동시에 존재하는 것이 삶이다. 그리고 이 점을 예리하게 잡아낸 글들이 훌륭한 문학 작품이 된다. 스탕달의 적과 흑은 적(赤)으로 상징되는 속(俗)과 흑(黑)으로 상징되는 성(聖)을 보여주고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은 선과 악이 한 사람 안에 공존하는 모습을 다룬다. 2000년 전에 바울이 뭐라고 했나.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 (중략)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모순 속에서 살아있고자 발버둥 친 사람의 입에서는 이런 말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그리고 뒤에 덧붙는 말이 있다. "힘들어 죽겠네." 바울 정도나 되니까 고상하게 "이 사망의 몸에서..." 라는 표현을 쓸 수 있었던 것이다.

14.
인간은 살아있는 한 이 ㄹ과 ㄱ의 모순을 절대로 혼자서 풀 수 없다. 그러한 시도는 인류 역사에서 지금까지 항상 실패로 끝났다. 그래서 지상낙원이 없는 것이고 존 레논의 이매진은 아무리 노래 가사 속에서 존 레논이 자기는 몽상가가 아니라고 외쳐도 영원히 이루어질 수 없는 몽상인 것이다. 역사 속에서 사람들은 언제나 이상과 현실, 선과 악, 성과 속 사이에서 갈등하고 힘들어하다가 혹은 타협하고 혹은 은둔하고 혹은 타락하고 혹은 화를 내고 혹은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이런 상황에서 마음이 꼬이게 되면 까뮈의 이방인에 나오는 주인공 뫼르소처럼 괜히 애먼 사람을 총으로 쏴서 죽이게 된다. 장담하는데 앞으로도 수많은 사람들이 수많은 시도를 하겠지만 바울의 방식 말고는 다 역시나 실패할 것이다. 바울의 해결 방법은 2000년 된 베스트셀러인 로마서에 이미 다 나와 있으니 관심 있는 사람은 찾아서 볼 일이다.

15.
ㄹ을 가지고 참 많은 이야기를 했다. ㄹ은 5획이나 되는, 한글 자음 중 획이 가장 많은 글자다 (양심적으로 쌍자음, 겹자음은 제외하자). 오른쪽으로 가는 듯 하다가 아래로 내려갔다가 왼쪽으로 돌아가는가 싶더니 다시 아래로 내려간 뒤 오른쪽으로 빠진다.

재미있는 것은 현대 한글 자음에서 ㄹ만 글자가 만들어진 원리가 다르다는 것이다. 훈민정음에는 왜 ㄹ을 하필이면 딱 그 모양으로 만들었는지 자세한 설명이 되어 있지 않다. 훈민정음은 구강구조를 시각화한 ㄱ, ㄴ, ㅁ, ㅅ, ㅇ 5개가 기본 자음이며 거기에 발음이 세게 나면 획을 더하는 식으로 해서 ㄱ에서 ㅋ을, ㄴ에서 ㄷ과 ㅌ을, ㅁ에서 ㅂ과 ㅍ을, ㅅ에서 ㅈ과 ㅊ을, ㅇ에서 된이응 ㆆ과 ㅎ을 만들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옛이응 ㆁ, ㄹ, 반치음 ㅿ에 대해서는 ㅇ, ㄴ, ㅅ에 비해 발음이 세게 나는 것은 아니지만 모양을 다르게 하기 위해서 ㅇ, ㄴ, ㅅ에 획을 더해서 만들었다고만 설명하고 있다. (其因聲加畫之義皆同. 而唯ㆁ爲異. 半舌音ㄹ, 半齒音ㅿ, 亦象舌齒之形而異其體, 無加畫之義焉.) 이 중 지금까지 사용되고 있는 글자는 ㄹ 하나뿐인데, 즉 ㄹ은 ㄴ과 비슷한 소리이지만 ㄴ에 획을 더한 ㄷ, ㅌ이 ㄴ보다 소리가 센 것에 비해 ㄹ은 ㄴ에 획이 엄청 많이 추가되었지만 소리가 센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16.
ㄹ의 이러한 특성이 삶의 특성이지 않나 싶다. 우리는 최대한 많은 것은 규칙 안에 넣고 싶어하지만 결국 삶에는 규칙을 적용할 수 없는, 그런데 무시할 수도 없는 이질적인 요소들이 존재한다. 인간의 말, 즉 자연어만 봐도 그렇다. 그렇게 체계적으로 만든 훈민정음이지만 ㄹ처럼 이질적인 글자가 존재하고, 세상 그 어떤 자연어도 문법에 예외가 없는 경우는 없다. 엘비스 프레슬리의 그 유명한 노래 Love me tender는 ('텐더야, 나를 사랑하거라' 가 아닌 이상) 문법적으로 틀렸다. Love me tenderly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렇게 예외와 시적 허용이 나타나는 것이 인간의 언어이고, 이런 요소들이 언어를 풍성하게 한다. 이런 불확실한 요소들을 다 제거해서 명확하게 만든 언어들도 있는데 대개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려워하는 언어들이다. C, C++, 자바, 파이썬, 어셈블리....

17.
그러니 규칙적으로 살려고 노력하더라도 여유를 잃지 말자. 피천득 선생님의 수필이라는 제목의 수필에 이런 구절이 있다.

