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감히 다가갈 수 없는 존재라면 달은 내가 친근하게, 혹은 물끄러미 바라볼 수 있는 존재다. 해는 오래 쳐다볼 수 없지만 달은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계속 쳐다볼 수 있다. 무엇이 됐건간에 하나를 오랫동안 보고 있으면 이런저런 생각이 어디에서부턴가 슬그머니 조심스럽게 나타나서 자기 이야기를 풀어놓게 마련인데 달은 거기에 추가로 지루하지 않도록 매일 조금씩 모양과 시간까지 바꾸어 주니, 옛부터 수많은 사람들이 달을 노래해 온 데에는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달을 오랫동안 보고 있으면 무슨 생각이 들까? 달은 밤에 뜬다. 밤은 어둡다. 사람은 어두우면 쉬 감상적이 된다. 그래서 달이 나오는 시나 노래에는 대체로 감성이 풍부히 녹아 있다. "해야 솟아라, 해야 솟아라, 밤 새도록 어둠을 살라 먹고" 라는 박두진 시인의 시 '해'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해를 노래하는 노래는 씩씩하게 마련이다. 하지만 달을 보는 사람은 먼 옛날 백제의 누군가가 "달하 노피곰 도다샤, 어긔야 내가논대 졈그랄 셰라 (달님, 높이 돋아 주세요. 날이 저물까 두렵습니다.)" 라고 노래했던 그 때나 지금이나 서정적이 되고 만다. 그 이순신 장군마저도 한산섬 달 밝은 밤에는 "어디서 일성호가(一聲胡笳)는 남의 애를 끓나니" 라고 밖에 말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달과 사람 마음 사이의 이러한 관계를 잘 포착해낸 노래가 달빛이 자기 마음을 대신 표현해준다는 등려군의 대표곡 월량대표아적심(月亮代表我的心)이다.

얼마 전에 우연히 보름달을 봤다. 보는 순간 '아, 다음 보름달은 추석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5년 전 추석 때, 홍콩 생활이 가까스로 1년이 되었던 그 때에는 이국의 하늘을 바라보며 고독을 마음에 품었다(異國の空見つめて孤獨を抱きしめた)던 엑스 재팬의 노래 가사가 자꾸 입에서 맴돌았었다. 그게 벌써 5년 전이고, 강산이 절반은 바뀌었고 나한테도 참 많은 일이 있었다.

보름달을 지나고 하루하루 사그러드는 달이 참 친근하게 느껴지는 요즘이다. 보아는 달을 보름이 지나면 작아지는 슬픈 빛이라고 노래했지만 적어도 지금의 나에게는 작아지는 달이 슬프지 않다. 사실 달 자체는 슬프거나 기쁘거나 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달은 그저 그 곳에 있을 뿐이고, 그 달을 보는 사람이 자기 마음을 거울처럼 달에 비추어 보는 것일 뿐이다. 달은 슬픈 사람에게는 슬프게, 기쁜 사람에게는 기쁘게 보인다. 그런 의미에서 달은 마음을 비추는 거울이다.

이름에부터 달이 들어가 있는 신라의 유적지 월성 옆에는 월지, 달 연못이라는 연못이 있다. 안압지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한 그곳에서 주령구라는 신라 시대의 14면체 주사위가 발견됐다. 술자리 벌칙용 주사위인데 벌칙 중 하나가 월경일곡(月鏡一曲), '달 거울이라는 제목의 노래 한 곡 부르기' 이다. 가사 내용은 모르겠으나 달이 자기 마음을 거울처럼 비춰준다는 내용이 아니었을까 내 맘대로 짐작해본다. 600년대에 경주에 살던 신라 사람이나 2000년대에 홍콩에 사는 대한민국 사람이나 달을 보면서 생각하는 건 다 비슷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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