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유명인의 대학원 졸업 논문 표절 논란이 터졌다. 말이 논란이지 지금까지 나온 내용만 보더라도 다른 사람 논문을 복사 및 붙여넣기 한 것이 확실해 보인다. 올해 들어서만 벌써 몇 번째인지. 특정인에 대해서가 아니라, 이 사회에 팽배한 이 현상에 대해 짧게 이야기를 해 보고 싶다.

 

이런 기사를 볼 때마다 씁쓸해진다. 누군가는 그렇게 편하게 석사, 박사를 땄겠지. 그렇게 전문가 칭호를 얻어서 엉터리 지식으로 책을 쓰고 TV활동을 해서 명예를 얻고 엄청난 수입을 올린다. 그러다가 한참 나중에 논문 표절 논란이 일어나면 자숙하겠다고 하며 방송 활동 잠시 중단. 이미 일반인들이 평생 벌어도 못 벌 돈을 번 후다. 공소시효가 이미 지나서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는 것은 덤.

 

나는 석사를 3년 했다. 2년차에 이미 거의 다 써 놓았던 졸업논문이었지만 무슨 방망이 깎던 노인마냥 졸업논문 다듬는 데에만 1년이 더 걸렸다. 지도교수님은 석사라고 봐 주는 법이 없으셨다. 그렇게 평생 아무도 읽지 않을 석사논문을 쓰느라 밤을 새고 문헌조사를 하고 실험을 돌리고 몸을 버리고 목디스크를 얻고 나이를 먹었다.

 

한 다리 건너 누군가는 실력 좋은 포닥에게 돈을 주고 석사 논문을 대필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또 어떤 포닥이 써서 유명 학회에 뽑힌 논문은 아무리 재현하려 해 봐도 그 수치가 안 나왔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뭐 멀리서 찾을 필요도 없이, 올해 한국에서만도 유명인의 석사, 박사 논문 표절 사건이 얼마나 많이 터졌나.

 

임재범 말을 흉내내보고 싶다. "내가 만일 쓸쓸하고 외로울때면 누가 나를 위로해주지? 그건 바로 여러분." 아쉽게도 한국 사회는 그렇지 않아 보인다. 논문을 표절한 유명인의 인스타그램에는 힘내세요, 화이팅입니다가 엄청나게 달려 있다. 내 마음을 가장 아프게 하는 것은 "다 관례적으로 그렇게 하던거 아니에요? 그게 뭐가 큰 문제에요?" 라는 댓글들이다.

 

예전같으면 화가 났을텐데 이젠 그냥 우울해진다. 요즘은 요령없이 살고 바보같이 석사 논문 정직하게 쓰겠다고 고생한 내가 바보인건가 하는 생각까지 든다. 이런게 뉴노멀이라는 건가 싶기도 하고. 그렇게 고생해서 석사를 딴 뒤 내 삶이 바뀐 것이 있다면 "척척석사" 라는 놀림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너는 박사 안 했으니까 척척석사네. 아 여기 척척석사 오셨다. 척척석사님 한 말씀 해 주세요.

 

어제 성경 잠언을 읽는데 의롭게 살며 적게 버는 것이 불의하게 살며 많이 버는 것보다 낫다는 말이 있었다. 그래, 누군가는 표절로, 누군가는 대필과 수치 조작으로 학위를 따서 전문가 행세를 하는 동안 바보같이 척척석사로 사는 또다른 사람들이 있다. 잠언은 그런 척척석사들이 더 낫다고 하더라. 만국의 척척석사여 기운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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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초에 이공계 장학금이라는 게 생겼다. 간단하게 말해서 의약계통을 제외한 이공계 학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나라에서 주는 장학금이었다. 등록금 지원은 물론이고 경우에 따라 교재비까지 주는 획기적인 장학금이었다. 왜 그랬을까? 이공계가 인기가 없어서였다. 당시 이과 수능 응시생은 문과 응시생의 절반이었다. 나라에서 보기에 이공계가 중요해 보이는데 고등학생들이 이공계 진학을 하지 않으니 돈을 주기로 한 것이었고, 다른 말로 하자면 이공계의 전망은 나라에서 돈을 줘야 할 정도로 깜깜하다는 것을 나라가 인정한 꼴이었다. 돈 받아도 안 가는 이공계가 돈을 내면서도 가는 다른 학과와 비교된 것은 덤이었다.

