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생 때 국어 선생님이 그 달의 필독 도서였던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에 대해 설명하시면서 여기서의 기술은 아트(art)이지 절대로 테크닉이 아니라고 강조하셨던 적이 있었다. The Art of Loving이라는 원제에서 영단어 art가 의미하는 바를 정확히 표현하는 한국어 단어가 없어서 어쩔 수 없이 기술로 번역되었다는 설명과 함께. 그 때부터 지금까지 내 머릿속 한 구석에는 art를 정확히 표현해주는 한국어 단어를 찾고자 하는 욕구가 항상 자리잡고 있게 되었다.

첫 후보 단어를 찾아낸 것은 그로부터 약 십 년 정도 후였다. 장자에 나오는 포정이 문혜군 앞에서 소를 잡는 이야기가 실마리가 되었다. 짧은 이야기 중에서도 앞 부분만 간단히 옮기면 다음과 같다.

포정이 문혜군(文惠君)을 위해 소를 잡은 일이 있었다. 그가 소에 손을 대고 어깨를 기울이고, 발로 짓누르고, 무릎을 구부려 칼을 움직이는 동작이 모두 음률에 맞았다. 문혜군은 그 모습을 보고 감탄하여 "어찌하면 기술이 이런 경지에 이를 수가 있느냐?"라고 물었다. 포정은 칼을 놓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제가 반기는 것은 '도(道)'입니다. 손끝의 재주 따위보다야 우월합니다. 제가 처음 소를 잡을 때는 소만 보여 손을 댈 수 없었으나, 3년이 지나자 어느새 소의 온 모습은 눈에 띄지 않게 되었습니다. 요즘 저는 정신으로 소를 대하지 눈으로 보지는 않습니다. 눈의 작용이 멎으니 정신의 자연스런 작용만 남습니다. (후략)"

이 이야기를 읽으며 기술이 기술 자체로 궁극의 경지에 다다르는 순간 예술의 문턱을 넘게 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예술의 경지에 오른 기술이 art이지 않을까, 그러면 기술이 예술을 만나는 지점이니 기예(技藝)라고 번역하면 되지 않을까. 그렇게 한동안 The Art of Loving을 나 혼자서는 '기예(技藝)로서의 사랑' 정도로 번역하며 몇 년을 보냈다.

그러던 중 얼마 전에 갑자기 번뜩 한 생각이 들었다. Art를 어떻게 번역할지를 고민할 것이 아니라 영어권 화자들이 동아시아의 어떤 단어를 art로 번역해갔는지를 보면 확실하겠다는 생각이었다. 이건 정말 제대로다 하는 생각이 들어서 흥분된 마음으로 동아시아 문학 중 영어로 번역된 제목에 art가 들어간 글을 찾기 시작했고, 의외로 매우 쉽게 그런 책을 찾았다. 손자병법, The Art of War.

손자병법은 단순히 전쟁 잘 하는 기술을 적어놓은 책이 아니라 전쟁과 평화를 바라보는 관점과 사상을 전달함으로써 독자의 정신을 고양하는 책이다. 이러한 부류의 글을 한자 문화권에서는 간단하게 법(法)이라고 불렀던 것이고, 손자(孫子)가 쓴 전쟁(兵)에 대한 법(法)을 영어권에서는 The Art of War로 옮겨갔던 것이다.

그러니 에리히 프롬의 The Art of Loving은 사랑의 기술이니 기예로서의 사랑이니 할 필요 없이 간단명료하게 '사랑하는 법', 아니면 더 줄여서 '사랑법' 이라고 하면 될 일이었다. 이렇게 거의 20년에 걸친 고민이 드디어 끝이 났다.

더하기와 플러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올라갔을 때 가장 낯설었던 일은 수학 선생님이 +를 더하기가 아니라 플러스라고 읽었던 일이다. 선생님 뿐만 아니라 학원에서 속칭 "선행학습"을 해 온 아이들은 다들 더하기 대신 플러스라는 말을 사용했다. 빼기도 마이너스가 되어 있었다. 어색했고 이상했다. 그렇게 일 더하기 일도 아니고 원 플러스 원도 아닌 일 플러스 일이라는 이상한 언어로 수학을 배웠다. 더하기는 초등학생이나 쓰는 용어이니 중학생이 되었으면 플러스 정도는 써 주어야 한다는 이상한 암묵적인 분위기가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왜 곱하기와 나누기는 타임즈, 디바이디드 바이라고 안 읽었나 싶다.

안 중요한 학문이 어디 있겠냐마는 수학은 정말 중요한 학문이다. 그리고 중요한 학문일수록 어휘의 우리말화가 중요하다. 잘 만들어진, 혹은 잘 번역된 전공 용어는 개념을 쉽게 이해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된다. 다행히 고등학교 수준 까지의 수학 용어는 우리말로 대부분 잘 옮겨진 편이다. 경우의 수, 제곱, 사다리꼴, 꼭짓점, 원뿔곡선 등 좋은 우리말 용어가 많다.

의아한 점은 대학교에 가면 다시 사람들이 영어 용어를 쓰기 시작한다는 점이다. 마치 중학교에 가자 더하기를 플러스라고 했던 것 처럼 대학에 가면 행렬을 매트릭스라고 하게 된다. 왜 그러는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말한다. 새로운 개념을 원서를 통해서 배우다 보니 우리말 용어를 쓰고 싶어도 우리말 용어가 없다고. 그렇게 따지면 자연수, 실수, 정수도 원래는 없던 말이었다. 아니, 인류 전체에게 그런 개념 자체가 없던 적도 있었다. 새로운 개념이 등장하면 그에 맞는 새로운 이름을 만들어서 붙여주면 될 일이다. 김춘수 시인도 이름을 제대로 불러줘야 나에게 와서 꽃이 된다고 하지 않았나.

수학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대부분의 이공계 전공 과목이 그렇다. "이콜라이에서 진 뿔려서 젤러닝 한 다음에 마말리안 쎌에 넣었습니다" 같은 말이 나온다. 대장균에서 유전자 증폭시켜서 전기영동 한 후에 포유류 세포에 넣었다고 하면 될 것을.

각 전문 분야에서 우리말 용어가 더 많이 사용되었으면 좋겠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별로 없지만 작은 변화라도 만들고 싶은 마음에 예전에 중고등학생 수학 과외를 할 때면 꼭 더하기, 빼기라는 말을 썼다. 헷갈릴 일이 없는 상황이면 세모, 네모도 썼다. 단 한 번도 학부모들에게 그에 대한 불만을 들은 적이 없고 그렇게 일 년 이상 과외를 했던 학생도 있는 걸 보면 적어도 더하기 빼기 세모 네모를 썼다고 해서 학생들 수학 실력이 떨어지지는 않았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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