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언가에서 길게 뻗어나온 것을 '가락'이라고 한다. 손에서 길게 뻗어나온 것은 손가락, 발에서 나온 것은 발가락, 머리에서 나온 것은 머리카락이다. 엿을 길게 뽑아 늘리면 엿가락이고 노래를 한 곡 뽑으면 노래가락이다. 밥 한 술, 두 술 할 때의 술이 길어지면 숟가락이고 수저의 저가 길게 생겼으면 젓가락. 국수를 길게 뽑으면 국수가락.

우리가 보통 가야라고 부르는 고대 국가는 원래는 가야, 가라, 가락, 임나 등의 다양한 이름으로 불렸다. 원래는 자기네 명칭이 있었는데 한자로 소리나는 대로 옮기다 보니 여러 비스무리한 명칭이 생겼다고 하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한편 지금은 고구려를 고려와 구분하기 위해 고구려라고 부르지만 사실 당시에는 고구려를 그냥 고려라고 종종 불렀다. 그러니까 고구려든 고려든 이름은 다 고려였던 셈.

그리고 한국이라고 할 때의 韓이라는 글자는 고구려, 백제, 신라가 생기기도 더 전인 먼 옛날에 한반도 남부에 있던 마한, 진한, 변한을 나타낼 때에 쓰인 글자이다. 그런데 그 먼 옛날, 대충 2000년 전의 한자 발음은 당연하겠지만 지금과 많이 달랐다. Baxter & Sagart (2014)의 중국 상고 한자음 연구에 따르면 韓의 당시 발음은 아마도 '가르'였다고 한다. 지금의 ㅎ 발음이 당시에는 ㄱ이었고, 지금의 ㄴ 받침은 당시에는 ㄹ이었기 때문이라고.

가라(가야), 고려(고구려), 가르(韓). 다 ㄱㄹ이다.

아마 고대 한국어에서 나라를 가리키는 단어의 자음이 ㄱㄹ이었고, 그걸 한자로 음차하다 보니까 가라, 고려, 韓(가르) 라는 표기가 나왔던 것이지 않을까 하는 추측이 요즘 힘을 얻고 있다고 한다. 겨레라는 단어도 그와 관련된 것이 아닐까 하는 이야기도 있고.

나라 이름에 대해 여기까지는 학자들이 연구한 이야기였고, 아래부터는 내가 생각 가는대로 막 붙인 이야기.

한 나라도 아니고 마한, 진한, 변한 셋 씩이나 되는 나라가 뒤에 韓(가르)을 붙이고 있었다면 당시 사람들이 무슨 그 글자를 무슨 뜻으로 사용했을지 짐작해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유럽의 수많은 나라들은 지금도 자국어로 이름이 '랜드(land)'로 끝난다.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아이슬란드, 그린란드, 네덜란드, 스위스(Switzerland), 독일(Deutschland) 등. 랜드는 땅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아프가니스탄, 우즈베키스탄, 타지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파키스탄(이 경우는 좀 예외지만)에 공통적으로 붙는 '스탄'도 땅이라는 뜻이다. 사람 사는 곳이 다 비슷비슷하다면 韓(가르)도 땅과 관련된 단어이지 않았을까.

가락(ㄱㄹ)이라는 단어와 엮어서 생각해보면, 먼 옛날 우리 조상들은 나라를 땅이 쭉쭉 뻗어나간 것이라고 인식했던 것이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그 동네 땅의 이름이 마, 진, 변이지 않았을까. 마의 땅이 뻗어나갔으니 마한, 진의 땅이 뻗어나갔으니 진한, 변의 땅이 뻗어나갔으니 변한. 그러다가 길이 뻗으면 거리(ㄱㄹ), 사람들이 세대를 거쳐 뻗어나가면 겨레(ㄱㄹ). 그러고보니 물이 길게 뻗은 강의 순우리말도 가람(ㄱㄹ)이다. 비전공자가 마음대로 해 본 생각이지만, 만약 이게 맞다면 그 가락(ㄱㄹ, kr)은 코리아(kr)라는 이름을 통해서 전 세계로 뻗어나갔으니 정말이지 이름대로 된 셈이다.

 

이어령 선생님과의 대화

 

지난 1월 3일에 이어령 선생님을 뵈었습니다. 집필 작업으로 바쁘신 중에도 시간을 내 주시고 많은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수압이 센 곳에서 수도꼭지를 틀어서 물이 터져 나오는 것 처럼 선생님의 입에서는 지식과 통찰력이 터져 나왔습니다. 메모를 할 시간조차 없었습니다. 기자였다면 녹음을 할 수 있었겠지만 저는 그렇지도 못했습니다. 집에 돌아와서 들은 내용을 일차로 정리해보자 5000자, 대략 원고지 25매, A4 용지 3장 정도가 나왔습니다. 그 내용을 바탕으로 이어령 선생님과의 대화를 정리하여 글로 남겨봅니다.

선생님은 물질과 비물질에 대한 언급으로 이야기를 시작하셨습니다. 기호는 물질입니다. 기호가 담겨 있는 글자도 물질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기호와 문자가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은 물질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아버지 손에 도끼가 있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도끼 자루도 바꾸고 날도 바꾸다가 결국 다 바꾸었으면 도끼란 과연 무엇입니까? 이것이 물질과 비물질을 설명해 줍니다. 지금까지의 서양 문명은 물질로서의 기호에만 집중해왔으며 그것이 문제입니다.