2010년대가 저물어가는 지금, 신문을 볼 때마다 이공계로 수험생들이 몰린다는 기사를 보게 되는 요즘에는 참 생소하게 들릴 10여년 전 이야기이다. 왜 10여 년 전에는 돈을 준대도 기피대상이던 이공계에 지금은 사람이 몰릴까. 이공계 장학금을 꾸준히 줘 왔어서? 아니다. 장담하는데 이공계 장학금 제도를 지금 갑자기 없애 버려도 이공계로 여전히 사람이 몰릴 것이다. 예전에 법대와 의대로 지원자가 몰렸던 게 장학금 때문은 아니었지 않는가. 사람들은 전망을 본다. 당장 등록금을 많이 내더라도 졸업 후에 자기에게 도움이 될 것 같으면 그 학과에 지원하고, 반대로 장학금을 많이 받을 수 있더라도 졸업 후의 전망이 어두컴컴하면 그 학과에 지원하지 않는 것이다.

입시 이야기를 주저리 주저리 한 것 같지만 사실은 저출산에 대한 이야기이다.

얼마 전 본 신문 기사에는 2006년 부터 지금까지 한국 정부가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69조 원을 썼다고 나와 있었다. 하지만 결과는 세계 최저의 출산률이다. 이는 위에서 언급한 이공계 장학금과 같은 맥락에서 봐야 한다. 첫째 낳으면 얼마, 둘째 낳으면 얼마, 셋째 낳으면 얼마, 어린이집 얼마 식으로 정부와 지자체에서 지원해준다는 소식을 보며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할까? '아, 애 낳아서 키우는 게 나라에서 돈을 줄 정도로 기피할 만한 일이구나' 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이공계 기피 현상을 해결한 것이 이공계 장학금이 아니라 좋아진 이공계 졸업 후의 전망이었듯, 저출산 해결은 정부 보조금이 아니라 육아가 즐거울 것이라는 전망을 국민들에게 보여주는 것에 있다. TV에 연예인들이 나와서 예능이라는 미명 하에 결혼생활을 무슨 인생의 파멸마냥 이야기하며 히죽거리는 한, 어린이집에서 무 한 조각으로 수십명 치의 무국을 끓였다는 소식이 들리는 한, 중고등학생들이 같은 반 친구를 피범벅이 되도록 두들겨 팼다는 뉴스가 들리는 한, 대졸자들이 집을 사려면 20년 동안 월급을 한 푼도 안 쓰고 다 모아야 하는 한 269조가 아니라 더 큰 돈을 쏟아부어도 출산률은 올라가지 않을 것이다.

무가지보(無價之寶)라는 말이 있다. 진짜 보물은 값을 매길 수 없는 법이다. 출산은 그 가치를 돈으로 환산하는 것 자체가 불경스러울 귀한 일인데 그 귀한 출산에 대한 문제를 돈을 퍼부어서 해결하려 했기에 역대 정책이 다 실패한 것이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즉 어슴푸레한 새벽의 아름다움, 팔랑거리며 날아가는 나비, 시원한 바람 소리, 투명하게 빨간 단풍잎, 쨍한 겨울 하늘을 국민들이 마음 놓고 느낄 수 있는 사회가 되는 순간 사람들은 정부에서 보조금을 주지 않아도 그 아름다움을 내 자식에게도 보여주고 싶어서 자녀를 갖게 될 것이다.

어젯밤에 자려는데 목이 따갑고 눈이 가려웠다. 먼지가 많은가 하고 창문을 열자 갑자기 공기청정기가 세게 돌기 시작하더니 곧이어 눈이 엄청 따가워졌다. 최루탄이었다. 전철역 한 정거장 건너에서 쏜 최루탄이 바람을 타고 우리 동네까지 온 모양이었다.

11월 12일 화요일 밤에 홍콩 중문대학에서 경찰이 최루탄과 고무탄을 천 발 넘게 쐈다고 한다. 훈련소에서 받았던 화생방 훈련이 생각이 났다. 학교 캠퍼스 한 곳에 최루탄 천 발이 떨어지는 게 상상이 가지 않는다. 다 죽여버리겠다는 건가.

