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드로이드] SDK Validation ANDROID_SDK_HOME is set to the root of your SDK

 

안드로이드 스튜디오에서 다음과 같은 에러가 날 때가 있습니다.

SDK Validation
ANDROID_SDK_HOME is set to the root of your SDK: C:\Users\username\AppData\Local\Android\Sdk
This is the path of the preference folder expected by the Android tools.
It should NOT be set to the same as the root of your SDK.
Please set it to a different folder or do not set it at all.
If this is not set we default to: C:\Users\username

 

이것은 ANDROID_SDK_HOME 이라는 시스템 변수가 C:\Users\사용자명\AppData\Local\Android\Sdk 로 되어 있어서 나타나는 문제입니다. 이럴 때에는 제어판의 시스템 항목에 있는 환경 변수 목록에서 ANDROID_SDK_HOME 을 찾아서 지워주시면 문제가 해결됩니다. ANDROID_SDK_HOME 항목을 지워주시면 안드로이드 스튜디오가 알아서 자동으로 적당한 경로를 찾게 됩니다.

 

추석 때 짐 정리를 하던 중 17년 전에 입던 한복이 나와서 옛 생각을 떠올리며 입어봤다가 깜짝 놀랐다. 그 때와 비교하면 몸무게가 10kg 넘게 늘었는데도 한 치의 어색함 없이 맞춤복처럼 잘 맞았다. 마침 그 당시에 입던 청바지도 나와서 입어봤는데 단추조차 잠기지 않아서 제대로 입는 것이 불가능했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 맞추었던 양복이 체중이 고작 몇 kg 늘자 안 맞게 되어서 수선했던 일도 생각난다.

세계 어느 나라든 박물관에 가면 그 나라의 전통 의복을 볼 수 있다. 옷이 문화를 반영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한복과 양복을 비교하면 한국과 서양 문화의 차이를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한복은 옷이 사람에 맞춘다. 허리는 두 사람이 들어갈 정도로 통이 크게 되어 있어서 남는 길이를 몸에 둘러 감게 되어 있다. 그래서 17년 전의 내가 입으나 몸무게가 10kg에 추가로 추석 음식만큼 늘어난 지금의 내가 입으나 그저 겹쳐서 몸에 두르는 길이만 짧아질 뿐 한복 바지는 딱 맞게 되어 있다. 허리띠도 필요한 대로 길이를 조절해서 묶으면 된다. 두루마기의 옷고름도 길면 긴 대로 짧으면 짧은 대로 자연스럽게 늘어뜨리는 게 한복의 멋이다.

양복은 사람이 옷에 맞춘다. 기성복이 아니라 맞춤복이라고 해도 양복은 한 번 만들어지면 그 옷에 사람이 맞춰야 한다. 흔히들 말하는 양복의 핏(fit)은 한 치의 여유도 허락하지 않는다. 세계적인 패션 디자이너 칼 라거펠트도 디올 옴므를 입으려고 다이어트를 해야 했다는 에피소드가 양복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양복은 벨트를 조이고 넥타이를 꽉 매야 하는 옷이다. 그래서 양복을 잘 입으면 멋이 아니라 무슨 브랜드 이름마따나 스타일이 난다. 스타일과 석판에 무언가를 긁어서 새긴다는 뜻의 스타일러스(stylus)는 어원이 같다. 이어령 선생님이 언급한 대로 나를 긁고 깎아내서 만들어내야 하는 것, 한번 새겨지면 변형을 허락하지 않는 것이 스타일이다.

그래서 한복과 양복이 다르고 멋과 스타일이 다르다. 멋이 아니라 스타일을 따르게 되면서 사람들이 옷 입는 것이 많이 비슷비슷해졌다. 개성을 따른다고 하지만 이미 사회에서 개성이라고 용인되어 있는 정형(定形)을 따를 뿐인 경우가 많다. 대충 입는 것 같아도 정해진 방식대로 대충 입어야 하는 것이 현대 한국 패션이고 한국 패션의 비극이다. 피천득 선생님의 '수필'이라는 제목의 수필에 이런 구절이 있다.