저는 이 부분을 들으면서 언어론의 syntax와 semantics를 떠올렸습니다. 또한 말씀하시면서 클로드 섀논의 정보 이론까지 다루셔서 깜짝 놀랐습니다. 저야 컴퓨터공학을 전공했기 때문에 섀논을 알고 있었지만 새삼 선생님의 지식에 놀랐던 순간이었습니다. 도끼 이야기에서는 테세우스의 배가 생각났습니다.

비물질, 즉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이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DNA는 물질입니다. 하지만 거기에 담겨 있는 내용은 비물질입니다. 지금까지의 과학과 공학은 물질로서의 기호, bit 그 자체에만 집중해왔습니다. 이것이 큰 문제이고 한계입니다.

과거에는 지혜(이 경우 통찰력이라는 뜻으로 보는 것이 적당해 보입니다)에서 지식이, 지식에서 정보가, 정보에서 데이터가 축적되었습니다. 이제는 반대로 데이터에서 정보가, 정보에서 지식이, 지식에서 지혜가 나와야 합니다. 그런데 현재 각광을 받는 세계적인 AI, IT 기업들은 데이터와 정보에 머물러 있습니다. 그렇기에 그 기업들은 10년 후 매우 위태로워질 것입니다.

이제 다시 인문학, 예를 들자면 철학이 중요해지는 때가 옵니다.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왜 사는지가 중요해지는 때가 다시 옵니다.

직업은 갈수록 줄어들 것입니다. 인류의 역사는 직업이 사라져가는 역사입니다. 예전에는 인구의 80%가 농업에 종사했지만 지금은 6-8%만 농업을 합니다. 앞으로는 일과 관심사가 하나가 되는 세상이 올 것입니다. 지금은 소수의 문인과 가수 등만 그렇게 살지만 앞으로는 모두가 자기가 하고 싶어하는 일을 하면서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AI에게 일자리를 빼앗기게 된다고 두려워 할 것이 아닙니다. 지금의 AI 부흥도 전망에 상관 없이 자기가 하고 싶던 연구를 십여 년 간 붙잡고 있던 힌튼 교수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삶의 좋은 예입니다.

이 이야기를 하시다가 갑자기 불 대수(Boolean algebra)를 언급하시고 힌튼 교수의 선조가 불 대수를 만든 조지 불인 이야기를 하시더니 곧이어 존 매카시와 AI의 혹한기, 재부흥까지 말씀하셔서 전공자로서 다시 한 번 놀랐습니다.

이러면서 이야기의 주제가 자연스레 AI로 넘어갔습니다. 지금의 AI가 잘 작동하게 된 것은 애매모호함, 즉 어중간함을 잘 다룰 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애매모호함'을 잘 다루는 것이 바로 한국인입니다. 음식점에서 종업원에게 '맥주 한 두서너 병'을 달라고 하지 않습니까? 만약 두세 병을 달라고 했다면 그것은 부정확입니다. 그러나 '한 두서너 병'을 달라고 한 것은 유연성, 플렉서빌리티(flexibility)입니다. 이 유연성 때문에 AI 사회에서 한국인이 강점을 지니게 될 것입니다.

이 부분에서 제가 평소에 AI와 컴퓨터공학을 연구하면서 고민하던 것에 대해 개인적인 질문을 드렸고, 그에 대해서도 깊은 통찰력이 있는 답을 주셨습니다. 참 감사했습니다. 이 내용은 개인적인 것이라 이 글에는 적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선생님께서 머리 속에 넘쳐나고 있는 지식과 생각을 한 글자라도 더 저에게 말씀해주시려고 하는데 제가 질문을 하는 바람에 흐름이 끊긴 것 같아 죄송하기도 했습니다. S급의 주제에 대해 말씀하시는 와중에 제가 B급의 질문을 드린 기분이었습니다. 제 질문이 B+ 급만이라도 되었다면 하는 소원이 있습니다.

그 후에는 미래 산업에 대한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5개 분야가 중요해질 것이라고 하셨는데 하나는 먹거리, 둘째는 생명, 마지막은 엔터테인먼트였습니다. 먹거리는 농업을 포함하는 개념이고, 생명은 의학쪽으로 발전할지 인공 생명으로 발전할지는 미지수라고 하셨습니다. 셋째와 넷째는 기억이 나지 않아, 대화 때 메모를 하지 못한 것이 참 아쉽습니다.

엔터테인먼트와 관련하여 BTS를 언급하시면서 이야기는 자연스레 선생님의 오래된 관심사인 문화론으로 넘어갔습니다. BTS는 서양 사람들 입장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명명법입니다. 나누고 분류하기 좋아하는 서양 문화로는 한국어로 방탄소년단이 되거나 영어로 뭔가 번역된 이름이 되거나 해야 합니다. 그런데 BTS는 알파벳으로 쓰기는 했지만 방(B)탄(T)소년단(S)이라는 한국어의 약자일 뿐입니다. 서양인들은 영어면 영어고 한국어면 한국어이지 이런 식의 명명은 하지 못합니다. 이런 이름을 지을 수 있다는 것이 한국인이 가진 장점, 융합시키는 능력을 보여줍니다.

