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리포니아 2022 - 9.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https://youtu.be/PVvgPrHEqCA

 

대학생 때 한 달 넘게 일본 배낭여행을 간 적이 있었다. 하루에 한국 돈 약 4만원 정도로 숙박비와 식비를 포함한 여행비를 충당하던 빠듯한 여행이었다. 여행 중 오키나와에서 우민추(海人, 바닷사람이라는 뜻의 오키나와어)라고 적혀있는 티셔츠를 보았었는데 맘에 쏙 들었지만 한국 돈으로 약 2만원 정도 되던 금액이 당시에는 부담이 되어 몇 날 며칠을 고민하다 오키나와를 떠날 때까지 결국 사지 못했다. 웃기게도 그렇게 돈을 아껴서 그랬는지 여행 후반에는 돈이 남았었다. 그 티셔츠를 몇 장은 충분히 살 수 있을 정도로.

비록 티셔츠는 못 샀지만 그 경험 덕에 깨달은 것이 있다. 살까 말까 고민되면 일상에서는 사지 말아야 하지만 여행중에는 사야 하고, 할까 말까 고민되면 일상에서는 하지 말아야 하지만 여행중에는 해야 한다. 일상에서는 다음, 다다음 기회가 있지만 여행중에는 기회가 한 번씩 밖에 없기 때문이다. 설령 나중에 후회하더라도 여행 중에는 하고 나서 후회하는 것이 하지 않고 아쉬워하는 것 보다 낫다.

캘리포니아 1번 주도(州道)에서의 운전이 7시간을 넘어 8시간 째로 접어들던 때였다. 해는 뉘엿뉘엿 져 가고 도로에는 산그림자가 깔리기 시작했다. 이제는 밤이 되기 전에 빨리 산타 바바라에 도착해서 숙소에 짐을 풀어야 했다. 1번 주도를 달리며 태평양을 보겠다는 목표는 이미 충분히 달성한 후였다. 1번 주도가 아직 남아있기는 했지만 남은 부분은 바닷가가 아니라 내륙의 외진 마을들을 거쳐가는 길이었다. 내비게이션은 빙빙 돌아가는 1번 주도 대신 가까운 길을 알려주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1번 주도를 더 달려보고 싶었다. 특별히 그래야 할 이유는 없었다. 반대로 그러지 말아야 할 이유는 많았다. 11년만에 운전대를 잡은 것이어서 아직 밤 운전은 위험했고, 남아있는 1번 주도는 딱히 특별할 것이 없는 평범한 도로일 것 같아 보였으며, 내일의 일정을 생각하면 조금이라도 빨리 숙소에 도착해서 쉬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하지만 결국 고민 끝에 잠시 차를 멈추고 일부러 강제로 1번 주도를 달리도록 네비게이션을 재설정했다. 이유는 단 하나였다. 그러고 싶어서. 숙소에 좀 늦게 도착하면 어떻고 다음날 좀 피곤하면 어때. 여행중에 할까 말까 고민될 때에는 모름지기 해야 한다.

캘리포니아 1번 주도는 태평양 해안 도로 (Pacific Coast Highway, PCH), 카브릴로 도로 (Cabrillo Highway), 쇼어라인 도로 (Shoreline Highway), 해안 도로 (Coast Highway) 등의 구간으로 나뉘는데 보통 여행 책자에서 소개하는 캘리포니아 1번 주도는 태평양 해안 도로 구간이다. 강한 바람, 깎아지른 절벽, 태평양이 만들어내는 육중한 파도와 굉음이 계속해서 이어지는 길로, 내가 그 날 오전부터 줄기차게 달려왔던 바로 그 길이었다. 이제 태평양 해안 도로는 끝이 났고, 내가 네비게이션의 충고를 무시하고 더 가기로 한 캘리포니아 1번 주도는 카브릴로 도로 (Cabrillo Highway) 구간이었다.

별 기대 없이 들어선 카브릴로 도로는 조용한 시골길, 정지용 시인의 시 '향수'의 표현을 빌자면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그런 곳이었다. 하지만 그래서 좋았다. 특별히 멋지거나 화려한 경치는 없었지만 그렇기 때문에 마음이 편안해졌다. 사람도 차도 거의 없는 시골길을 운전하며 카브릴로 도로의 한적함을 충분히 누리고 또 누렸다. 낮 내내 태평양 해안 도로를 달리며 바람과 절벽과 파도와 바다 때문에 흥분되었던 마음이 시골길을 천천히 달리는 동안 기분 좋게 차분해졌다.

소설은 발단, 전개, 위기, 절정을 거쳐 결말이 나야 하고 한시(漢詩)는 기, 승, 전을 지나 결까지 가야 한다. 독자를 흥분시키고 긴장하게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마지막에 가서 독자의 긴장을 풀어주고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는 것 역시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카브릴로 도로는 캘리포니아 1번 주도를 달리는 사람이라면 꼭 가 보아야 하는 곳이다. 태평양 해안 도로가 1번 주도의 절정이라면 카브릴로 도로는 잔잔한 마무리다. '향수'의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다는 표현이 참 잘 어울리는 곳, 그래서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히겠냐는 그 다음 표현 역시 참 잘 어울리는 곳이 바로 카브릴로 도로다.