"덕수궁 박물관에 청자 연적이 하나 있었다. 내가 본 그 연적은 연꽃 모양을 한 것으로, 똑같이 생긴 꽃잎들이 정연히 달려 있었는데, 다만 그 중에 꽃잎 하나만이 약간 옆으로 꼬부라졌었다. 이 균형 속에 있는 눈에 거슬리지 않는 파격이 수필인가 한다. 한 조각 연꽃잎을 꼬부라지게 하기에는 마음의 여유를 필요로 한다. 이 마음의 여유가 없어 수필을 못 쓰는 것은 슬픈 일이다."

내가 감히 덧붙이자면 그러한, '균형 속에 있는 눈에 거슬리지 않는 파격'이 바로 우리네 삶을 삶 답게 만들어주는 요소이다. 이 글의 맨 앞에서 ㄹ이 한국어의 특성이라고 말했던 것 처럼. 그러니 우리도 청자 연적이라는 각자의 삶에 있는 꽃잎 하나 정도는 약간 옆으로 꼬부리자. 그 꼬부라진 꽃잎 하나가 삶을 삶 답게 만들어준다. 삶의 원형인 살다라는 동사에도 ㄹ 받침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면서.

글에는 어떤 내용을 쓸 지 생각을 어느정도 정리한 후 쓰는 글과 무슨 내용을 쓰게 될 지 모르는 상태에서 무작정 쓰기 시작하는 글 두 종류가 있다. 후자는 말로만 보면 낭만적으로 보이지만 실은 졸필이 되기 일쑤다. 용 머리로 거창하게 시작해서 뱀 꼬리로 끝나게 되는, 항간의 표현을 빌리자면 글이 갈수록 '힘이 빠지는' 경우가 많고, 글이라면 모름지기 주제가 있어야 할 텐데 주제부터가 중구난방인 경우도 심심찮게 발견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글은 무엇을 쓸 지 모르겠는 상태에서 그냥 써 보기로 했다. 마음이 참 복잡하고 혼란스러워서 뭐를 써야 할 지 모르겠지만, 그렇지만 이 상태를 내 속에만 담아놓자니 견딜 수가 없어서 그렇다. 그래서 이번 글은 잘 정돈된 멋진 그림이 아니라 급류에 떠내려가는 작은 배 안에서 무작정 셔터를 눌러서 찍힌 사진에 가깝다. 운이 좋다면 평소에는 전혀 볼 수 없던 물보라가 한 가득 찍혀 있을 지도 모른다.

모교 이름이 자사고 및 외고 폐지 논란으로 인해 신문지상에 오르내린 지도 꽤 오래 됐다. 지금대로라면 2025년에 학교를 닫게 된다고 한다. 나야 모교가 계속 남아있게 되었으면 좋겠지만 지금 이 폐지 논란 자체에 대해 왈가왈부할 생각은 없다. 이미 수많은 사람과 단체가 치열한 토론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폐지 논란에 대해 내가 하고 싶은 말과 내가 할 말에 대해 누군가가 반박할 말이 이미 인터넷에 널려 있기 때문이기도 하며, 그 무엇보다도 펜싱같이 상대방 논리의 빈틈을 날카롭게 찔러 들어가 상대의 살에 내 칼을 박아넣고 돌려 째고 후벼서 파내는 방식의 토론으로는 아무 것도 바꾸지 못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이 글을 빌어 써 보고자 하는 것은 모교 폐교에 대한 가 혹은 부가 아니라 내가 왜 모교 폐교 예정 소식으로 인해 슬퍼하는가에 대한 자기 관찰과 자기 분석, 그리고 자기 표현이다.

내 고등학교 시절은 아무리 좋게 표현해도 행복하지는 않았다. 군인들은 제대하고서 군대에 다시 가는 악몽을 꾼다고들 하는데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20년이 다 되어 가는 지금까지도 일 년에 몇 번씩 고등학교를 졸업하지 못해 학교에 다시 가는 악몽을 꾼다. 우리 고등학교 동문 중 학교를 쉽게 다닌 사람은 없겠지만 나는 학교 생활이 유달리 힘들었다. 설립 초창기였던 학교의 미완성된 시스템은 학생들을 극한까지 몰아붙였고, 중학생때까지 겪어보지 못했던 공부에 대한 중압감과 기숙사라는 낯선 환경에서의 생활, 그리고 이런저런 억울했던 일들은 나를 거의 미칠 지경으로 만들었다.

요즘 육아 방송을 보다 보니 아이들에게 감정을 표현할 기회를 안 주면 몸에 병이 난다고 하던데 내가 딱 그랬다. 1학년 2학기가 막 시작되었을 때 처음으로 기절을 했고 그 후 기절의 빈도는 점점 높아졌다. 입학 후 첫 기절까지 6개월, 그 다음 기절까지 3개월, 그 다음까지 1개월 반, 그 다음까지 3주, 그 다음까지 10일 하는 식으로 기절과 다음 기절 사이의 간격은 얄궂을 정도로 정확하게 공비가 0.5인 등비수열을 이루며 줄어들었고, 결국 나중에는 하루나 이틀 간격으로 기절을 하다가 하루 8교시 중 4교시를 양호실에 누워 있는 신세가 되었다. 코와 입에서 피를 쏟은 적도 있었다. 기숙사 학교였기 때문에 부모님은 내 상태를 잘 알지 못하셨고 설령 아셨다 한들 부모님의 도움을 받을 수도 없었다. 그렇게 하루 걸러 하루 꼴로 기절하던 어느 날 마음이 너무 터질 듯이 답답해서 학교 운동장을 미친 듯이 달렸다. 10km를 무작정 달렸고, 그 날 나는 또 기절했고, 다음날 학교는 나를 휴학시켰다. 저렴한 표현을 쓰자면 그렇게 나는 고등학교를 1년 꿇었다.