서양 문화는 이것 아니면 저것입니다. 2항 대립입니다. 하지만 동양 문화는 3항 순환입니다. 가위바위보입니다. 서양 사람들은 순환을 싫어합니다. 하지만 순환으로 가야 합니다. 노를 저을 때 '어기'는 힘을 빼는 동작이고 '차'는 힘을 쓰는 동작입니다. 그런데 한국어에서는 '어기'와 '차' 사이에 '여'가 들어가서 '어기여차'가 됩니다. 비유하자면 서양 문화는 어기차, 한국 문화는 어기여차인 것입니다. 어기와 차 사이에 어기도 차도 아닌 '여'를 집어넣은 것에 한국 문화의 특징이 있습니다.

여기에서 선생님의 다음 일정이 있으셔서 아쉽지만 인사를 드려야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제가 가져간 책에 선생님의 인삿말을 받았습니다. "읽고 싶은 이어령"이라는, 제가 처음으로 접했던 선생님의 책이었습니다. 이 책 덕분에 선생님의 다른 책들을 읽게 되었던 것입니다. 새해가 된 지 얼마 되지 않아 2019년이라고 쓰셨다가 2020년으로 고치시는 모습에서 인간미를 느꼈습니다.

이렇게 정리를 했지만 빠진 내용이 참 많습니다. 새삼 신문에 나오는 선생님 인터뷰 내용에는 빠진 것이 얼마나 많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곧 나올 다음 책이 정말로 기대됩니다. 바쁘신 중에도 불러 주시고 만나 주셔서 참으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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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때 짐 정리를 하던 중 17년 전에 입던 한복이 나와서 옛 생각을 떠올리며 입어봤다가 깜짝 놀랐다. 그 때와 비교하면 몸무게가 10kg 넘게 늘었는데도 한 치의 어색함 없이 맞춤복처럼 잘 맞았다. 마침 그 당시에 입던 청바지도 나와서 입어봤는데 단추조차 잠기지 않아서 제대로 입는 것이 불가능했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 맞추었던 양복이 체중이 고작 몇 kg 늘자 안 맞게 되어서 수선했던 일도 생각난다.

세계 어느 나라든 박물관에 가면 그 나라의 전통 의복을 볼 수 있다. 옷이 문화를 반영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한복과 양복을 비교하면 한국과 서양 문화의 차이를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한복은 옷이 사람에 맞춘다. 허리는 두 사람이 들어갈 정도로 통이 크게 되어 있어서 남는 길이를 몸에 둘러 감게 되어 있다. 그래서 17년 전의 내가 입으나 몸무게가 10kg에 추가로 추석 음식만큼 늘어난 지금의 내가 입으나 그저 겹쳐서 몸에 두르는 길이만 짧아질 뿐 한복 바지는 딱 맞게 되어 있다. 허리띠도 필요한 대로 길이를 조절해서 묶으면 된다. 두루마기의 옷고름도 길면 긴 대로 짧으면 짧은 대로 자연스럽게 늘어뜨리는 게 한복의 멋이다.

양복은 사람이 옷에 맞춘다. 기성복이 아니라 맞춤복이라고 해도 양복은 한 번 만들어지면 그 옷에 사람이 맞춰야 한다. 흔히들 말하는 양복의 핏(fit)은 한 치의 여유도 허락하지 않는다. 세계적인 패션 디자이너 칼 라거펠트도 디올 옴므를 입으려고 다이어트를 해야 했다는 에피소드가 양복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양복은 벨트를 조이고 넥타이를 꽉 매야 하는 옷이다. 그래서 양복을 잘 입으면 멋이 아니라 무슨 브랜드 이름마따나 스타일이 난다. 스타일과 석판에 무언가를 긁어서 새긴다는 뜻의 스타일러스(stylus)는 어원이 같다. 이어령 선생님이 언급한 대로 나를 긁고 깎아내서 만들어내야 하는 것, 한번 새겨지면 변형을 허락하지 않는 것이 스타일이다.

그래서 한복과 양복이 다르고 멋과 스타일이 다르다. 멋이 아니라 스타일을 따르게 되면서 사람들이 옷 입는 것이 많이 비슷비슷해졌다. 개성을 따른다고 하지만 이미 사회에서 개성이라고 용인되어 있는 정형(定形)을 따를 뿐인 경우가 많다. 대충 입는 것 같아도 정해진 방식대로 대충 입어야 하는 것이 현대 한국 패션이고 한국 패션의 비극이다. 피천득 선생님의 '수필'이라는 제목의 수필에 이런 구절이 있다.

"덕수궁(德壽宮) 박물관에 청자 연적이 하나 있었다. 내가 본 그 연적(硯滴)은 연꽃 모양으로 된 것으로, 똑같이 생긴 꽃잎들이 정연(整然)히 달려 있었는데, 다만 그 중에 꽃잎 하나만이 약간 옆으로 꼬부라졌었다. 이 균형(均衡) 속에 있는, 눈에 거슬리지 않는 파격(破格)이 수필인가 한다."