"덕수궁(德壽宮) 박물관에 청자 연적이 하나 있었다. 내가 본 그 연적(硯滴)은 연꽃 모양으로 된 것으로, 똑같이 생긴 꽃잎들이 정연(整然)히 달려 있었는데, 다만 그 중에 꽃잎 하나만이 약간 옆으로 꼬부라졌었다. 이 균형(均衡) 속에 있는, 눈에 거슬리지 않는 파격(破格)이 수필인가 한다."

피천득 선생님이 눈에 거슬리지 않는 파격이라고 했던 혼자서 옆으로 꼬부라진 꽃잎 하나를 나는 한국인의 정서 속에 존재하는 멋이라고 본다. 정해진 규칙, 즉 정해진 스타일에 답답함을 느끼고 누가 뭐래도 내가 해보고 싶은 대로 청자 연적의 꽃잎 하나처럼 옆으로 꼬부라져 봐야 직성이 풀리는 그 한국인의 멋을 억누르지 말고 살려줘야 한다. 그것을 '멋대로 한다'며 부정적으로 취급하지 않고 '멋지다'고 인정해주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홍콩 시위 관련해서 페이스북에 돌아다니는 문구 중에 특별히 인상적인 문구가 있었다. "우리 집이 얼마나 좁은데! 내가 감옥 가는 걸 무서워할 것 같아?"

부동산은 홍콩의 심각하고도 고질적인 문제다. 유학 온 대학생들이 인턴할 때 사는 5평짜리 원룸 월세가 135만원인데 한국으로 비교하자면 서울대, 카이스트 위치에 있는 홍콩대와 홍콩과기대의 졸업생 초봉 중앙값(median)이 각각 300만원, 270만원이다.[1][2][3] 홍콩의 대학 진학률이 15% 정도에 불과하고 홍콩대와 홍콩과기대가 흔히 말하는 입시 커트라인 상위권 대학임을 감안하면 홍콩에서 20대 직장인이 자취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니, 어렵게 따질 것 없이, 홍콩의 최저 임금이 시급 기준 5625원이다.[4] 하루 8시간씩 30일을 꼬박 일하면 얄미울 정도로 정확하게 5평짜리 원룸 월세 135만원이 딱 나온다. 이러니 홍콩 젊은이들은 결혼을 못 하고, 결혼을 해도 부부가 각자의 부모님 집에 따로 산다.

지금의 홍콩 시위를 이해하는 열쇠는 여기에 있다. 젊은이들이 "우리 좀 살게 해줘" 라고 외치고 있는 것이다. 외지인에게 부동산 시장이 열리는 바람에 부동산 구매자와 실수요자가 달라져서 부동산 값이 폭등했으니 이것 좀 해결해달라는 것이다. 세계적인 관광도시이고 아시아 금융의 허브이면 일수록 홍콩인들의 삶은 팍팍해져 가니 어떻게 좀 해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동안 꾹꾹 눌려 쌓여 있던 불만을 뻥 터뜨린 결정적인 사건이 범죄인 송환법이었던 것이고.

어떻게 되는 것이 잘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번 시위가 잘 해결되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홍콩에 살면서 느낀 점은 적어도 주거용 부동산에 대해서만큼은 실수요자 위주의 정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올해에 신규 분양하는 홍콩의 한 아파트는 한 채의 넓이가 3.6평(36평이 아니라 3.6평), 가격은 2억 6천만원이다.[5] 누가 뭐래도 이건 아니다.

- 주석

[1] 글에서 사용한 환율은 1 홍콩 달러당 150원.
[2] 20,042 홍콩 달러. 홍콩대에서 발간한 Graduate Employment Survey 2018을 참조.
[3] 18,100 홍콩 달러. 홍콩과기대에서 발간한 Graduate Employment Survey 2018을 참조.
[4] 37.5 홍콩 달러. 홍콩 노공처(노동부) 자료 참조.
[5] Tuen Mun 지역에 있는 T-Plus라는 128 스퀘어 피트(3.6평)짜리 아파트 가격이 최소 173만 홍콩 달러(2억 5950만원). South China Morning Post의 Developer slashes prices of T-Plus flats by 38 per cent to get first-home buyers to give Hong Kong’s smallest abodes a look-in 기사 참조.