1년 후 복학해서도 아픈 것은 마찬가지였고 역시 기절을 했다. 다행히도 고2까지만 마치고도 대학에 갈 수 있게 해 주는 조기졸업자 수시 전형으로 어찌어찌 대학에 붙어 학년으로는 고2로, 나이로는 동기들과 함께 졸업을 할 수 있었다. 수시 발표가 추석 연휴 때 났던 것이 아직도 기억이 나는데 그 때까지가 내가 버틸 수 있는 한계였다. 만약 학교를 고3까지 다녀야 했다면 졸업을 제대로 했을 자신이 나에게는 없다. 그래서 졸업 못 한 악몽을 아직까지도 꾸는 것 같고.

누군가는 내 이야기를 보면서 학생을 그렇게 힘들게 하는 학교는 없어져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말을 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졸업한 후 20년에 가까운 시간이 흐르는 동안 모교에 많은 변화가 있었을 것이기에 그 논리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지금의 학교에 대해서는 지금의 재학생들이 할 말이 따로 있을 것이다. 그 때의 모교는 생긴 지 정말 얼마 안 되어 시스템이 정립되지 않은, 사람으로 치면 아기나 어린이 단계에 있는 미숙한 상태였다.

학교만 미숙했을까. 나도 미숙했다. 기숙사에 살면서 부모로부터 인생에 대해 배울 기회가 차단되었기 때문에 난생 처음 겪는 여러 어려움에 대해 17살의 나는 미숙하게 대처할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미숙하게 상처를 입고, 미숙하게 상처를 주고, 미숙하게 도움을 받고, 미숙하게 도움을 주었다. 미숙하게 나 자신을 몰아붙였는가 하면 나를 몰아세우는 나 자신에게 미숙하게 대들기도 했다. 잘 한 일도 있었고 잘못 한 일도 있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 모든 결정은 온전히 내가 내렸다는 것, 그리고 그에 따른 결과도 모두 다 내가 감당해야 했다는 것이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환경이었으니까. 그 곳에서는 그 누구도 내 인생을 대신 살아주지 않았고 내가 내려야 할 결정을 대신 내려주지도 않았다. 그래서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에 성인이 되어 있을 수 있었다. 별게 아니라 잘 하든 서툴든 자기 삶의 조종간을 자기가 잡고 있는 것이 성인이니까.

나는 이과였는데 모교 이과 건물 입구에는 '공부를 좋아하는 학생에게는 천국, 공부를 싫어하는 학생에게는 지옥'이라는 현수막이 큼지막하게 붙어 있었다. 저기서의 천국은 파라다이스(paradise)였을까 아니면 헤븐(Heaven)이었을까. 모교는 종교와는 관련이 없는 곳이었으니 아마도 파라다이스의 의미로 붙여놓았던 것 같은데, 나는 공부를 좋아했지만 학교 생활이 그렇게 힘들었던 것을 생각해 볼 때 파라다이스라는 말에는 쉬 동의하기가 어렵다.

하지만 학교가 무엇을 의도했든 나는 헤븐으로서의 천국을 고등학생 때 살짝살짝 맛보았다. 단 맛은 쓴 맛이 있을 때 더 잘 느껴지고, 햇살은 먹구름을 뚫고 들어올 때 더 밝게 느껴지는 법이다. 인생을 아직은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아니 스스로 인생을 책임질 자격이 없어서 서류에 서명도 할 수 없는 미성년(未成年)의 그 나이에게는 너무나도 버거웠던 삶을 겨우겨우 어찌어찌 스스로 살아가면서 그 고통이 없었다면 보지 못했을 천국도 보게 되었다.

대략 20년 전의 모교, 그 곳에는 미숙하나마 한 명의 독립적인 성인이 되어가고 있는 번데기같은 내가 있다. 기숙사 305호 왼쪽 방에서, 텅 비어 있을 때 혼자 몰래 찾아가서 꺽꺽거리며 울던 혼정실에서, 기절한 채로 병원으로 실려가던 차 뒷자리에서 나라는 애벌레는 서서히 고치를 만들었고, 그 고치 안에 들어가서 번데기가 되었고, 이윽고 그 번데기를 깨고 어른이 되어 나왔다. 그 모든 일이 일어난 그 학교가 없어질 수도 있다는 이야기는 생각만으로도 슬프다.

"XX야, XX는 어디 사람이야?"
"옹꽁아암. (홍콩사람.)"
"아니야, XX는 한국 사람이야."
"나는 옹꽁 아는데? (나는 홍콩 사는데?)"

순간 뭐라 대답해야 할 지 말문이 막혔다가 "아빠도 한국 사람이고 엄마도 한국 사람이니까 XX도 한국 사람이지." 로 대화를 마무리했다. 다행히 애가 더 묻지는 않았다. 교포 2세들이 정체성 혼란을 겪는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아직 유치원도 안 가는 아이가 이럴 줄이야. 그래도 일 년에 서너 달은 한국에 보내 놨었는데. 집에서도 일부러 한국말을 썼는데. 그런데 홍콩 영주권도 없으면서 자기가 홍콩 사람이라니. 나는 겪어본 적 없는 저 정체성 혼란에 어떻게 대응해줘야 할 지 머릿속이 하얬다.