시위 진압 과정에서 경찰이 사용하는 폭력은 최소화되어야 하지 않을까. 홍콩 경찰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시위대가 전철역으로 도망가자 역 입구를 다 막은 뒤에 역 안에 최루탄을 쐈다. 마치 꼭 벌레 잡으려고 연막탄 치는 것 처럼. 최루탄 천 발이 떨어진 중문대학도 입구는 막혀 있었다.

실제로 홍콩 경찰들이 시위대를 바퀴벌레, 광동어로 갓잣이라고 부른다는 것은 유명한 사실이다. 시위대를 사람이 아니라 벌레로 보고 있으니 그렇게 진압을 과격하게 하게 되는 것이리라. 하지만 홍콩 경찰에게는 유감스럽게도 그들이 시위대를 바퀴벌레라고 부른 그 순간에 그들은 시위대에게 이미 진 것이다. 인류 역사에 걸친 사람과 바퀴벌레의 싸움에서 승자는 언제나 바퀴벌레였으니. 홍콩 정부가 시위를 진압하고 싶으면 시위대가 벌레가 아니라 사람이라는 것을 인식하는 것 부터 시작해야 한다.

홍콩 시위 관련해서 페이스북에 돌아다니는 문구 중에 특별히 인상적인 문구가 있었다. "우리 집이 얼마나 좁은데! 내가 감옥 가는 걸 무서워할 것 같아?"

부동산은 홍콩의 심각하고도 고질적인 문제다. 유학 온 대학생들이 인턴할 때 사는 5평짜리 원룸 월세가 135만원인데 한국으로 비교하자면 서울대, 카이스트 위치에 있는 홍콩대와 홍콩과기대의 졸업생 초봉 중앙값(median)이 각각 300만원, 270만원이다.[1][2][3] 홍콩의 대학 진학률이 15% 정도에 불과하고 홍콩대와 홍콩과기대가 흔히 말하는 입시 커트라인 상위권 대학임을 감안하면 홍콩에서 20대 직장인이 자취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니, 어렵게 따질 것 없이, 홍콩의 최저 임금이 시급 기준 5625원이다.[4] 하루 8시간씩 30일을 꼬박 일하면 얄미울 정도로 정확하게 5평짜리 원룸 월세 135만원이 딱 나온다. 이러니 홍콩 젊은이들은 결혼을 못 하고, 결혼을 해도 부부가 각자의 부모님 집에 따로 산다.

지금의 홍콩 시위를 이해하는 열쇠는 여기에 있다. 젊은이들이 "우리 좀 살게 해줘" 라고 외치고 있는 것이다. 외지인에게 부동산 시장이 열리는 바람에 부동산 구매자와 실수요자가 달라져서 부동산 값이 폭등했으니 이것 좀 해결해달라는 것이다. 세계적인 관광도시이고 아시아 금융의 허브이면 일수록 홍콩인들의 삶은 팍팍해져 가니 어떻게 좀 해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동안 꾹꾹 눌려 쌓여 있던 불만을 뻥 터뜨린 결정적인 사건이 범죄인 송환법이었던 것이고.

어떻게 되는 것이 잘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번 시위가 잘 해결되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홍콩에 살면서 느낀 점은 적어도 주거용 부동산에 대해서만큼은 실수요자 위주의 정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올해에 신규 분양하는 홍콩의 한 아파트는 한 채의 넓이가 3.6평(36평이 아니라 3.6평), 가격은 2억 6천만원이다.[5] 누가 뭐래도 이건 아니다.

- 주석

[1] 글에서 사용한 환율은 1 홍콩 달러당 150원.
[2] 20,042 홍콩 달러. 홍콩대에서 발간한 Graduate Employment Survey 2018을 참조.
[3] 18,100 홍콩 달러. 홍콩과기대에서 발간한 Graduate Employment Survey 2018을 참조.
[4] 37.5 홍콩 달러. 홍콩 노공처(노동부) 자료 참조.
[5] Tuen Mun 지역에 있는 T-Plus라는 128 스퀘어 피트(3.6평)짜리 아파트 가격이 최소 173만 홍콩 달러(2억 5950만원). South China Morning Post의 Developer slashes prices of T-Plus flats by 38 per cent to get first-home buyers to give Hong Kong’s smallest abodes a look-in 기사 참조.