10년도 더 전, 학원 강사를 할 때의 일이다. 중학생 수학 수업에서 2차 함수를 가르치게 되었는데 그날따라 갑자기 학생들에게 2차 함수 그래프를 직접 그려보게 하고 싶어졌었다. 문제 풀려고 대충 그리는 것 말고 진짜로 모눈종이에 칸을 다 맞춰서. 그래서 수업시간에 모눈종이를 가지고 들어갔고 아이들은 낑낑대면서 그래프를 그렸다. 그 전까지 대충 오목한 컵 모양으로 그려놓고 x절편과 y절편 좌표만 표시할 때와 달리 모눈종이에 그래프를 직접 그리자 제곱값이 얼마나 가파르게 상승하는지를 바로 알 수 있었다. y는 x제곱이라는 단순한 함수만 하더라도 x가 4, 5쯤만 되면 모눈종이를 벗어났다. 그 날 그 수업 자체만 놓고 보면 문제도 하나도 안 풀고 진도도 거의 못 나갔지만 그 수업 이후로 학생들이 2차 함수를 친숙하게 느끼게 되었던 기억이 난다.

수학에도 실습이 필요하다. 예를 들자면 이런 거다.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나 때는 도형과 작도 문제를 풀 때 평행하지도 않은 선을 그려놓고 평행하다고 믿으면서, 대충 짜부라진 감자같은 것을 그려놓고 원이라고 여기면서 풀었다. 선생님들은 가끔 분필을 끼워 사용하는 커다란 칠판용 컴퍼스를 자와 함께 쓰셨지만 학생들이 자와 컴퍼스를 쓰는 일은 없었다. 이 때 만약 자와 컴퍼스로 이런저런 것을 작도하는 실습이 있었다면 얼마나 재미있었을까.

생각해보면 수학에도 실습거리는 많다. 운동장에 지름이 100 발자국 짜리인 원을 그린 후에 둘레를 따라 걸어보면서 진짜로 둘레가 314 걸음이 나오는지를 세어 봐도 좋을 것이고, 공을 가득 덮도록 색종이를 모자이크처럼 붙였다가 뗀 후에 색종이의 넓이를 구해서 공의 겉넓이가 진짜 4 곱하기 원주율 곱하기 반지름의 제곱인지를 확인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아니면 설날이나 추석 때 친척들 키를 다 재서 정규분포를 가정한 뒤 평균과 표준편차 값을 구해볼 수도 있을 것이고.

그런 실습을 통해서 학생들의 수학에 대한 관심도와 이해도를 향상시킬 수 있을 것이다. 피아노에 대해 공부하는 것과 피아노를 쳐 보는 것이 다르고, 요리 방송을 보는 것과 직접 요리를 해 보는 것이 다르고, 지구에서 달까지의 거리를 계산하는 것과 직접 우주선을 타고 달에 갔다 와 보는 것은 다르니까. 나중에 혹시 기회가 된다면 그런 교육을 해 보고 싶다.


중국 서남부에 있는 운남(雲南) 성은 인도, 사우디 아라비아, 이집트 등과 같은 위도에 있지만 고도가 높아서 여름에도 서늘한 곳이다. 운남성 여강(麗江) 시의 경우 평지가 이미 해발 2500m 정도 되어 백두산 높이와 비슷하고, 이곳에 있는 높이 5598m 짜리 옥룡설산은 만년설이 있을 정도다. 삼국지를 즐겨 읽은 사람에게는 맹획의 고장으로 유명할 것이다.

2016년 12월에 이 곳에 여행을 갔었다. 도착하자 마자 먼지 한 점 없이 맑은 공기에 감탄했고, 몇 걸음 걷지 않아 먼지만 없는 게 아니라 공기도 없어서 숨이 잘 안 쉬어진다는 것을 깨달았다. 일주일 내내 약한 고산병 증세로 추정되는 소화불량과 두통을 달고 살았지만 즐거운 여행이었다. 우리가 중국 하면 흔히 생각하는 한족이 아닌 여러 소수 민족들의 역사가 얽혀 있는 곳이라 볼 것도 많고 생각할 것도 많았다. 만약 신라가 676년에 나당전쟁에서 승리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우리나라 자리에는 중국의 어느 성이 신라성 정도의 이름으로 들어서 있었을 것이고 한민족은 중국의 한 소수민족이 되었을 것이며 인터넷에는 “이민족의 향기를 느낄 수 있는 중국 신라성 5박 6일 여행 특가상품” 같은 게 팔리고 있었겠지.