피천득 선생님이 눈에 거슬리지 않는 파격이라고 했던 혼자서 옆으로 꼬부라진 꽃잎 하나를 나는 한국인의 정서 속에 존재하는 멋이라고 본다. 정해진 규칙, 즉 정해진 스타일에 답답함을 느끼고 누가 뭐래도 내가 해보고 싶은 대로 청자 연적의 꽃잎 하나처럼 옆으로 꼬부라져 봐야 직성이 풀리는 그 한국인의 멋을 억누르지 말고 살려줘야 한다. 그것을 '멋대로 한다'며 부정적으로 취급하지 않고 '멋지다'고 인정해주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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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도 더 전, 학원 강사를 할 때의 일이다. 중학생 수학 수업에서 2차 함수를 가르치게 되었는데 그날따라 갑자기 학생들에게 2차 함수 그래프를 직접 그려보게 하고 싶어졌었다. 문제 풀려고 대충 그리는 것 말고 진짜로 모눈종이에 칸을 다 맞춰서. 그래서 수업시간에 모눈종이를 가지고 들어갔고 아이들은 낑낑대면서 그래프를 그렸다. 그 전까지 대충 오목한 컵 모양으로 그려놓고 x절편과 y절편 좌표만 표시할 때와 달리 모눈종이에 그래프를 직접 그리자 제곱값이 얼마나 가파르게 상승하는지를 바로 알 수 있었다. y는 x제곱이라는 단순한 함수만 하더라도 x가 4, 5쯤만 되면 모눈종이를 벗어났다. 그 날 그 수업 자체만 놓고 보면 문제도 하나도 안 풀고 진도도 거의 못 나갔지만 그 수업 이후로 학생들이 2차 함수를 친숙하게 느끼게 되었던 기억이 난다.

수학에도 실습이 필요하다. 예를 들자면 이런 거다.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나 때는 도형과 작도 문제를 풀 때 평행하지도 않은 선을 그려놓고 평행하다고 믿으면서, 대충 짜부라진 감자같은 것을 그려놓고 원이라고 여기면서 풀었다. 선생님들은 가끔 분필을 끼워 사용하는 커다란 칠판용 컴퍼스를 자와 함께 쓰셨지만 학생들이 자와 컴퍼스를 쓰는 일은 없었다. 이 때 만약 자와 컴퍼스로 이런저런 것을 작도하는 실습이 있었다면 얼마나 재미있었을까.

생각해보면 수학에도 실습거리는 많다. 운동장에 지름이 100 발자국 짜리인 원을 그린 후에 둘레를 따라 걸어보면서 진짜로 둘레가 314 걸음이 나오는지를 세어 봐도 좋을 것이고, 공을 가득 덮도록 색종이를 모자이크처럼 붙였다가 뗀 후에 색종이의 넓이를 구해서 공의 겉넓이가 진짜 4 곱하기 원주율 곱하기 반지름의 제곱인지를 확인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아니면 설날이나 추석 때 친척들 키를 다 재서 정규분포를 가정한 뒤 평균과 표준편차 값을 구해볼 수도 있을 것이고.

그런 실습을 통해서 학생들의 수학에 대한 관심도와 이해도를 향상시킬 수 있을 것이다. 피아노에 대해 공부하는 것과 피아노를 쳐 보는 것이 다르고, 요리 방송을 보는 것과 직접 요리를 해 보는 것이 다르고, 지구에서 달까지의 거리를 계산하는 것과 직접 우주선을 타고 달에 갔다 와 보는 것은 다르니까. 나중에 혹시 기회가 된다면 그런 교육을 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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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생 시절 국어 시간에 잘못된 언어 습관의 예로 초가집, 역전 앞 등의 표현을 배웠던 기억이 난다. 초가(草家)의 가(家)가 집 가 자이니 초가집이라고 하는 것은 같은 말을 두 번 반복하는 셈이라는 것이었다. 당시 그 논리는 이해는 갔지만 무언가 개운치가 않았다. 무의식중에 풀리지 않은 찝찝함이 있어서 그랬는지 그 후로 가끔씩 같은 말이 여러 번 반복된 단어들을 발견하면 생각에 빠지곤 했다. 손수건의 수(手)는 손 수 자이니 그러면 손수건과 수건이 같은 건가? 그런데 건(巾)이 수건 건 자이니 그러면 수건과 건도 같고, 결국 손수건은 건인가? 영지(靈芝)버섯의 지(芝)는 버섯 지인데 그러면 영지버섯은 영버섯버섯인가? 국어학자들은 초가집이 잘못된 표현이라고 하는 것 처럼 손수건도 잘못된 표현이라고 하려나?

초가집이 틀린 표현이라고 했던 국어학자들은 단어의 의미만 보고 가(家)와 집을 똑같다고 했다. 가(家)는 중국어에서 온 것이고 집은 순우리말이라는 차이를 보지 못한 것이다. 아무리 뜻이 같더라도 새마을과 신촌과 뉴타운은 쓰임새가 다른 것인데 국어학자들은 그것을 보지 못한 것이다. 역사학자나 사회학자 혹은 심리학자였다면 초가집과 초가가 같다는 주장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초가 뒤에 쓸데없이 중복되이 맹장처럼 붙어 있는 것 처럼 보이는 집이라는 글자는 한국인들이 외래 문화를 받아들이더라도 고유 문화를 어떻게 해서든 남겨놓으려고 끈질기게 노력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천 년 넘게 중국으로부터 강한 영향을 받으며 살아왔지만 한국인들은 초가에는 집을 붙이고 역전에는 앞을 붙이고 수건에는 손을 붙이면서 끈덕지게 자기 문화를 남겨 왔다. 일제시대에는 모찌를 꿋꿋이 모찌떡이라고 불렀고 영어가 들어오기 시작했을 때에도 갱(gang)을 깡(gang)패, 캔(can)을 깡(can)통이라고 부르면서 순우리말을 어떻게 해서든 남겨 왔다.

