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령 선생님과의 대화

 

지난 1월 3일에 이어령 선생님을 뵈었습니다. 집필 작업으로 바쁘신 중에도 시간을 내 주시고 많은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수압이 센 곳에서 수도꼭지를 틀어서 물이 터져 나오는 것 처럼 선생님의 입에서는 지식과 통찰력이 터져 나왔습니다. 메모를 할 시간조차 없었습니다. 기자였다면 녹음을 할 수 있었겠지만 저는 그렇지도 못했습니다. 집에 돌아와서 들은 내용을 일차로 정리해보자 5000자, 대략 원고지 25매, A4 용지 3장 정도가 나왔습니다. 그 내용을 바탕으로 이어령 선생님과의 대화를 정리하여 글로 남겨봅니다.

선생님은 물질과 비물질에 대한 언급으로 이야기를 시작하셨습니다. 기호는 물질입니다. 기호가 담겨 있는 글자도 물질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기호와 문자가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은 물질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아버지 손에 도끼가 있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도끼 자루도 바꾸고 날도 바꾸다가 결국 다 바꾸었으면 도끼란 과연 무엇입니까? 이것이 물질과 비물질을 설명해 줍니다. 지금까지의 서양 문명은 물질로서의 기호에만 집중해왔으며 그것이 문제입니다.

저는 이 부분을 들으면서 언어론의 syntax와 semantics를 떠올렸습니다. 또한 말씀하시면서 클로드 섀논의 정보 이론까지 다루셔서 깜짝 놀랐습니다. 저야 컴퓨터공학을 전공했기 때문에 섀논을 알고 있었지만 새삼 선생님의 지식에 놀랐던 순간이었습니다. 도끼 이야기에서는 테세우스의 배가 생각났습니다.

비물질, 즉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이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DNA는 물질입니다. 하지만 거기에 담겨 있는 내용은 비물질입니다. 지금까지의 과학과 공학은 물질로서의 기호, bit 그 자체에만 집중해왔습니다. 이것이 큰 문제이고 한계입니다.

과거에는 지혜(이 경우 통찰력이라는 뜻으로 보는 것이 적당해 보입니다)에서 지식이, 지식에서 정보가, 정보에서 데이터가 축적되었습니다. 이제는 반대로 데이터에서 정보가, 정보에서 지식이, 지식에서 지혜가 나와야 합니다. 그런데 현재 각광을 받는 세계적인 AI, IT 기업들은 데이터와 정보에 머물러 있습니다. 그렇기에 그 기업들은 10년 후 매우 위태로워질 것입니다.

이제 다시 인문학, 예를 들자면 철학이 중요해지는 때가 옵니다.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왜 사는지가 중요해지는 때가 다시 옵니다.

직업은 갈수록 줄어들 것입니다. 인류의 역사는 직업이 사라져가는 역사입니다. 예전에는 인구의 80%가 농업에 종사했지만 지금은 6-8%만 농업을 합니다. 앞으로는 일과 관심사가 하나가 되는 세상이 올 것입니다. 지금은 소수의 문인과 가수 등만 그렇게 살지만 앞으로는 모두가 자기가 하고 싶어하는 일을 하면서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AI에게 일자리를 빼앗기게 된다고 두려워 할 것이 아닙니다. 지금의 AI 부흥도 전망에 상관 없이 자기가 하고 싶던 연구를 십여 년 간 붙잡고 있던 힌튼 교수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삶의 좋은 예입니다.

이 이야기를 하시다가 갑자기 불 대수(Boolean algebra)를 언급하시고 힌튼 교수의 선조가 불 대수를 만든 조지 불인 이야기를 하시더니 곧이어 존 매카시와 AI의 혹한기, 재부흥까지 말씀하셔서 전공자로서 다시 한 번 놀랐습니다.

이러면서 이야기의 주제가 자연스레 AI로 넘어갔습니다. 지금의 AI가 잘 작동하게 된 것은 애매모호함, 즉 어중간함을 잘 다룰 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애매모호함'을 잘 다루는 것이 바로 한국인입니다. 음식점에서 종업원에게 '맥주 한 두서너 병'을 달라고 하지 않습니까? 만약 두세 병을 달라고 했다면 그것은 부정확입니다. 그러나 '한 두서너 병'을 달라고 한 것은 유연성, 플렉서빌리티(flexibility)입니다. 이 유연성 때문에 AI 사회에서 한국인이 강점을 지니게 될 것입니다.

이 부분에서 제가 평소에 AI와 컴퓨터공학을 연구하면서 고민하던 것에 대해 개인적인 질문을 드렸고, 그에 대해서도 깊은 통찰력이 있는 답을 주셨습니다. 참 감사했습니다. 이 내용은 개인적인 것이라 이 글에는 적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선생님께서 머리 속에 넘쳐나고 있는 지식과 생각을 한 글자라도 더 저에게 말씀해주시려고 하는데 제가 질문을 하는 바람에 흐름이 끊긴 것 같아 죄송하기도 했습니다. S급의 주제에 대해 말씀하시는 와중에 제가 B급의 질문을 드린 기분이었습니다. 제 질문이 B+ 급만이라도 되었다면 하는 소원이 있습니다.