하여튼 생각할 것이 참 많던 운남성 여행에서도 특히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옥룡설산이었다. 말이 여강이지 숙소에서 매우 멀리 떨어져 있어서 아직 달이 떠 있던 새벽부터 일어나서 승합차를 타고 몇 시간을 달려가야 했다. 가이드로부터 두툼한 노란색 방한복과 함께 헤어스프레이 통처럼 생긴 산소통을 받고 옥룡설산 발치까지 가서 케이블카를 탔다. 케이블카가 출발하던 곳의 높이가 이미 해발 3356m였고, 케이블카에서 내린 곳은 4506m, 대충 한라산 두 개 반 정도의 높이였다. 보통 지평선을 보려면 평야에 가야 하는데 그 정도 높이까지 가자 산으로 가득찬 지평선을 볼 수 있었다. 관광객이 들어가지 못하도록 막아놓은 난간 저쪽으로는 사람의 발자국이라고는 전혀 찍혀있지 않은 눈인지 얼음인지 모를 것이 소복이 쌓여 있었다.

그 눈은 몇천 년을 그 자리에 그렇게 쌓여 있었을 것이다. 가끔씩 날아와서 쉬다 간 매라면 모를까 그 자리에서 시야에 가득 차게 들어오는 끝없이 펼쳐진 산을 본 사람은 없었을 것이고, 설령 역사에 알려지지 않은 어떤 한 모험가가 옛날에 그곳까지 올라갔었다 하더라도 내가 케이블카에서 보았던 광경은 못 보았을 것이다. 과장을 좀 보태자면 그곳의 산과 눈과 하늘은 2016년 12월에 나에게 그 경치를 보여주기 위해 적어도 수천 년, 어쩌면 수만 년을 묵묵히 기다려왔던 셈이다.

“너희가 보는 것을 보는 눈은 복이 있다. 많은 임금이 너희가 지금 보고 있는 것을 보고자 하였지만 보지 못했다.” 운남성 여행을 곱씹을 때 마다 이 성경 구절이 생각난다. 운남성의 왕이었던 맹획도, 맹획을 잡으러 왔던 제갈량도, 중국의 그 어떤 황제도 내가 보았던 광경은 보지 못했다. 북경에 인공으로 이화원을 지을 정도로 경승지를 좋아하던 황제들이었으니 기회만 되었다면 옥룡설산의 비경을 보러 가지 않았을 리가 없다. 중국을 쥐고 흔들던 황제들도 보지 못했던 경관을 입장료와 케이블카 비 몇만 원만 내고 본 내 눈은 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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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손처럼 많은 오해를 받고 있는 기독교 덕목도 없을 것이다. 겸손은 기독교에서 매우 강조되는 덕목이지만 정작 어떻게 하는 것이 겸손인지에 대한 논의는 그다지 많지 않다. 그러다 보니 한국 문화에서 말하는 겸손과 기독교의 겸손을 혼동해서 자기 자신을 비하하는 것이 겸손인 줄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마태복음 16:24)" 라는 구절이 종종 맥락에 맞지 않게 잘못 인용되고, 사람들의 칭찬에 "아니에요~" 내지는 "아유 저는 실력 하나도 없는 사람이에요~" 라고 대답하는 것이 겸손한 것으로 여겨지곤 한다.

