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도 더 전, 학원 강사를 할 때의 일이다. 중학생 수학 수업에서 2차 함수를 가르치게 되었는데 그날따라 갑자기 학생들에게 2차 함수 그래프를 직접 그려보게 하고 싶어졌었다. 문제 풀려고 대충 그리는 것 말고 진짜로 모눈종이에 칸을 다 맞춰서. 그래서 수업시간에 모눈종이를 가지고 들어갔고 아이들은 낑낑대면서 그래프를 그렸다. 그 전까지 대충 오목한 컵 모양으로 그려놓고 x절편과 y절편 좌표만 표시할 때와 달리 모눈종이에 그래프를 직접 그리자 제곱값이 얼마나 가파르게 상승하는지를 바로 알 수 있었다. y는 x제곱이라는 단순한 함수만 하더라도 x가 4, 5쯤만 되면 모눈종이를 벗어났다. 그 날 그 수업 자체만 놓고 보면 문제도 하나도 안 풀고 진도도 거의 못 나갔지만 그 수업 이후로 학생들이 2차 함수를 친숙하게 느끼게 되었던 기억이 난다.

수학에도 실습이 필요하다. 예를 들자면 이런 거다.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나 때는 도형과 작도 문제를 풀 때 평행하지도 않은 선을 그려놓고 평행하다고 믿으면서, 대충 짜부라진 감자같은 것을 그려놓고 원이라고 여기면서 풀었다. 선생님들은 가끔 분필을 끼워 사용하는 커다란 칠판용 컴퍼스를 자와 함께 쓰셨지만 학생들이 자와 컴퍼스를 쓰는 일은 없었다. 이 때 만약 자와 컴퍼스로 이런저런 것을 작도하는 실습이 있었다면 얼마나 재미있었을까.

생각해보면 수학에도 실습거리는 많다. 운동장에 지름이 100 발자국 짜리인 원을 그린 후에 둘레를 따라 걸어보면서 진짜로 둘레가 314 걸음이 나오는지를 세어 봐도 좋을 것이고, 공을 가득 덮도록 색종이를 모자이크처럼 붙였다가 뗀 후에 색종이의 넓이를 구해서 공의 겉넓이가 진짜 4 곱하기 원주율 곱하기 반지름의 제곱인지를 확인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아니면 설날이나 추석 때 친척들 키를 다 재서 정규분포를 가정한 뒤 평균과 표준편차 값을 구해볼 수도 있을 것이고.

그런 실습을 통해서 학생들의 수학에 대한 관심도와 이해도를 향상시킬 수 있을 것이다. 피아노에 대해 공부하는 것과 피아노를 쳐 보는 것이 다르고, 요리 방송을 보는 것과 직접 요리를 해 보는 것이 다르고, 지구에서 달까지의 거리를 계산하는 것과 직접 우주선을 타고 달에 갔다 와 보는 것은 다르니까. 나중에 혹시 기회가 된다면 그런 교육을 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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