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생 때 읽던 동화책에 이런 내용이 있었다.

어느 날 저녁에 아이가 창 밖으로 아빠의 노래소리를 듣는다. 아빠가 퇴근하고 집에 오셨구나 했는데 그 노랫소리는 저 멀리 멀어져간다. 아빠가 아니고 다른 사람이구나 하고 아이는 생각했다. 한 30분쯤 후 아빠가 집에 오셨다. 아이는 아빠에게 "아빠! 아까 아빠랑 목소리가 엄청 비슷한 사람이 노래를 부르면서 갔어요." 라고 말한다. 그러자 아빠는 그게 자기였다고 한다. 어리둥절해하는 아이에게 아빠가 설명해준다. "부르던 노래가 남아서 마저 부르고 왔단다."

당시에는 아무리 읽고 또 읽어도 도저히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어서 결국 이해하는 걸 포기하고 다음 이야기로 넘어갔었다. 단어나 문장이 이해가지 않는 것이 아니라 도대체 왜 노래가 남았다고 더 부르고 오는지, 그게 무슨 의미를 갖는 것인지가 아무리 생각을 해 봐도 이해가 되지 않았었다.

오늘 초저녁에 나갔다가 밤에 들어오면서 노래를 흥얼거리는데 아파트 입구에 도착했는데도 노래가 남았다. 정확히는 간주와 2절이 남았다. 그래서 더 걸었다. 이어폰도 스피커도 없었지만 고등학생 때 윈앰프로 수도 없이 들었던 노래의 간주는 머릿속에서 저절로 재생이 되었다. 그렇게 들리지 않는 간주를 다 듣고, 남은 2절을 마저 부르고 집으로 들어갔다.

어떤 이야기는 이해하는 데에 생각이 아니라 인생이 필요할 때가 있다. 초등학생 때 읽었던 그 동화가 바로 그랬다. 30년이 걸렸다. 동화 하나를 이해하는 데에, 그리고 도대체 노래가 남았다는 것은 무엇이고 그 남은 노래는 왜 마저 불러야 하는지를 깨닫는, 아니, 느끼는 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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