성경에서 말하는 겸손은 그런 것이 아니다. 예수님은 스스로 겸손하다고 하셨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마태복음 11:29)" 그 예수님께서 또한 이렇게 말씀하셨다. "...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마태복음 28:18)"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다 받았다고 공개적으로 말씀하시는 모습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겸손과는 거리가 멀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기 때문에 그렇게 당당하게 말씀하실 수 있으셨던 것이고, 그것을 우리에게 바로 적용하는 것은 어렵다고 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바울도 비슷한 모습을 보여줬다. 사도행전 20장에서 바울은 자기가 겸손하다고 말한다. "나는 겸손과 많은 눈물로, 주님을 섬겼습니다. ... (사도행전 20:19, 새번역)" 그 바울은 같은 20장에서 또 이렇게 말한다 "나는 모든 일에서 여러분에게 본을 보였습니다. ... (사도행전 20:35, 새번역)" 한국 문화에서라면 "내가 한다고 열심히 했지만 그래도 부족한 게 많았을 줄로 압니다." 같은 말이 나와야 할 것 같은 상황인데 바울은 자기가 모든 일에 대해 다른 사람들에게 본을 보였다고 당당히 말한다.

성경이 말하는 겸손은 있는 것을 있는 그대로 말하는 것이지 스스로를 깎아내리는 것이 아니다. 자기 자식이 밖에 나가서 "저는 능력도 없고 부족하고 할 줄 아는 것도 없고..." 하며 자기 비하를 입에 달고 다니는 것을 좋아하는 부모는 없을 것이다. 하나님 아버지도 자녀가 스스로를 비하하고 멸시하는 것을 원하지 않으신다. 그런 것은 참된 겸손이 아니라 짝퉁 겸손이요 겸손의 모조품이다.

하지만 이것을 오해해서 시험을 잘 본 후에 모든 반 친구들 앞에서 "나는 너네들보다 똑똑해" 라고 한다거나, 사업에 성공해서 큰 돈을 번 뒤에 다른 사람들에게 "나는 당신들보다 능력이 훨씬 뛰어나" 라고 하는 것이 겸손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그것은 사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상황상 맞는 말 같아 보이는데 왜 사실이 아니라는 걸까?

기독교인은 자기의 모든 능력의 원천이 하나님이시며 또한 내가 이룬 그 모든 일도 하나님께서 그렇게 되게 해 주셨기에 가능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내가 잘 해서 일이 잘 되었다고 하는 것은 기독교 사상에 맞지 않는다. 예수님은 스스로를 가리키시며 "... 아들은 아버지께서 하시는 것을 보는 대로 따라 할 뿐이요, 아무것도 마음대로 할 수 없다. ... (요한복음 5:19, 새번역)" 라고 하셨고, 사람들에게는 "... 너희는 나를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요한복음 15:5, 새번역)" 라고 하셨다. 바울이 한 말을 보면 더욱 이해가 잘 된다. "그렇다면 아볼로는 무엇이고, 바울은 무엇입니까? 아볼로와 나는 여러분을 믿게 한 일꾼들이며, 주님께서 우리에게 각각 맡겨 주신 대로 일하였을 뿐입니다. 나는 심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자라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심는 사람이나 물 주는 사람은 아무것도 아니요, 자라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고린도전서 3:5-7, 새번역)"

각 사람은 자기의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 능력도 사실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것이다. 하지만 그 점은 차치하더라도, 사람이 자기 능력으로 무언가를 열심히 하더라도 그 일이 이루어질 것인지를 결정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신 것이다. 바울이 자기가 씨앗을 심고 아볼로가 물을 주었지만 그 씨앗이 싹을 틔우고 자라도록 하신 분은 하나님이시라고 말했던 것과 같이 말이다. 그것을 인정하는 것이 겸손이다.