카브릴로 도로는 롬폭(Lompoc)이라는 마을을 지나면서 끝이 났고 그 즈음부터 산타 바바라까지는 미국 101번 국도가 캘리포니아 1번 주도를 대체하면서 1번 주도가 잠시 끊어져 있었다. 해는 진작에 다 져서 깜깜한 밤이었고 아침에 운전을 시작한 지 10시간이 지나서야 산타 바바라의 숙소에 들어설 수 있었다. 체크인을 하면서 직원과 이야기를 하다가 오늘 아침에 몬터레이에서 출발해서 온 거라고 했더니 직원이 말했다. "와우, 롱 트립."

101번 국도 때문에 끊어진 캘리포니아 1번 주도는 산타 바바라 이후에 다시 나타나서 LA로 향하게 된다. 원하면 다음 날 1번 주도를 더 탈 수도 있었다. 하지만 카브릴로 도로가 내 캘리포니아 1번 주도 여행을 잘 마무리해 주었기에 더 이상 미련은 없었다. 내일 LA로 갈 때에는 고속도로를 타야지. 노곤한 몸으로 기분좋게 잠에 들었다.


캘리포니아 2022 - 7. 내 소리는 다음 사람에게 닿을 것

박지원의 열하일기에는 호곡장론(好哭場論)이라 불리는 유명한 글이 있다. 평생을 산이 가득한 조선에서 살던 박지원은 요동을 지나다가 처음으로 끝없는 벌판과 지평선을 보았고, 그 자리에서 감탄해서 "호곡장! 가이곡의. (好哭場! 可以哭矣.)" 라고 외쳤다. 한문으로 쓰다 보니까 말이 그렇다는 거지 실제로 했던 말은 "이야, 여기 진짜 울기에 좋은 곳이네! 정말 울어볼 만 하네!" 정도였을 것이다. 이 멋진 풍경을 보고 왜 하필이면 우냐는 일행의 말에 박지원은 아기도 태어나면 울지 않냐며, 갓 태어난 아기는 슬퍼서 우는 게 아니라 좁은 태중에 있다가 갑자기 무한히 넓은 세상을 만나게 되자 속이 시원해서 크게 한바탕 우는 것이라고 대답한다. 그처럼 자기도 지금 무한을 보게 되자 속이 시원해서 갓난아기처럼 울고 싶은 것이라고.

주차할 수 있도록 갓길이 확장된 곳에 차를 대고 문을 열자 바람 소리가 귀를 울렸다. 차에서 내리니 육중한 파도가 절벽과 암초를 만나면서 만들어내는 무섭게 하얀 물보라가 생겼다가 없어지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최남선의 해(海)에게서 소년에게에 나오는 파도는 자기의 큰 힘을 아느냐 모르느냐고 호통을 쳤다지만 지금 이 파도는 그런 말조차 귀찮다는 듯, 아무 말도 없이 그저 자기의 거대함과 육중함, 무겁고 검푸른 물과 두텁고 하얀 물보라 그 자체로 자신을 드러내고 있었다. 주위에 아무도 없이, 나 홀로 갓길에서 그 광경을 보고 있었다.

얼마나 그렇게 있었을까, 갑자기 소리를 지르고 싶어졌다. 박지원이 요동 벌판을 보고 정말이지 울기에 좋은 곳이라고 감탄했다던 이야기도 순간 생각이 났다. 열하일기를 제대로 읽지도 않았으면서 그 순간 그 내용이 떠올랐던 것은 아마도 내가 살면서 읽었던 여러 문장 중 목놓아 울기에 좋은 곳이라는 바로 그 표현이 당시의 내 감정과 가장 비슷했기 때문이지 않았을까. 선 채로 잠시 고민을 하다가 크게 소리를 질렀다. 주위에 아무도 없기 때문이기도 했고 바람과 파도 소리가 워낙에 커서 내가 소리를 질러봤자 잘 안 들릴 것이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소리를 지르지 않고는 가슴이 터질 것 같아 견딜 수 없어서였다. 한참 길게 소리를 질렀지만 그것으로는 부족해서 또 다시 크게 소리를 질렀다. 그제야 속이 뻥 뚫렸다. 시대도 장소도 달랐지만 박지원도 요동 벌판을 보며 이런 기분이었을 것임을 감히 알 수 있었다.

