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학회에서 내 논문을 발표하던 때가 생각난다. 긴장한 상태로 내 순서를 기다리고 있는데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여기 있는 사람 중에 내 논문만큼은 내가 제일 잘 알고 있구나.'

요즘 의미에서의 AI가 없던, 실험용 코드를 손으로 다 짜고 논문도 다 직접 써야 하던 시절이었다. 수개월간 C++ 코드와 씨름하다가 드디어 메모리 누수를 다 잡았던 순간의 기쁨이 아직도 생각이 난다. 논문을 쓰고 고치고 또 고쳤고, 발표용 슬라이드도 최선을 다해 만들었었다. 그 자리에 나보다 연구 경험이 많은 사람, 실무 경력이 많은 사람이 많이 있었지만 내 논문에 대해서만큼은 내가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는 그 자신감이 있었다. 내가 쓴 것이니까.

이제 그렇게 논문을 쓰던 것은 고릿적 이야기가 되었다. AI에게 아이디어만 던져주면 논문을 척척 써 주고 실험도 직접 돌려준다. 이게 어디까지 되나 싶어서 평소에 내가 아마추어로서 관심을 갖고 있던 언어학 주제에 관해 AI를 사용해서 논문을 써 보기로 했다. 내가 하나를 말해주니 AI가 열을 이해하며 가설을 세우고 실험을 진행하더니 며칠만에 논문을 완성했다. 내가 한 것이라곤 처음 아이디어를 AI에게 던져준 것, 그리고 중간중간에 AI가 나에게 몇 가지 선택지 중에 하나를 선택해달라고 할 때 선택을 해 준 것뿐이었다.

나는 언어학에 대해서는 아마추어이지만 AI가 작성한 언어학 논문은 적어도 연구 방법론과 논리 진행에 대해서는 흠 잡을 구석이 없어 보였다. 그냥 두기엔 아까워서 이 논문을 제출할 만한 학회를 여기저기 찾아보았다. 그 과정에서도 AI가 많은 조언을 해 주었다. A학회에 내려면 논문을 이러이러한 스타일로 다듬는 게 좋고, B학회에 내려면 저러저러한 스타일로 바꾸는 게 좋고... 그렇게 한참을 작업하다가, 그 논문을 학회에 내지 않기로 했다. 이게 과연 내가 쓴 논문이라고 할 수 있냐는 질문에 나 스스로 '아니오'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혹시 나중에 내가 언어학 공부를 많이 해서 이 논문을 깊이 이해하게 된다면 그 땐 학회에 제출해볼 수도 있겠지.

논문의 저자는, 특히 1저자는 그 논문에 대해 세상 그 누구보다도 잘 이해하고 있어야 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이 논문에 대해 나는 아는 것이 없었다. 만약에 이 논문이 학회에 뽑힌다고 치자. 누군가가 나에게 논문 내용에 대해 물어보면 나는 아무것도 대답할 수 있는 것이 없을 것이었다. 그런 생각이 드니 아무런 미련 없이 이 언어학 논문에 대한 마음과 생각을 접을 수 있었다.

바야흐로 AI를 써서 속칭 '딸깍'으로 논문을 찍어낼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이 상황에서 연구자가 논문 하나하나를 깊이 파고들어서 써야 한다는 생각은 고리타분하게 보일 수도 있겠다. AI가 자동으로 쓴 논문에도 좋은 내용이 많을 수 있다. 그것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나, 한 가지 질문을 던지고 싶다. 'AI가 다 쓴 논문이라면, 그래서 저자도 내용을 잘 모른다면, 왜 그 사람이 저자로 인정받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얼마 전에 미국의 한 통계학과 교수가 지난 9개월 동안 257편의 논문과 14권의 책을 썼다는 기사를 보았다. 257편의 논문과 14권의 책을 키보드로 따라 치는데에만도 9개월은 부족할 것이다. 당연히 AI로 썼겠지. 그 교수가 257편의 논문의 내용은 고사하고 제목이라도 다 기억하고 있을지 궁금하다. 그 논문들 중 가치있는 논문도 아마 있을 것이다. 그것을 부정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그렇게 AI가 찍어낸 논문이라면 왜 그 교수가 저자가 되어야 하는지는 의문이다.

시대는 바뀌고, 새 기술이 나오면 그 전에 멀쩡히 동작하던 사고방식은 구식이라는 비난을 받는다. 있는 한국말 놔두고 괜히 영어 쓰는 시대정신을 따라하자면 '올드스쿨' 정도가 되려나. 연구자가 자기 논문 한 편 한 편에 정성을 쏟아야 한다는 이런 내 생각도 조만간에 구식 취급받게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독소 전쟁 때의 T-34 전차가 아닌 이상에야 양이 곧 질이 되지는 않는다. 이미 AI가 쏟아내는 수많은 '산출물' 들이 AI slop, AI 쓰레기라고 불리고 있지 않나. AI를 쓰지 말자는 게 아니다. 9개월 동안 AI로 257편의 논문과 14권을 책을 쓰는 대신에 9개월 동안 AI를 활용해서 한 권의 책을 쓰고 고치고 또 고쳤다면 훨씬 훌륭한 결과물이 나오지 않았을까. 이솝 우화가 생각난다. 숲 속 동물들이 서로서로 자기가 새끼를 더 많이 낳는다고 말다툼을 하다가 사자에게 물어봤다. "사자님, 사자님은 새끼를 몇 마리 낳나요?" 사자가 대답했다. "한 마리. 그런데, 사자 한 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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