아니, 아니지. 나도 정체성 혼란을 겪은 적이 있구나.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다 북한 분이셨다. 할아버지는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돌아가셨지만 나는 어릴 때 할아버지 친구분들을 자주 뵈었다. 실향민들은 대부분 친척이 적다. 친척이 북한에 남아 있으니까. 그래서 실향민들끼리는, 특히 동향 사람들끼리는 정말 가깝게 지낸다. 할아버지 친구분들도 그래서 나를 좋아하셨던 것 같다. 내가 어린이였을 때 하루는 할아버지 친구분들이 나에게 물으셨다.

"너는 고향이 어디야?"
"경기도 XX시요."
"예끼! 평안북도 XX군이라고 해야지!"

괜히 혼난 나는 기분이 안 좋았다. 나는 태어나서 경기도에서 산 기억밖에 없는데 왜 나를 평안북도 사람이라고 하시는건지. 그런 나를 붙잡고 할아버지 친구분들은 연습을 시키셨다.

"자, 너 고향이 어디라고?"
"평안북도 XX군이요."

이해는 안 갔지만 나는 원하시는 대답을 해 드렸고 할아버지 친구분들은 만족해하셨다.

우리집 애도 이런 상황일 거다. 자기는 놀이터에서 친구들하고 놀 때 한국말을 한 마디도 안 하는데, TV에서도 한국말이 안 나오는데, 밖에 나가면 다 한자와 알파벳으로 된 간판뿐인데 왜 엄마아빠는 나를 한국사람이라고 할까. 그렇게 궁금해하다가 엄마아빠가 하도 너는 한국사람이라고 하니 그냥 그렇다고 해 두자 한 것은 아닐까. 몇십 년 전 내가 그냥 평안북도 사람 하기로 했던 것 처럼.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향이 한 곳이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고향이 두 곳이다. 그 사람들에게는 나의 살던 고향이 있고 조부모 혹은 부모가 말해주는 너의 살았어야 했던 고향이 또 있다. 이 사실을 깨닫고 나니 왜 평안북도 역시 내 고향이 될 수 있는지 이제야 이해가 간다. 하지만 아직 어린이인 우리 애에게 이 것을 이해시킬 자신은 지금은 없다. 너도 고민하다 보면 어느 순간 깨닫게 되겠지. 스스로 답을 찾아가는 그 과정도 재미있을거야.

또 유명인의 대학원 졸업 논문 표절 논란이 터졌다. 말이 논란이지 지금까지 나온 내용만 보더라도 다른 사람 논문을 복사 및 붙여넣기 한 것이 확실해 보인다. 올해 들어서만 벌써 몇 번째인지. 특정인에 대해서가 아니라, 이 사회에 팽배한 이 현상에 대해 짧게 이야기를 해 보고 싶다.

 

이런 기사를 볼 때마다 씁쓸해진다. 누군가는 그렇게 편하게 석사, 박사를 땄겠지. 그렇게 전문가 칭호를 얻어서 엉터리 지식으로 책을 쓰고 TV활동을 해서 명예를 얻고 엄청난 수입을 올린다. 그러다가 한참 나중에 논문 표절 논란이 일어나면 자숙하겠다고 하며 방송 활동 잠시 중단. 이미 일반인들이 평생 벌어도 못 벌 돈을 번 후다. 공소시효가 이미 지나서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는 것은 덤.

 

나는 석사를 3년 했다. 2년차에 이미 거의 다 써 놓았던 졸업논문이었지만 무슨 방망이 깎던 노인마냥 졸업논문 다듬는 데에만 1년이 더 걸렸다. 지도교수님은 석사라고 봐 주는 법이 없으셨다. 그렇게 평생 아무도 읽지 않을 석사논문을 쓰느라 밤을 새고 문헌조사를 하고 실험을 돌리고 몸을 버리고 목디스크를 얻고 나이를 먹었다.

 

한 다리 건너 누군가는 실력 좋은 포닥에게 돈을 주고 석사 논문을 대필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또 어떤 포닥이 써서 유명 학회에 뽑힌 논문은 아무리 재현하려 해 봐도 그 수치가 안 나왔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뭐 멀리서 찾을 필요도 없이, 올해 한국에서만도 유명인의 석사, 박사 논문 표절 사건이 얼마나 많이 터졌나.

 

임재범 말을 흉내내보고 싶다. "내가 만일 쓸쓸하고 외로울때면 누가 나를 위로해주지? 그건 바로 여러분." 아쉽게도 한국 사회는 그렇지 않아 보인다. 논문을 표절한 유명인의 인스타그램에는 힘내세요, 화이팅입니다가 엄청나게 달려 있다. 내 마음을 가장 아프게 하는 것은 "다 관례적으로 그렇게 하던거 아니에요? 그게 뭐가 큰 문제에요?" 라는 댓글들이다.

 

예전같으면 화가 났을텐데 이젠 그냥 우울해진다. 요즘은 요령없이 살고 바보같이 석사 논문 정직하게 쓰겠다고 고생한 내가 바보인건가 하는 생각까지 든다. 이런게 뉴노멀이라는 건가 싶기도 하고. 그렇게 고생해서 석사를 딴 뒤 내 삶이 바뀐 것이 있다면 "척척석사" 라는 놀림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너는 박사 안 했으니까 척척석사네. 아 여기 척척석사 오셨다. 척척석사님 한 말씀 해 주세요.

 

어제 성경 잠언을 읽는데 의롭게 살며 적게 버는 것이 불의하게 살며 많이 버는 것보다 낫다는 말이 있었다. 그래, 누군가는 표절로, 누군가는 대필과 수치 조작으로 학위를 따서 전문가 행세를 하는 동안 바보같이 척척석사로 사는 또다른 사람들이 있다. 잠언은 그런 척척석사들이 더 낫다고 하더라. 만국의 척척석사여 기운내라.