2010년대 들어서 한국인 대학원생들이 랩을 랩실이라고 부르는 것을 보게 되었다. 2000년대에는 없던 말이다. 랩은 연구실이니 랩실이라고 하면 연구실실이 된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나는 여기에서도 어떻게 해서든 한국 문화의 숨이 끊어지지 않게 하려는 한국인의 습관을 본다. 여기서 실(室)은 한자이긴 하지만 중국어가 아니라 한자 한국어로 쓰인 것이다. 세계 학문의 사실상 표준 언어가 영어가 되어 버려서 논문도 영어로 쓰고 다른 나라 연구자들과 교류도 영어로 해야 하는 시대이지만 한국의 대학원생들은 꿋꿋이 랩 뒤에 굳이 실을 붙여서 랩실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이다. 초가집과 모찌떡과 랩실이 있는 한 한국인과 한국 문화는 지금껏 그래 왔듯 앞으로도 끈질기게 살아 남을 것이다.
전산을 업으로 삼다 보니 습관적으로 최적화를 생각하게 된다. 코드를 이렇게 바꾸면 속도가 몇 퍼센트 빨라질까에서부터 시작해 몇 시 몇 분에 집에서 나가서 몇 번 버스를 몇 분 동안 기다리다가 그래도 버스가 안 오면 전철을 타고 가는 것이 소요 시간의 기대값을 가장 짧게 만들까 하는 생각에 이르기까지 최적화라는 주제는 항상 내 머릿속에 박혀 있다. 어쩌면 벽(癖)이라고 불러도 무리가 없을 것 같다.

그래서 집에서 설거지를 할 때면 종종 동시에 세탁기를 돌려 놓곤 했다. 세탁기는 무조건 한 시간동안 돌아야 하니 설거지를 하는 동안 세탁기를 돌려 놓으면 설거지가 끝날 때 즈음에 세탁도 얼추 끝날 거고, 그러면 시간 낭비 없이 바로 빨래를 널 수 있지 않는가. 이걸 전산 용어로는 파이프라이닝(pipelining) 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런 방식이 시간의 양은 최적화해주지만 시간의 질은 최적화해주지 않는다는 것을 요즘 깨닫고 있다.

설거지를 마쳐갈 때 즈음이면 커피 한 잔 내려 마시면서 조금이라도 쉬고 싶은 생각이 든다. 그러다가 책장에 꽂혀 있는 책도 한 번 꺼내서 뒤적거려 보게 되고, 아니면 노래라도 한 곡 듣게 될 것이다. 아니면 한 10분 정도 잠깐 누워서 눈을 감고 조용히 있을 수도 있겠지. 어쩌면 때맞춰 창 밖에서 짹짹거리는 새 소리를 듣게 될 지도 모른다.

그런데 설거지를 끝내고 나면 빨래도 딱 맞춰서 끝나 있으니 커피도 못 마시고, 책도 못 펼쳐 보고, 노래도 못 듣고, 잠깐 누워있거나 새 소리를 듣는 것은 더더욱 못한 채 바로 빨래를 널어야 한다. 그렇게 빨래를 다 널고 제습기까지 틀고 나면 마치 내일의 죠의 마지막 장면처럼 털썩 주저앉아서 "하얗게 불태웠어..." 라고 중얼거리게 된다. 시간이 많이 생기기는 했지만 그 시간은 내가 힘이 다 빠진 채 널부러져 있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죽은 시간이다.

사실 생각해보면 전산에서도 마찬가지다. 시간을 최적화하면 필연적으로 CPU 사용량은 올라가게 되어 있다. 쉽게 말해 스마트폰이 뜨끈뜨끈해지고 배터리가 빨리 닳게, '광탈하게' 되는 것이다.

이제는 시간의 양이 아니라 질을 생각해야 할 때이다. 레닌은 양이 곧 질이라고 했다지만 그 말은 적어도 설거지와 빨래 후의 쉬는 시간에는 적용되지 않는 것이 분명하다. 지금도 다 된 빨래가 세탁기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지만 무시한 채 이렇게 조금이라도 쉬려고 앉아 있으니 새 글 하나를 쓸 수 있지 않았나. 자, 이제는 설거지 할 때는 설거지만, 빨래 할 때는 빨래만 하자. 그 사이의 비는 시간은 최적화해서 없애버려야 하는 시간이 아니라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 기지개라도 키고 커피라도 한 잔 내려 마셔야 하는 생명의 시간이다.
한번 상상해보자. 콜라를 마시기 위해 사람들이 전용 잔을 산다. 콜라 재료의 원산지에 따라 콜라 가격에 차등을 둔다. 여럿이서 콜라를 마실 때에는 예의를 지켜야 한다. 누군가에게 콜라를 따라 줄 때에는 두 손으로 따라야 하며 잔이 비지 않은 상태에서 콜라를 더 따라주면 예의도 모르는 사람이라고 욕을 먹는다. 숙성 년도에 따라 저급 콜라와 고급 콜라가 구분되고 고급으로 갈 수록 가격이 한도 끝도 없이 올라간다. 고급 콜라를 마시는 것이 상류 사회의 척도인 양 취급되며 나중에는 콜라를 마시는 것이 정신 수양의 척도로까지 인식되어 콜라도(道)라는 것이 생겨난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이지만 콜라를 술이나 차로 바꾸면 그 순간 모두 말이 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말은 술과 차는 단순한 음료가 아니라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끼치는 문화 요소라는 뜻이다. 시선(詩仙), 시를 쓰는 신선이라고까지 불렸던 이태백은 對酒還自傾(대주환자경, "술을 대하니 다시 또 술을 기울이네" 라는 뜻)이라는 시구를 썼고 불교 선종의 창시자인 달마가 잠에서 깨려고 잘라버린 눈꺼풀은 차나무가 되었다고 한다. 술과 차는 이렇게 종교에까지 연결되는 음료인 것이다. 이태백이 시선(詩仙)이라고 불렸던 것과 달마 전설에서 알 수 있듯 도교의 음료는 술이고 불교의 음료는 차다.