정리하자면 첫째로, 사람의 능력이 뛰어날 수 있다. 그러나 둘째로, 사람의 능력이 아무리 뛰어나더라도 하나님께서 문을 열어 주시지 않으면 그 사람은 아무것도 이룰 수가 없다. 이 두 가지 중 하나만 생각하고 강조하는 데에서 겸손에 대한 오해가 생긴다. 둘째만 강조하다 보면 내가 가진 능력을 깎아내리고 스스로를 비하하는 것을 겸손이라고 착각하게 되고, 반대로 첫째만 강조하다 보면 내 삶에서 이루어진 모든 것들이 다 내가 열심히 하고 잘 해서 된 것이라고 생각하는 교만에 빠지게 된다. 첫째와 둘째를 잘 조화시키는 것이 건강한 겸손을 이루는 길이다. 삼국지에서 제갈량이 탄식하며 외친 말이 좋은 마무리가 될 것이다. 모사재인 성사재천 불가강야(謀事在人 成事在天 不可强也), "일을 꾸미는 것은 사람이지만 그 일이 이루어지는 것은 하늘에 달려 있다더니, 정말이지 억지로 할 수가 없구나!"
중학생 시절 국어 시간에 잘못된 언어 습관의 예로 초가집, 역전 앞 등의 표현을 배웠던 기억이 난다. 초가(草家)의 가(家)가 집 가 자이니 초가집이라고 하는 것은 같은 말을 두 번 반복하는 셈이라는 것이었다. 당시 그 논리는 이해는 갔지만 무언가 개운치가 않았다. 무의식중에 풀리지 않은 찝찝함이 있어서 그랬는지 그 후로 가끔씩 같은 말이 여러 번 반복된 단어들을 발견하면 생각에 빠지곤 했다. 손수건의 수(手)는 손 수 자이니 그러면 손수건과 수건이 같은 건가? 그런데 건(巾)이 수건 건 자이니 그러면 수건과 건도 같고, 결국 손수건은 건인가? 영지(靈芝)버섯의 지(芝)는 버섯 지인데 그러면 영지버섯은 영버섯버섯인가? 국어학자들은 초가집이 잘못된 표현이라고 하는 것 처럼 손수건도 잘못된 표현이라고 하려나?

초가집이 틀린 표현이라고 했던 국어학자들은 단어의 의미만 보고 가(家)와 집을 똑같다고 했다. 가(家)는 중국어에서 온 것이고 집은 순우리말이라는 차이를 보지 못한 것이다. 아무리 뜻이 같더라도 새마을과 신촌과 뉴타운은 쓰임새가 다른 것인데 국어학자들은 그것을 보지 못한 것이다. 역사학자나 사회학자 혹은 심리학자였다면 초가집과 초가가 같다는 주장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초가 뒤에 쓸데없이 중복되이 맹장처럼 붙어 있는 것 처럼 보이는 집이라는 글자는 한국인들이 외래 문화를 받아들이더라도 고유 문화를 어떻게 해서든 남겨놓으려고 끈질기게 노력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천 년 넘게 중국으로부터 강한 영향을 받으며 살아왔지만 한국인들은 초가에는 집을 붙이고 역전에는 앞을 붙이고 수건에는 손을 붙이면서 끈덕지게 자기 문화를 남겨 왔다. 일제시대에는 모찌를 꿋꿋이 모찌떡이라고 불렀고 영어가 들어오기 시작했을 때에도 갱(gang)을 깡(gang)패, 캔(can)을 깡(can)통이라고 부르면서 순우리말을 어떻게 해서든 남겨 왔다.

2010년대 들어서 한국인 대학원생들이 랩을 랩실이라고 부르는 것을 보게 되었다. 2000년대에는 없던 말이다. 랩은 연구실이니 랩실이라고 하면 연구실실이 된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나는 여기에서도 어떻게 해서든 한국 문화의 숨이 끊어지지 않게 하려는 한국인의 습관을 본다. 여기서 실(室)은 한자이긴 하지만 중국어가 아니라 한자 한국어로 쓰인 것이다. 세계 학문의 사실상 표준 언어가 영어가 되어 버려서 논문도 영어로 쓰고 다른 나라 연구자들과 교류도 영어로 해야 하는 시대이지만 한국의 대학원생들은 꿋꿋이 랩 뒤에 굳이 실을 붙여서 랩실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이다. 초가집과 모찌떡과 랩실이 있는 한 한국인과 한국 문화는 지금껏 그래 왔듯 앞으로도 끈질기게 살아 남을 것이다.

[VI, VIM] 윈도용 gVim에서 Ctrl+C등 윈도 단축키 사용하기

 

_vimrc 파일에 다음 줄을 넣어주면 됩니다.