J에게,

내가 지구의 여러 언어를 관찰하면서 이상하게 생각했던 것 중 하나는 단수와 복수에 대한 구분이었습니다. 지구의 언어 중에는 당신이 쓰고 있는 한국어처럼 단수와 복수를 문맥에서 파악하는 언어도 있고 영어처럼 단수와 복수를 철저히 구분하는 언어도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한국어에서는 사과가 하나 있든지 세 개 있든지 다 '사과'가 있는 것이지만 영어에서는 사과가 하나 있을 때에는 'an apple'이, 세 개 있을 때에는 'apples'가 있는 것입니다.

이 차이로 인해 "오래된 연못에 개구리가 뛰어드는 물소리"라는 일본의 하이쿠 한 구절을 영어로 번역할 때에 학자들이 개구리가 한 마리인지 여러 마리인지를 따지고 들었다는 웃지 못할 일이 있었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한국인이나 일본인에게는 개구리가 연못에 뛰어들었다는 것이 중요하지 그게 몇 마리인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서구인들은 그 개구리가 몇 마리인지 끝까지 따지고 들어서 'a frog'라고 할 것인지 'frogs'라고 할 것인지를 정해야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거기서 더 나아가 'jumps'라고 할지 'jump'라고 할 지도 정해야 했고 말입니다. (덧붙여, 명사는 복수일 때에 s가 붙는데 동사는 단수에 쓰일 때에 s가 붙는다는 것이 재미있지 않습니까?)

내 입장에서는 지구인들은 동양인이든 서양인이든 정말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습니다. 내가 사는 이 곳 화성에서는 단수나 복수가 아니라 홀수냐 짝수냐를 따집니다. 사과가 홀수 개 있으면 '사과홀', 짝수 개 있으면 '사과짝'이라고 부르는 식입니다. 짝수는 정확히 반으로 나눌 수 있지만 홀수는 반으로 나눌 수 없기 때문입니다. 듣기로는 지구에서는 언어학자가 아니라 수학자들이 홀수와 짝수를 엄밀히 구분한다고 들었습니다. 이게 단수, 복수를 따지는 것보다 훨씬 쓸모가 많지 않습니까? 사과 세 개와 사과 백만 개를 똑같이 'apples'라고 부르는 엉성한 분류법을 사용하느니 차라리 단수든 복수든 다 똑같이 '사과'라고 부르는 것이 더 낫겠습니다.

지구의 언어에는 이 외에도 흥미로운 점이 정말 많았습니다. 앞으로도 기회 되는 대로 편지를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화성에서,
WQ

고등학생 때 국어 선생님이 그 달의 필독 도서였던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에 대해 설명하시면서 여기서의 기술은 아트(art)이지 절대로 테크닉이 아니라고 강조하셨던 적이 있었다. The Art of Loving이라는 원제에서 영단어 art가 의미하는 바를 정확히 표현하는 한국어 단어가 없어서 어쩔 수 없이 기술로 번역되었다는 설명과 함께. 그 때부터 지금까지 내 머릿속 한 구석에는 art를 정확히 표현해주는 한국어 단어를 찾고자 하는 욕구가 항상 자리잡고 있게 되었다.

첫 후보 단어를 찾아낸 것은 그로부터 약 십 년 정도 후였다. 장자에 나오는 포정이 문혜군 앞에서 소를 잡는 이야기가 실마리가 되었다. 짧은 이야기 중에서도 앞 부분만 간단히 옮기면 다음과 같다.

포정이 문혜군(文惠君)을 위해 소를 잡은 일이 있었다. 그가 소에 손을 대고 어깨를 기울이고, 발로 짓누르고, 무릎을 구부려 칼을 움직이는 동작이 모두 음률에 맞았다. 문혜군은 그 모습을 보고 감탄하여 "어찌하면 기술이 이런 경지에 이를 수가 있느냐?"라고 물었다. 포정은 칼을 놓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제가 반기는 것은 '도(道)'입니다. 손끝의 재주 따위보다야 우월합니다. 제가 처음 소를 잡을 때는 소만 보여 손을 댈 수 없었으나, 3년이 지나자 어느새 소의 온 모습은 눈에 띄지 않게 되었습니다. 요즘 저는 정신으로 소를 대하지 눈으로 보지는 않습니다. 눈의 작용이 멎으니 정신의 자연스런 작용만 남습니다. (후략)"

이 이야기를 읽으며 기술이 기술 자체로 궁극의 경지에 다다르는 순간 예술의 문턱을 넘게 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예술의 경지에 오른 기술이 art이지 않을까, 그러면 기술이 예술을 만나는 지점이니 기예(技藝)라고 번역하면 되지 않을까. 그렇게 한동안 The Art of Loving을 나 혼자서는 '기예(技藝)로서의 사랑' 정도로 번역하며 몇 년을 보냈다.

그러던 중 얼마 전에 갑자기 번뜩 한 생각이 들었다. Art를 어떻게 번역할지를 고민할 것이 아니라 영어권 화자들이 동아시아의 어떤 단어를 art로 번역해갔는지를 보면 확실하겠다는 생각이었다. 이건 정말 제대로다 하는 생각이 들어서 흥분된 마음으로 동아시아 문학 중 영어로 번역된 제목에 art가 들어간 글을 찾기 시작했고, 의외로 매우 쉽게 그런 책을 찾았다. 손자병법, The Art of War.