술과 차는 모든 면에서 대조적이다. 술은 정신을 몽롱하게 만들지만 차는 정신을 맑게 한다. 술은 사람을 졸리게 하지만 차는 잠이 확 깨게 한다. 술을 마신 사람은 감정적이 되지만 차를 마신 사람은 이성적이 된다. 그래서 술은 밤의 음료이고 차는 아침의 음료이다. 술과 차라는 이 두 음료가 지금까지 좁게는 한국의, 넓게는 동아시아를 지배한 두 상반되는 사고방식을 대표해 왔다고 말해도 무리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근대에 들어 한국에 술도 차도 아닌 새로운 음료가 들어왔다. 잠이 확 깨게 하는 것은 차를 닮았는데 많이 마시면 감정적으로 흥분되게 하는 것은 술을 닮았다. 마시면 마실수록 정신을 빠릿빠릿하게 만드는 차의 특성이 있는가 하면 중독되게 만드는 술의 특성도 있다. 그런가 하면 색깔은 차처럼 은은하지도 술처럼 투명하지도 않은 속이 들여다보이지 않는 새까만 색이다. 바로 커피다.

커피는 맨 위에서 언급했던 술과 차의 모든 특성을 갖고 있다. 커피를 마시기 위한 전용 잔이 있고 커피 원두의 원산지에 따라 가격이 달라진다. 커피를 마시는 것은 세련된 문화로 취급되며 다도(茶道)에서만큼은 아니지만 커피를 만드는 도구들은 단순히 도구를 넘어서 예술의 언저리를 건드리고 있기도 하다.

그리고 술이 도교와, 차가 불교와 연결되듯 커피는 이슬람교와 기독교에 연결된다. 커피는 한동안 이슬람 문화권의 음료였다. 이슬람권에서는 종교 행사 중에 잘 깨어있기 위한 용도로 커피를 애용했고, 이슬람과 사이가 안 좋았던 유럽에서는 당연히 커피를 싫어해서 악마의 음료라고 부를 정도였다. 그렇지만 야사에 따르면 교황 클레멘스 8세가 커피가 너무 맛있어서 커피를 축복한 이후로 기독교권에서도 커피를 널리 마시게 되었다고 한다. 교황 클레멘스 8세의 임기가 임진왜란이 일어난 1592년에 시작되었고 우리나라에 커피가 들어온 것은 1800년대 후반이니 유럽과 한국의 커피 역사는 약 300년 정도 차이난다고 볼 수 있겠다.

이렇게 문화의 한 요소이며 종교로까지 이어지는 음료인 커피가 한국에서 인기를 끈 지도 벌써 수십 년이 지났다. 술과 차가 근대까지의 한국의 두 생활양식을 대표한다는 가설이 맞다면 현대 한국에는 술도 차도 아닌 커피로 대표되는 새로운 생활양식이 존재한다는 말도 맞는 말이 될 것이다. 한국의 커피스러운 생활양식이란 뭘까. 머릿속에 뒤죽박죽 떠오르는 많은 대답 중 하나만 꼽으라면 나는 '탈진'을 꼽겠다.

커피는 탈진한 사람들이 내일의 힘을 미리 끌어다 쓸 때 사용하는 음료다. 대학생들은 시험기간에 밤을 새기 위해 커피를 마신다. 똑같이 카페인이 들어있다고 해도 밤을 새기 위해 한밤중에 차를 마시는 학생을 나는 본 적이 없다. 직장인들은 점심시간에 나와서 본인들 표현대로 하자면 '살기 위해' 아메리카노를 테이크아웃해서 몇백 밀리리터씩 빨대로 쪽쪽 빨아 마신다. 그러다가 카페인에 내성이 생겨버린 사람들은 커피를 넘어서서 박카스나 레드불 같은 에너지 드링크를 마시기 시작한다.

오해를 풀기 위해 밝혀두자면 한국에는 커피를 음미하며 즐기는 애호가들이 물론 매우 많다. 여기서 말하려는 것은 어떤 음료를 마시는 전체 인구 중 탈진해서 에너지를 충전하기 위한 용도로 그 음료를 마시는 사람의 비율이 술이나 차보다 커피의 경우에 압도적으로 높다는 것이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위에 적었듯이 낮의 음료는 차였고 밤의 음료는 술이었다. 낮술이라는 단어가 따로 만들어졌어야 했을 정도로 술은 밤에 먹는 것이 일반적이다. 차는 낮에나 밤에나 다 마실 수 있지만 밤에 차를 마실 때에는 차분한 마음으로 잘 자기 위해 마시는 것이 일반적이다. 즉 낮에는 잘 깨어 있고 밤에는 잔다는 극히 상식적인 생활 양식이 술과 차에 모두 배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커피는 그것을 깨 버렸다. 밤에는 자야 하는데 억지로 깨어있기 위해 커피를 마신다. 그러니 늦게 자게 되어 다음날에 피곤해지고, 피곤하니 점심 때에 졸지 않으려고 커피를 마신다. 악순환의 반복이고 모든 것이 경쟁적으로 돌아가는 현대 사회가 만들어낸 슬픈 모습이다. 지금의 한국 사람들 중 많은 수는 '마시지 않고는 버틸 수가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커피를 마신다. 현대 사회가 한국에서 커피의 양적 팽창은 이루어냈지만 사람들이 커피를 진정 즐기게 하는 데에는 실패했다고 말할 수 있겠다.