호곡장론의 맨 끝에서 박지원은 울 만한 곳이 또 있다며 금강산과 황해도 몽금포 이야기를 꺼낸다. 금강산 비로봉에 올라 동쪽 바다를 바라보면서, 황해도 몽금포의 모래사장을 걸으면서도 크게 울 만하다고. 박지원이 금강산 여행을 갔던 것은 29살이던 영조 41년, 1765년이었다. 박지원은 몰랐겠지만 그 때 금강산 비로봉 꼭대기에서 동해를 향해 목놓아 울었던 박지원의 울음소리는 바닷물에 녹아들어 태평양 전역으로 퍼져나갔고, 그렇게 바다에서 257년을 떠돌다가 육중한 파도 소리가 되어 태평양 반대편에 서 있던 내 귀에 들어왔다. 그리고 나는 큰 소리를 질러 그 소리에 화답했다. 내 소리 역시 대양을 돌고 돌다가 누군가의 귀에 들어갈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람은 자기의 소리로 내 소리에 화답할 것이다. 지금 이를 이렇게 글로 남기는 것은 내 소리에 화답할 그 사람이 내 소리를 들었을 때에 그것이 내 소리인 줄 알 수 있게 하기 위해서이다.

캘리포니아 2022 - 2. 나는 태평양을 볼 거야

 

비행기를 탈 때의 복장은 편한 게 제일이라는 것이 내 지론이다. 특히나 장거리를 가야 할 때는 더욱 그렇다. 흔히들 쪼리라고 부르는 플립플랍을 신고 바지도 통이 넓은 것으로 골라 입었다. 디스크로 고생한 후로는 목베개와 허리 쿠션도 챙겨서 다닌다. 환승 비행기는 나리타 공항에서 오후 5시 이륙이었는데 샌프란시스코는 그 때가 밤 1시였다. 미국에서 상당히 빡빡한 일정이 기다리고 있었기에 시차적응으로 고생하고 싶지 않아서 비행기가 이륙하자 마자 멜라토닌을 먹고 바로 잠을 청했다. 새벽같이 집에서 나왔어서 피곤해서 그랬는지 멜라토닌이 잘 들어서 그랬는지 비행기에서 아주 잘 잤다. 아마도 둘 다 때문이었겠지. 중간에 깨서 기내식을 먹을 때에는 일본 비행기라 간만에 일본어도 써 볼 수 있었다. 그래봤자 “주스 오네가이시마스 (주스 주세요)” 정도였지만.

 

얼마나 잤을까. 시계를 보니 샌프란시스코 기준으로는 아침이었기에 그 때부터는 커피를 마시며 기를 쓰고 깨어 있었다. “고히 오네가이시마스 (커피 주세요).” 창밖을 보니 땅이 보였다. 미국이구나. 주거 지역 바로 옆에 진부한 표현이지만 끝이 없는 산맥이 이어지고 있었다. 자연, 그것도 그냥 자연이 아니라 대자연이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자연. 이번 미국 여행의 목표 중 하나는 자연이었다. 홍콩에 살면서 도시는, 사람이 만든 물질 문명은 질릴 정도로 보았다. 1 제곱 킬로미터마다 캘리포니아에서는 98명이 살고 홍콩에서는 6300명이 산다고 한다. 한국은 516명.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고들 하고 나는 그 말에 동의하지만, 어쨌건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운지 아닌지를 알려면 꽃을 좀 볼 수는 있어야 하지 않나. 사람이 멋지게 가꾸어 놓은 화단의 꽃이 아니라 산, 들, 길가에 스스로 피어 있는 그런 꽃들을 말이다. 사람으로 꽉 찬 도시에서는 자연을 찾아보기가 힘들다. 자연은 사람이 자취를 감춘 후에야 자기를 드러내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자연은 무심하고 무정하다. 자연은 사람이 왜 자취를 감추었는지 전혀 신경쓰지 않는다. 그래서 김훈 작가는 셀 수도 없이 많은 사람이 죽은 전쟁인 임진왜란을 다룬 ‘칼의 노래’를 이렇게 시작했다.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

 

비행기는 점점 낮아졌고 내 아래에 있던 구름은 정확히 내 눈높이로 올라오더니 이윽고 하늘 위로 올라가 버렸다. 이젠 비행기에서 내릴 시간이었다. 미국에 왜 왔냐는 입국 심사 직원의 질문에 학회에 참석하기 위해 왔다고 대답했다. 돌아가는 항공권이 있냐길래 보여줬더니 왜 샌프란시스코로 들어와서 LA에서 나가냐, LA까진 어떻게 갈 거냐고 물어왔다. 차를 빌려서 LA까지 갈 거야. 손으로 운전하는 시늉을 하며 말했더니 그렇게 운전한다고? 하며 되묻고는 오케이, 통과.

 

시차 덕분에 나중에 돌아갈 때 뱉어내게 될 하루를 벌었다. 회전초밥처럼 빙글빙글 돌고 있는 짐을 찾아서 입국장으로 향했다. 입국장으로 향하는 금속 문 위에 붙어 있는 문구가 나를 반겨줬다. 웰컴 투 샌프란시스코. 입국 심사 직원에게 미처 다 하지 못한 이야기가 마음 속에서 뛰기 시작했다. 차를 빌려서 LA까지 갈 거야. 나는 태평양을 볼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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