손자병법은 단순히 전쟁 잘 하는 기술을 적어놓은 책이 아니라 전쟁과 평화를 바라보는 관점과 사상을 전달함으로써 독자의 정신을 고양하는 책이다. 이러한 부류의 글을 한자 문화권에서는 간단하게 법(法)이라고 불렀던 것이고, 손자(孫子)가 쓴 전쟁(兵)에 대한 법(法)을 영어권에서는 The Art of War로 옮겨갔던 것이다.

그러니 에리히 프롬의 The Art of Loving은 사랑의 기술이니 기예로서의 사랑이니 할 필요 없이 간단명료하게 '사랑하는 법', 아니면 더 줄여서 '사랑법' 이라고 하면 될 일이었다. 이렇게 거의 20년에 걸친 고민이 드디어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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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pollyanna 2020.08.12 02:16

    누군가 읽고 생각하고 쓴 것을 보는 걸 좋아합니다. 그런데 그럴 수 있는 곳이 많지는 않은 것 같아요. 예전에는 좀 있던 것 같은데 시간이 흐르며 어른으로서의 책무가 늘어서 바빠졌다거나 그럴 시간을 아껴 재테크공부를 해야한다거나, 아니면 그걸 영상에 담아 유튜브에 올려서인지도 모르겠어요. 자신을 위해 자기생각을 정리해 두기 위해 올리지만, 그래도 누군가 읽어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블로그들을 지탱한다고 저는 생각해요. 가끔 찾아와 오래된 글도 새글도 보고 가겠습니다. 부디 오래 그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 크롬망간 2020.08.12 17:00 신고

      블로그에 글을 꾸준히 올리면서 누군가는 읽어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마음 한 구석에 항상 있었는데 이렇게 글 읽어주시고 댓글 남겨 주시니 감사합니다. 생각나실 때마다 들러 주세요 ^^

  2. bravebird 2021.01.08 09:31 신고

    크롬망간 님 오랜만입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예전에 장인에 대해서 제가 남긴 글에 포정 이야기를 남겨주신 기억이 나네요. 그후 저도 장자를 읽었습니다. 사랑의 기술, 장자, 손자병법 모두 재미있게 읽은 책이라 반갑네요.
    동아시아의 어떤 단어를 art로 번역했는지 찾아들어가는 방법 정말 좋은 아이디어네요. 사랑법, 사랑의 방법, 이게 그 책 내용을 잘 담는 절묘한 번역이네요.

    • 크롬망간 2021.01.09 23:44 신고

      와 정말 오랜만이에요! 반갑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서로 비슷한 장르의 책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새해를 맞아 책 추천해주세요! ㅋ

    • bravebird 2021.01.10 09:19 신고

      저 세 권이랑 비슷해서 아마 읽어보셨을 것 같지만
      - 에리히 프롬 <자유로부터의 도피>
      - 노자 <도덕경>
      - 마키아벨리 <군주론>
      요렇게 세 권이 딱 생각납니다 ㅎㅎㅎ 제일 좋아하는 책들이에요!

      제가 올해부터 방송통신대에서 컴퓨터과학/통계학을 공부하려고 하는데 완전 입문자가 볼 만한 교양서(기술서X) 혹시 추천 부탁드려도 괜찮을까요? 저는 언어 전공이라 언어, 인지 쪽에 관심이 있어서 기계언어는 어떤가 배워보려는 것도 있는데요, 크롬망간 님이 컴퓨터 쪽 일하시면서 언어에도 관심이 많으신 것 같아 왠지 적당한 책 알려주실 수 있을 것 같아요!

  3. 크롬망간 2021.01.11 08:50 신고

    책 추천 감사합니다. 군주론은 꼭 풀버전으로 읽어봐야지 하고서 장바구니에 넣어놨었고 도덕경도 읽어보고 싶었는데 정말 좋아하는 책 장르가 비슷하네요! 여쭤보기를 잘 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ㅎ 자유로부터의 도피도 읽어봐야겠어요 ^^

    컴퓨터과학이라는 표현이 참 반갑습니다 ^^ 대부분의 사람들이 컴퓨터공학이라고 부르는데, 저는 이쪽 일을 하기는 하지만 공학보다는 과학쪽에 관심이 더 많았거든요 ㅋ

    전공 분야라 그런지 기술서적은 오히려 추천해드리기가 쉬운데 교양서적은 어제부터 계속 생각해봐도 떠오르는 것이 없네요 ㅠ 그런데 책은 아니지만 좋은 블로그가 있어요! 아는 동생이 운영하는 블로그인데 전산 언어학을 다루고 있어서 bravebird 님께서 재미있어하실 것 같아요 ㅋ 링크는 https://jiho-ml.com/weekly-nlp-0/ 입니다 ^^

    • bravebird 2021.04.29 15:12 신고

      오옷 크롬망간님 저 오랜만에 블로그 들렀다가 답글을 이제야 발견했어요!! ㅎㅎㅎ 종종 들를 때마다 컴퓨터 쪽 전공하시면서도 글도 잘 쓰시고 인문사회분야에도 관심 많으신 것 같아서 배우고 싶다고 생각했었어요 :D

      전산 언어학이라니 마침 딱 궁금했던 분야인데 아는 분이 그쪽 일에 종사하고 계시는군요! 링크해 두고 종종 찾아가서 따라 연습해봐야겠어요! 저는 일단 통계학이랑 R 같은 것부터 한번 배워보고 있는데 엑셀 마우스 클릭으로 쉽게 하던 걸 일일이 입력해 넣으려니 익숙하지가 않더라구요. 제가 스스로 과제를 만들어서 연습을 많이 해야 할 것 같아요. 원래 처음에는 이렇게 노가다처럼 배우는 거 맞는 거죠?ㅋㅋㅋ

세상에 있는 모든 문제는 풀기 위해 필요한 정보가 다 주어진 문제와 일부만 주어진 문제, 둘 중 하나에 속한다. 필요한 정보가 다 주어진 문제란 수능 수학 문제 같은 것을 뜻한다. 쉬운 문제도 있고 어려운 문제도 있지만 어쨌든 문제를 풀기 위해 필요한 정보는 문제 속에 이미 다 들어 있다. 학교에서의 시험은 이런 종류의 문제를 잘 푸는 학생을 가려내는 데에 특화되어 있고, 그런 학생을 우리는 똑똑하다고 부른다.