 

source $VIMRUNTIME/mswin.vim

 

전산을 업으로 삼다 보니 습관적으로 최적화를 생각하게 된다. 코드를 이렇게 바꾸면 속도가 몇 퍼센트 빨라질까에서부터 시작해 몇 시 몇 분에 집에서 나가서 몇 번 버스를 몇 분 동안 기다리다가 그래도 버스가 안 오면 전철을 타고 가는 것이 소요 시간의 기대값을 가장 짧게 만들까 하는 생각에 이르기까지 최적화라는 주제는 항상 내 머릿속에 박혀 있다. 어쩌면 벽(癖)이라고 불러도 무리가 없을 것 같다.

그래서 집에서 설거지를 할 때면 종종 동시에 세탁기를 돌려 놓곤 했다. 세탁기는 무조건 한 시간동안 돌아야 하니 설거지를 하는 동안 세탁기를 돌려 놓으면 설거지가 끝날 때 즈음에 세탁도 얼추 끝날 거고, 그러면 시간 낭비 없이 바로 빨래를 널 수 있지 않는가. 이걸 전산 용어로는 파이프라이닝(pipelining) 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런 방식이 시간의 양은 최적화해주지만 시간의 질은 최적화해주지 않는다는 것을 요즘 깨닫고 있다.

설거지를 마쳐갈 때 즈음이면 커피 한 잔 내려 마시면서 조금이라도 쉬고 싶은 생각이 든다. 그러다가 책장에 꽂혀 있는 책도 한 번 꺼내서 뒤적거려 보게 되고, 아니면 노래라도 한 곡 듣게 될 것이다. 아니면 한 10분 정도 잠깐 누워서 눈을 감고 조용히 있을 수도 있겠지. 어쩌면 때맞춰 창 밖에서 짹짹거리는 새 소리를 듣게 될 지도 모른다.

그런데 설거지를 끝내고 나면 빨래도 딱 맞춰서 끝나 있으니 커피도 못 마시고, 책도 못 펼쳐 보고, 노래도 못 듣고, 잠깐 누워있거나 새 소리를 듣는 것은 더더욱 못한 채 바로 빨래를 널어야 한다. 그렇게 빨래를 다 널고 제습기까지 틀고 나면 마치 내일의 죠의 마지막 장면처럼 털썩 주저앉아서 "하얗게 불태웠어..." 라고 중얼거리게 된다. 시간이 많이 생기기는 했지만 그 시간은 내가 힘이 다 빠진 채 널부러져 있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죽은 시간이다.

사실 생각해보면 전산에서도 마찬가지다. 시간을 최적화하면 필연적으로 CPU 사용량은 올라가게 되어 있다. 쉽게 말해 스마트폰이 뜨끈뜨끈해지고 배터리가 빨리 닳게, '광탈하게' 되는 것이다.

이제는 시간의 양이 아니라 질을 생각해야 할 때이다. 레닌은 양이 곧 질이라고 했다지만 그 말은 적어도 설거지와 빨래 후의 쉬는 시간에는 적용되지 않는 것이 분명하다. 지금도 다 된 빨래가 세탁기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지만 무시한 채 이렇게 조금이라도 쉬려고 앉아 있으니 새 글 하나를 쓸 수 있지 않았나. 자, 이제는 설거지 할 때는 설거지만, 빨래 할 때는 빨래만 하자. 그 사이의 비는 시간은 최적화해서 없애버려야 하는 시간이 아니라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 기지개라도 키고 커피라도 한 잔 내려 마셔야 하는 생명의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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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기의 새벽>

우리 집에는
닭도 없단다.
다만
애기가 젖달라 울어서
새벽이 된다.

우리 집에는
시계도 없단다.
다만
애기가 젖달라 보채어
새벽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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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과 시계는 새벽이 왔다는 것을 알려준다. 닭과 시계가 없어도 새벽은 온다. 단지 사람들이 새벽이 왔다는 것을 잘 모를 뿐.

그에 반해 애기는 새벽을 '만든다'. 아직 한밤중이더라도 애기가 젖 달라고 울고 보채면 그 때부터 새벽이 시작된다. 애기가 울기 시작하는 바로 그 순간에 같은 집에 사는 모든 사람은 새벽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아무리 비싼 시계라도 새벽을 만들어내지는 못한다. 하지만 사람은 가장 작은 애기라도 새벽을 만들어낼 수 있다. 이것이 사람의 힘이다. "애기의 새벽"은 사람의 그러한 능력에 대한 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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