전염병이 하나 있다고 하자.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전 국민이 모두 예방접종을 맞으면 아무도 그 병에 걸리지 않는다. 복잡한 일은 전 국민 중 일부가 예방접종을 안 맞을 때에 일어난다.

전 국민 중 딱 한 명만 예방접종을 안 맞는다면 그 사람은 예방접종을 안 맞더라도 병에 걸리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이 다 접종을 받았기 때문에 그 사람에게 병을 옮길 사람이 없어서 그렇다. 해외 여행을 갔다가 병에 걸려 올 수는 있겠지만 그럴 확률은 낮다. 전국에서 두 사람만 예방접종을 안 맞더라도 마찬가지다. 남한 인구 5천만 중에서 자기 빼고 예방접종을 안 맞은 다른 한 사람을 마침 그 사람이 병에 걸렸을 때에 만나서 병을 옮아 올 확률은 0에 가깝다.

이렇게 예방접종을 안 맞아도 병에 안 걸리는 사람이 하나 둘 늘어가면 예방접종은 제약회사가 돈을 벌기 위해 만들어낸 개념이라는 음모론이 돌기 시작한다. "누구네 집 애는 예방접종 안 맞았는데도 건강하게 잘만 살더라" 하는 카더라 통신도 함께다. 곧 그런 사람들이 인터넷에 카페를 만들고 무슨 병에는 숯가루를 탄 물이 좋다는 등의 괴소문을 퍼뜨리기 시작한다. 주위에서 그러지 말라고 말리면 자기들이 진리 때문에 핍박을 받는 줄로 생각한다. 이쯤 되면 종교의 영역이다. 이런 집단에는 숯가루 먹고서 병이 나았다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이 보이는데 그건 숯가루 먹고 병이 심해진 사람들이 그 카페를 탈퇴해서 그렇다.

자기들끼리만 병에 걸리면 그러든지 말든지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문제는 이런 사람들이 많아지면 그 자녀들이 피해를 본다는 점에 있다. 전반적인 공중 보건에 악영향을 끼치는 건 말할 것도 없다. 2005년 부터 필수가 된 수두 예방접종을 아직도 안 맞히고, 수두 걸린 아이를 집으로 초대해서 자기 아이에게 수두를 옮기게 하는 어리석은 부모들이 아직도 있다. 애를 때리는 것만이 아동 학대가 아니다. 이런 게 바로 아동 학대다. 그런 부모들이 지금이라도 정신을 차렸으면 좋겠다. 그래서 어릴 때 수두에 걸렸던 자식들이 커서 대상포진으로 고생할 때에는 적어도 따뜻한 물에 숯가루를 타서 마시면 바로 낫는다는 류의 소리 대신 빨리 병원에 가 보라는 말을 하게 되었으면 좋겠다.
두 부류의 전문가: 모르는 사람이 없는,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대학원을 다니고 회사를 다니면서, 전문가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두 부류로 나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대중에게 널리 전문가로 알려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딱히 유명하지는 않지만 특정 분야에서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전문가가 있다.

그 동안의 경험으로 보면 첫 번째 부류보다는 두 번째 부류, 즉 별로 유명하지는 않지만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전문가의 실력이 월등히 높았다.

두 번째 부류의 전문가들은 대부분 자기 연구 하기도 바빠서 대외활동이나 외부 행사, 인맥 관리는 거의 신경을 못 쓰고 있었다. 반대로 첫 번째 부류의 "자칭" 전문가들은 적당한 수준의 경력만을 가진 상태에서 언변이나 자기 홍보 능력이 좋아서 대중에게 전문가로 인식된 경우가 많았다.

이 사실을 알게 된 후로는 TV 고정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그중에서도 특히 강의나 토론도 아니고 예능에 출연하는 전문가들은 믿고 거르게 되었다. 은퇴한 능력자라면 모를까, 현업에 있는 사람이면 연구하고 논문 쓰기에도 시간이 부족할텐데 어떻게 매주 예능을 찍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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