필요한 정보가 일부만 주어진 문제는 우리가 실제로 삶 속에서 맞닥뜨리는 문제들이다. 이 사람하고 결혼을 할까 말까, 어느 대학 어느 과에 지원할까, 갖고 있는 주식이 최근에 10% 올랐는데 이제 그만 팔까 아니면 더 쥐고 있을까, 등등. 삶에서 일어나는 많은 일들에는 딸린 변수가 너무 많아서 모든 것을 사전에 다 분석하기가 불가능하고, 설령 분석할 수 있다 해도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 떠도는 이야기로는 독일의 철학자 칸트가 어느 날 청혼을 받았고, 고민을 하며 결혼에 대해 연구한 후 최종적으로 그 청혼을 받아들이기로 했으나 그 때는 이미 7년이 흘러서 그 여성이 이미 다른 사람과 결혼해 자녀까지 두고 있던 때였다고 한다.

이렇게 불충분한 정보 하에서 좋은 결정을 내리는 사람을 판단이 좋다고 부른다. 그리고 학교를 졸업한 후 사회인으로 살아가다 보면 똑똑한 사람이라고 해서 딱히 판단이 좋은 것은 아니며, 똑똑하기보다 판단이 좋기가 더 어렵고, 똑똑한 것 보다 판단이 좋은 것이 인생에서 더 중요하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렇기에 똑똑하기만 하고 판단력이 안 좋은 사람을 가리키는 헛똑똑이라는 말이 있는 것이리라. 판단력은 정규 교육 과정에서 깊이 가르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경험 속에서 몸에 익는 것이며 어느 정도까지는 날카로운 본능의 영역이다.

그런데 이 판단력을 키우는 데에 참 좋은 과목이 있다. 역사다. 역사 속에서 위대한 사람들이 어떻게 판단을 내렸는지를 보면서 간접 체험과 생각을 통해 판단력을 훈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면에서 초중고의 역사 교육이 대체로 지식 전달 및 암기 위주인 것은 아쉬운 일이다. 역사 과목에서 정말로 중요한 것은 지식을 배우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지식이 내 삶에 적용될 수 있도록 몸에 익히는 것이다. 학이시습지 불역열호, 배우는(學) 것 뿐 아니라 익혀야(習) 한다.

한국어에서 관용적으로 쓰이는 말 중 "인생 뭐 있나"라는 말이 있습니다. 매우 자주 쓰이는 말이지만 이 말이 서로 상반된 두 가지 뜻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경우는 드뭅니다.

첫 번째 의미는 "인생에는 그 무엇도 없다"입니다. 여러 의미를 품고 있는 문장의 경우 외국어로 옮겨 보면 뜻이 명확해지는 경우가 많은데, 이 경우 영어로 옮겨 보면 "There is nothing in life"가 되겠습니다. 인생 뭐 있나를 이 의미로 쓰는 경우 허무주의에 빠지고 삶의 의지를 잃게 되기 십상입니다. 혹은 인생이란 의미 없는 것이니 방종에 빠지자는 사고방식으로 연결되기도 합니다. 지양해야 할 용법입니다.

두 번째 정반대의 의미는 "인생에는 걱정할 것이 그 무엇도 없다"입니다. 걱정할 것 대신에 두려워할 것, 겁먹을 것 등을 집어넣어도 말이 됩니다. 영어로 옮기면 "There is nothing to worry about in life"가 되겠습니다. 역시 nothing to worry about 대신에 nothing to fear 등으로 바꾸어도 뜻이 통하겠습니다. 이 경우 인생 뭐 있나라는 말은 긍정의 말, 용기를 주는 말, 희망의 말이 됩니다.

이 외에도 세 번째 의미로 "인생에는 착하게 살 하등의 이유가 없다" 등으로 쓰이는 경우가 있기도 하나, 그런 경우 한 눈에도 이상한 뜻임이 간파되는 바 여기에서는 다루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결국 인생 뭐 있나라는 말은 '뭐'가 수식하는 것이 '인생'인지, 아니면 문장에서 생략된 걱정, 두려움 등의 목적어인지에 따라 그 뜻이 완전히 바뀝니다. 문장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숨어 있는 목적어를 발견하는 바로 그 순간에 이 문장은 부정에서 긍정으로 바뀝니다. 내 인생을 부정하는 시각에서 벗어나 나를 두렵게 하고 나를 앞으로 더 나아가지 못하게 했던 것을 훌훌 털어버리며 희망을 보게 되는 방향으로 돌아서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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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포토 플리즈. (No photo, please.)"

내 생각엔 무덤 주인은 무덤 사진 찍는 것을 정말 좋아할 것 같았는데 관리인은 사진을 찍지 말라고 했다. 어쩔 수 없이 전화를 주머니에 넣어야 했다.