그 후에는 미래 산업에 대한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5개 분야가 중요해질 것이라고 하셨는데 하나는 먹거리, 둘째는 생명, 마지막은 엔터테인먼트였습니다. 먹거리는 농업을 포함하는 개념이고, 생명은 의학쪽으로 발전할지 인공 생명으로 발전할지는 미지수라고 하셨습니다. 셋째와 넷째는 기억이 나지 않아, 대화 때 메모를 하지 못한 것이 참 아쉽습니다.

엔터테인먼트와 관련하여 BTS를 언급하시면서 이야기는 자연스레 선생님의 오래된 관심사인 문화론으로 넘어갔습니다. BTS는 서양 사람들 입장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명명법입니다. 나누고 분류하기 좋아하는 서양 문화로는 한국어로 방탄소년단이 되거나 영어로 뭔가 번역된 이름이 되거나 해야 합니다. 그런데 BTS는 알파벳으로 쓰기는 했지만 방(B)탄(T)소년단(S)이라는 한국어의 약자일 뿐입니다. 서양인들은 영어면 영어고 한국어면 한국어이지 이런 식의 명명은 하지 못합니다. 이런 이름을 지을 수 있다는 것이 한국인이 가진 장점, 융합시키는 능력을 보여줍니다.

서양 문화는 이것 아니면 저것입니다. 2항 대립입니다. 하지만 동양 문화는 3항 순환입니다. 가위바위보입니다. 서양 사람들은 순환을 싫어합니다. 하지만 순환으로 가야 합니다. 노를 저을 때 '어기'는 힘을 빼는 동작이고 '차'는 힘을 쓰는 동작입니다. 그런데 한국어에서는 '어기'와 '차' 사이에 '여'가 들어가서 '어기여차'가 됩니다. 비유하자면 서양 문화는 어기차, 한국 문화는 어기여차인 것입니다. 어기와 차 사이에 어기도 차도 아닌 '여'를 집어넣은 것에 한국 문화의 특징이 있습니다.

여기에서 선생님의 다음 일정이 있으셔서 아쉽지만 인사를 드려야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제가 가져간 책에 선생님의 인삿말을 받았습니다. "읽고 싶은 이어령"이라는, 제가 처음으로 접했던 선생님의 책이었습니다. 이 책 덕분에 선생님의 다른 책들을 읽게 되었던 것입니다. 새해가 된 지 얼마 되지 않아 2019년이라고 쓰셨다가 2020년으로 고치시는 모습에서 인간미를 느꼈습니다.

이렇게 정리를 했지만 빠진 내용이 참 많습니다. 새삼 신문에 나오는 선생님 인터뷰 내용에는 빠진 것이 얼마나 많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곧 나올 다음 책이 정말로 기대됩니다. 바쁘신 중에도 불러 주시고 만나 주셔서 참으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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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회사에 다니는 분이 책을 한 권 선물해 주시겠다고 하길래 이 책을 골랐다. 나는 이어령 씨의 책을 참 좋아한다. 이어령 씨의 책은 언제나 깨달음을 준다.

이 책은 중앙일보 기자 강형모 씨가 이어령 씨를 인터뷰한 내용을 담고 있다. 대화체이고 술술 읽힌다. 읽다가 평소에 내가 갖고 있던 생각과 비슷한 부분을 찾게 되는 재미도 있었다.

(다 읽은 시기: 올해 2월 경)
1982년에 이어령 씨가 일본어로 "축소 지향의 일본인"이라는 책을 썼다. 이 책은 일본에서 출간되자마자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1994년에는 일본론 10대 명저에 뽑히기까지 했다. 이 책에 대한 많은 평 중 내게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동경대 교수 하가 도루 씨의 평이다. "일본인이 한국에서 한국말로 이처럼 능란하게 한국 문화를 논할 날은 대체 언제쯤이면 올 것인가."

이 책은 이전 일본론들의 오류를 지적하면서 시작된다. "국화와 칼"을 위시해서 서양에서 출판된 수많은 일본론의 많은 부분은 사실 일본론이 아니라 동북아론이었다는 것. 바닥에 앉고 젓가락을 쓰고 쌀밥을 먹는 일본인들을 보며 서양인들은 그것이 일본만의 특징이라고 생각하는 오류를 범했다.

그러면 일본인이 쓴 일본론은 괜찮을까. 이 책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은 스스로를 서양과는 끊임없이 비교했으면서도 정작 바로 옆나라, 역사 속에서 끊임없이 교류해 온 한국과는 비교해 본 적이 없었다는 것. 이어령 씨는 그 한 예로 일본에서 나온 책에 일본이 세계에서 유일하게 인분을 비료로 사용했던 나라라는 이야기가 실렸던 것을 지적한다. 똥 얘기로 굳이 다투고 싶지는 않다는 말과 함께.