에드워드 애비(Edward Abbey, 1927-1989)라는 미국의 유명 작가가 1982년에 쓴 Down the River라는 책에 이런 말이 나온다. "우리네 문화는 커피와 휘발유 위에서 돌아간다. 첫째 것의 맛이 둘째 것과 같을 때가 종종 있다. (Our culture runs on coffee and gasoline, the first often tasting like the second.)" 이 말은 현대 한국에서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한국의 커피는 지금도 종종 휘발유 맛인 것이다.
별 생각 없이 카톡 친구 명단을 죽죽 내리던 어느 날이었다. "150년을 살것처럼 인생을 계획하고 내일 죽을것처럼 오늘을 살자~!!" 라는 프로필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알고 지내는 고등학생의 프로필 문구였다. 그때는 '그래 나도 학생 때 비슷한 생각을 했었지' 하고 웃으며 지나갔는데 그 후로 자꾸 그 문구가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내일 죽을 것처럼 오늘을 산다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하는 생각이 잊을만 하면 다시 떠올라서 머리가 복잡했다. 보아하니 저절로 없어질 생각이 아닌 것 같아서 아예 작정하고 진지하게 파고들어 보기로 했다.

내일이 내 생의 마지막 날이라면 오늘 출근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가족하고 시간을 같이 보내겠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평생 일을 하지 않는 것이 '내일 죽을 것 처럼 오늘을 사는 것'의 모범답안이 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래서 문장을 약간 바꿔 보았다. '언제 죽을 지 모르는 것처럼 오늘을 살자!' 라고 하면 분석하기가 한결 수월해질 것 같았다. 프로필 문구에 특허 달려 있는 것도 아닌데 내가 조금 바꾸면 뭐 어때.

언제 죽을 지 모른다는 것은 내일 죽을 확률, 모레 죽을 확률, 글피에 죽을 확률 등이 다 똑같아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니 모든 날이 동등하게 중요해지고 한 날이 다른 날보다 더 특별하지 않게 되니 하루하루를 똑같이 성실하게 사는 것이 정답이 되겠다. 왜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옛말도 있지 않은가.

그런데 이렇게 '매일매일이 다 똑같으니 그냥 일상 속에서 살아가라' 라고 하고 끝내면 뭔가 싱겁고 허전하다. 그래서 더 파고들어 봤다.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그 말 속에 심오한 사상 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 열쇠가 있었다. 바로 '죽음'이다. 옛 사람들은 죽음을 생각하며 살아가는 것의 유익을 알았다. 라틴어 경구 중에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라는 말이 있다. 죽음을 잊지 말라는 뜻이다. 로마 사람들은 저렇게 경구를 만들어야만 겨우 죽음에 대해 생각할 수 있었던 모양이지만 한국 사람들은 일상 속에서 배고파 죽겠네, 웃겨 죽겠네, 졸려 죽겠네 하는 식으로 죽음을 상기해오고 있었다. 뭐뭐 해서 죽겠다는 표현을 부정적이라고 금지시킬 것이 아니다. 금지시켜야 할 것은 똑같은 말인데 라틴어로 메멘토 모리! 하면 괜히 멋있어 보이고 한국어로 배고파 죽겠다고 하면 부정적인 표현이라고 치부해 버리는 그 사대주의다.

하여튼간에 삶은 죽음을 인식할 때에 농밀(濃密)해진다. 몇년 전부터 유행하는 말 중에 욜로(YOLO)라는 것이 있다. You Only Live Once, 직역하면 너는 딱 한번 산다는 말인데 뒷일 생각 하지 말고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이든 질러버리라는 의미로 사용될 때가 많다. 21세 청년이 트위터에 욜로라고 적어놓고 시속 190km로 음주운전을 하다가 교통사고로 사망한 일이 그 한 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 욜로가 삶에 대해서만 말하고 죽음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기 때문이다. 같은 뜻이어도 You Will Surely Die, '너는 언젠가 반드시 죽어'라는 문구가 있다면 욜로와는 분위기가 많이 다를 것이다. 적어놓고 나니 저런 문구가 이미 있다는 것이 생각났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man is destined to die once)" 라는 성경 구절이다.

고등학생의 카카오톡 프로필 문구에서 시작된 생각이 메멘토 모리와 욜로를 거쳐서 성경까지 왔다. 내일 죽을 것처럼 오늘을 산다는 것은 특정한 삶의 방식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죽음을 잊지 말고 하루하루를 소중히 여기며 살아가는 삶의 태도를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드디어 해결을 보고 나니 속이 다 시원하다. 맘 편히 잘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카톡을 켜 봤더니 그 학생이 그새 프로필 문구를 바꿔 놨다. 이번에는 꿈과 희망과 가능성을 이야기하고 있다. 아 모르겠다. 오늘은 여기까지. 내일이 있기 때문에 오늘은 이만 자야지.
"엄마, 감기 걸리면 어느 병원에 가야 돼?"
"이비인후과에 가야지"
"이비인후과는 어디가 아플 때 가는 거야?"