지난 2월에 이스라엘에 출장을 갔었다. 이스라엘까지 갔는데 예루살렘에 안 가볼 수는 없겠다 싶어 주말에 십만 원이 넘는 왕복 택시비를 써 가며 예루살렘에 다녀왔다. 예상치 못한 출장이었기 때문에 예루살렘에 도착한 후에야 스마트폰으로 정보 검색을 시작했다.

성묘 교회(Church of the Holy Sepulchre)라는 곳이 눈에 띄었다. 예수님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곳에 서기 326년에 콘스탄티누스 1세가 지은 교회라고 했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30년 넘게 교회를 다녔지만 예수님 무덤 장소가 비록 추정이라 할지언정 지금까지 남아있다는 것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 이래서 성지 순례를 한번쯤은 가 봐야 한다. 내 경우는 성지 출장이었지만.

교회 건물 안으로 들어가서 좀 걷다 보니 사람들이 엄청나게 줄을 서 있는 곳이 있었다. 십자가가 세워졌던 자리라고 했다. 인구밀도 높기로 소문난 홍콩도 그 곳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실제로 그 자리에 십자가가 서 있었을지 아닌지야 누가 알겠나. 하지만 십자가는 예루살렘 그 어딘가에는 서 있었을 것이고, 예루살렘 전체에서 십자가가 서 있었을 확률이 가장 높은 곳이 그 곳이었을 것이라는 것 까지는 무리없이 받아들일 수 있다. 나도 거의 1시간 가량 줄을 서서 십자가가 박혀 있던 홈을 보았다.

십자가 자리를 보고 난 후에는 가뿐한 마음으로 교희 내부를 돌아다녔다. 그러던 중 교회 건물 안에 또다시 건물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사람들이 그 건물을 빙 둘러 줄을 서 있었다. 저게 뭐지 싶어 그 곳에 서 있던 사람에게 물어봤다. "웟 빌딩 이즈 댓? (What building is that?)"

그 사람이 얘는 도대체 뭐 하는 놈이지 하는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지저스 툼. (Jesus' tomb.)" 예수님의 무덤.

난 성묘 교회가 예수님의 무덤 터에 세워진 건물인줄로만 알았지, 그 곳에 실제로 예수님 무덤이 지금까지 남아있는 줄은 몰랐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리고 그렇게 줄이 길 줄 알았으면 십자가 자리가 아니라 여기에 줄을 서는 건데. 시차때문에 머리도 아프고 피곤해서 고민을 좀 하다가, 여기까지 와서 예수님 무덤 안에 안 들어가보는 건 정말 말이 안 되는 것 같아서 줄을 섰다.

십자가 자리와 마찬가지로, 그 자리가 정말로 예수님 무덤이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제일 가능성이 높은 자리인 것은 맞을 것이다. 기독교를 로마에서 처음으로 공인한 로마 황제가 예수님 무덤 자리를 찾으라고 시켰을 때에 신하들이 대충 아무데나 찍었다가는 반역 죄인이 되지 않았을까. 최소한도 당시, 서기 326년의 사람들이 기를 쓰고 찾아낸 장소였을 것이다.

그 때부터 약 300년 전, 대략 서기 26년 경,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후 제자들은 비상식적인 행동을 보인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시는 것을 직접 본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자기들이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신 것을 보았다고 말하고 다니기 시작한 것이다. 그 말을 들은 누군가는 부활을 믿었고 누군가는 믿지 않았다.

그런데 부활을 믿지 않은 사람들을 당황스럽게 한 것이 있었다. 무덤이 비어 있다는 것이었다.

죽은 사람이 살아났다는 이상한 소리를 하는 사람들에게 "야 그 사람 시체가 아직도 여기 무덤에 있잖아!" 하고 말해주며 코를 납작하게 해 주고 싶었을 텐데 공교롭게도 그 무덤이 비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들에게 있어 모든 이야기는 여기에서부터 꼬이게 된다. 뭐야, 무덤이 비어 있잖아. 이건 분명 저 제자라는 놈들이 예수의 시체를 훔쳐간 것일 거야. 그런데 그 제자라는 사람들을 잡아서 매질을 하고 감옥에 가두고 그 중 몇을 죽이기까지 했는데도 그들이 계속해서 살아난 예수를 자기들이 직접 보았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자기 신념 때문에 목숨을 거는 사람이야 고금을 막론하고 존재하지만, 자기들이 시체를 훔쳐 놓고 그 시체가 살아났다고 주장하며 목숨을 거는 비상식적인 사람은 없을 것이었다. 설령 한두 명 정도는 존재할 수 있다고 쳐도 12제자 중 예수를 배반하고 자살한 가룟 유다를 제외한 11명이 모두 그럴 수는 없었다. 목을 잘라 죽이고,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아서 죽이고, 산 채로 솥에 넣어서 끓여도 그 제자들은 부활한 예수를 자기들이 만났다고 끝까지 주장했다. 그리고 예루살렘의 무덤이 비어 있는 한 부활 반대론자들은 예수의 제자들을 완벽하게 반박할 수가 없었다. 심증은 있어도 물증이 없는 셈이었다.

그래서 기독교에서 그 빈 무덤이 중요하다. 부활을 이야기하기에 앞서, 최소한 시신만큼은 그 어디에도 없었던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한 시간을 기다려서 드디어 예수님의 무덤 안에 들어갔다. 빈 돌판이 있었다. 원래는 그 곳에 시신이 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비어 있었다.

안내원은 노 포토 플리즈를 외쳤지만, 그 무덤의 주인이신 예수님은 내가 빈 무덤 사진을 찍는 것을 정말로 원하셨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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