이렇게 시작되는 "축소 지향의 일본인"은 과장을 보태지 않고 한 장 한 장을 넘길 때 마다 감탄이 나오는 통찰력으로 가득 차 있다. 특히나 같은 뜻의 단어가 서로 다른 언어에서 어떻게 다르게 표현되는지를 파고드는 이어령 씨의 글쓰기 스타일이 잘 살아있기 때문에, 일본어를 공부해 본 사람에게는 이 책의 재미가 세 배, 네 배 배가될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이어령 씨의 접근 방식, 즉 일본을 알려면 일본을 한국과 비교 및 대조해보아야 한다는 말은 한국론에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어느 나라 론(論)이라는 것은 비교할 대상이 있어야만 성립되는 것이다. 이 지구에 나라가 오직 한국 하나 뿐이라면 "한국적인 것이 무엇인가" 라는 질문은 무의미한 것이 될 것이다.

내가 홍콩에 살면서 느꼈던 것은, 한국 사람들은 큰 것을 참 좋아한다는 것이었다. 중국 사람들이 스케일이 크지 않냐고? 중국 사람 이름에서 작을 소(小)자를 보기는 쉬워도 클 대(大)자를 보기는 어렵다. 홍콩을 대표하는 영화배우 이소룡(李小龍)은 작은 용(小龍)이지 큰 용이 아니었고, 개혁개방을 추진했던 인물은 등소평(鄧小平)이었지 등대평이 아니었다. 중국에서는 친한 사람끼리 이름 앞에 작을 소(小)자를 붙여서 부른다. 중국의 유명 IT 기업인 샤오미는 중국어로 좁쌀이라는 뜻인데 한자를 글자 그대로 보면 小米, 작은 쌀이 된다.

한국은 어떤가? 이름에 클 대(大)가 들어간 한국 사람은 많이 봤어도 작을 소(小)가 들어간 사람은 본 적이 없다. 홍콩 옆 마카오에 가면 한국 최초의 로마 가톨릭 신부인 김대건(金大建) 신부의 발등 뼈와 목상이 있다. 우리나라 15대 대통령은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이었다. 다 이름에 클 대(大)가 들어간다. 13대 대통령인 노태우(盧泰愚) 대통령 이름에는 클 대(大)보다도 더 큰 클 태(泰)가 들어가 있다. 하다못해 컵라면도 왕(王)뚜껑이라고 부르는 게 한국식 이름이다. 회사 이름에도 대우, 대림처럼 클 대(大)를 쓰면 썼지 작을 소(小)를 쓰지는 않는다.

스마트폰은 컴퓨터를 한 손에 들고 다닐 수 있을 정도로 작게 만든 물건인데, 이게 한국에 들어오자 크기가 커졌다. 한국인보다 평균 체구가 큰 미국인을 대상으로 만든 아이폰의 화면 크기는 2011년 10월에 발표된 아이폰 4s 시절까지 3.5인치였는데, 한국에서는 2011년 9월에 5.29인치짜리 갤럭시 노트가 나왔다. 물론 2010년에 델 스트릭이라는 제품이 나오기는 했었지만 실질적으로 패블릿 시대를 연 것이 갤럭시 노트라고 말하는 것에 무리는 없을 것이다.

왜 한국인은 큰 것을 좋아하게 되었을까. 일본이 섬나라라고 하지만, 사실 일본은 혼슈만 해도 한반도보다 클 정도로 넓은 나라다. 그런데 왜 일본에서는 SUV까지도 소형으로 만들고, 왜 한국에서는 큰 차가 인기가 많은지. "축소"라는 키워드로 일본을 읽어보는 것 처럼 "거대화"라는 키워드로 한국을 읽어보는 것이 의미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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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ravebird 2017.05.02 19:44 신고

    이 책 마침 올해 초에 상당히 재밌게 읽었습니다. 하이쿠에서 の의 용법을 가지고 축소지향성을 분석해낸 부분에 정말 크게 놀랐던 기억이 나요. 쥘부채같은 사소한 아이템에서 일본문화의 성격을 끌어내는 관찰력도 대단했고요. 확실히 한국은 일본보다는 확장지향적인 것 같아요. 저는 모든 걸 조그맣게 줄여서 꽉 틀어쥐려는 일본문화의 특성을 다소 답답하게 생각하고 있는 편이에요. (물론 그게 너무 새로워서 흥미롭기도 하지만요.) 좀더 넉넉하게 펼쳐놓는 걸 좋아하는 한국문화에 익숙하기 때문에 축소에 대한 인식이 아무래도 일본인과 달라서 그렇지 않을까 싶습니다. 재밌게 읽었어요!

    • 크롬망간 2017.05.03 17:08 신고

      안녕하세요~ 축소 지향의 일본인을 읽으면서 정말 많이 감탄했습니다. 뭐랄까... 이어령 씨의 통찰력에 많이 놀랐습니다. 이어령 씨의 책을 더 많이 읽어보고 싶어지더라고요.

      글 재미있게 읽어주셨다니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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