이비인후과는 한자로 耳鼻咽喉科라고 쓴다. 말 그대로 귀(耳, 귀 이), 코(鼻, 코 비), 목구멍(咽喉, 인후)을 다루는 과(科)이다. 중국 사람에게는 아주 직관적이어서 어린이도 알아들을만한 이름인데 (중국어에서는 한 글자를 빼서 이비후과라고 한다) 우리말에서는 한자를 알아야만 이해할 수 있는 어려운 이름이다.

의학 용어가 이해하기 쉬운 말로 바뀌었으면 좋겠다. 이비인후과가 귀코목구멍과였다면 이름만 보고도 어디가 아플 때 가는 병원인지 바로 알 수 있을 것이다. 영어에서 이비인후과를 otorhinolaryngology 라는 어려운 단어 대신에 ear, nose and throat (ENT) 라고 부르고 있는 것을 볼 때 못 할 것도 없다. 그렇게 되면 위의 대화가 이렇게 바뀌지 않을까?

"엄마, 감기 걸리면 어느 병원에 가야 돼?"
"감기 걸리면 콧물 나고 목이 아프지?"
"응"
"그러면 귀코목구멍과 가야지."
"아, 그렇구나!"

대학교 기숙사 주위에는 고양이가 많았다. 그 고양이들을 학교 학생들은 학교 이름을 따서 xx캣이라고 불렀다. 고양이들의 주식은 학생들이 먹고 남긴 배달 음식이었다. 기숙사에 사는 학생들은 종종 치킨, 피자, 족발, 두루치기 등의 다양한 음식을 시켜 먹곤 했다. 학생들이 하도 배달 음식을 많이 시켜먹으니 학교에서 아예 기숙사 건물 입구에 그릇 반납용 선반을 설치해 주었는데, 학생들이 그 곳에 배달 음식 그릇을 가져다 놓고 가면 고양이들이 슬금슬금 다가와서 잔반을 먹곤 했다.

어느 해 겨울이었다. 겨울학기 수업은 듣는 학생이 적어서 학교가 휑했다. 학교가 있던 곳은 평소에 눈이 거의 안 오는 지역이었는데 그 날 따라 눈이 엄청나게 왔었다. 쌓인 눈을 밟으며 밤에 기숙사로 돌아가는데 기숙사 입구에 고양이 두 마리가 있는 것이 보였다. 학교 고양이들은 학생들을 보면 멀찌감치서부터 도망가곤 했는데 얘네들은 희한하게도 나를 보고도 가만히 있었다. 기숙사 입구에 다 가서 보니 고양이들이 비어있는 배달음식 퇴식구를 바라보고 있었다. 겨울방학이라 학생들이 다 집에 가고 나니 잔반이 주식인 고양이들이 먹을 게 없어진 것이었다. 게다가 눈이 와서 추워서 그랬는지 그 고양이들은 눈이 쌓이지 않은 기숙사 처마 밑에서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못 먹어서 그랬는지 학기중과 비교하면 매우 홀쭉해진 모습이었다.

카드키를 찍고 기숙사로 들어가려는데 자꾸 고양이들이 마음에 걸렸다. 그래도 나랑은 상관없는 일이지 하며 계단을 올라가려는데 발이 안 떨어졌다. 고민을 하다가 학교 매점에 가서 천하장사 소시지를 샀다. 매점까지 갔다 오는 데 시간이 꽤 걸렸는데도 고양이들은 기숙사 입구에 그대로 있었다. 천하장사를 까서 조금 잘라서 던져줬더니 허겁지겁 먹었다. 한 조각 또 던져줬더니 여전히 잘 먹었다. 이번에는 천하장사를 길게 까서 손에 잡고 내밀어 봤더니 가까이 와서 순식간에 다 먹어버렸다. 원래는 고양이에게 천하장사를 하나만 주고 나머지는 내가 먹으려고 했는데 어쩔 수 없이 더 줘야 했다. 두 개째가 지나고 세 개째가 되자 배가 불렀는지 잘 안 받아먹길래 나중에 먹으라고 남은 천하장사를 다 던져주고 방으로 올라갔다. 지금까지 살면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야생 고양이에게 음식을 줘 본 경험이다.

주인 없는 야생 고양이를 일컫는 표준어는 도둑고양이다. 애묘인들 중에는 도둑고양이 대신 길고양이라는 말을 써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나는 도둑고양이라는 말이 싫지 않다. 꿈보다 해몽이라고, 고양이들은 귀여워서 사람들의 마음을 훔쳐가기 때문에 도둑고양이라고 해석하면 되지 않을까. 그리고 따지고 보면 이 녀석들은 내가 먹으려던 천하장사까지 자기들이 다 먹어버렸으니 도둑이 맞다.

옛날 사진을 뒤져보니 그 때 찍은 사진이 아직 남아 있다. 흰 색 바탕에 검은 색 얼룩 무늬가 있던 고양이. 고양이들 평균 수명을 생각해보면 아마 지금은 이 세상에 없을 거다. 인터넷에 보면 고양이한테 잘 해 줬더니 고양이가 쥐나 벌레를 선물로 잡아왔다는 이야기도 많던데 저 고양이들은 내 천하장사를 다 먹어 놓고는 고맙다는 말 한 마디 없이 입을 싹 닦아 버렸다. 그래도 이렇게 10년 가까이 지난 지금 웃으며 옛날을 추억하게 해 줬으니 이 녀석들은 이미 나한테 천하장사보다 훨씬 큰 보답을 해 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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