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눅스에서 프로그램을 돌려 놓고 한참 뒤에 보면 화면에 Killed 라는 글만 떠 있고 프로세스가 죽어 있는 경우가 가끔 있습니다.

그럴 때에는

dmesg | grep -E -i -B100 'killed process'

라고 치면 프로세스가 강제 종료될 때의 상황을 자세히 볼 수 있습니다.

제 경우에는 대부분 Out of memory가 원인이었습니다.


(참고한 자료: https://stackoverflow.com/questions/726690/who-killed-my-process-and-why)

원래 우리말의 '그'는 남자도 여자도 다 될 수 있는, 성별과 관계가 없는 단어입니다. 성별을 확실히 하고 싶으면 '그 남자', '그 여자' 같이 쓰면 됩니다. 90년대 말과 2000년대 초에 인기를 끌었던 만화 제목에도 "그 남자 그 여자"라는 표현이 나오고, 아직도 '그'의 반말형인 '걔'에는 성별이 들어있지 않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남자를 '그'로, 여자를 '그녀'로 쓰는 글이 많이 보입니다. 아마 영어의 he와 she를 번역하던 사람들이 이런 용법을 만들어낸 것 같습니다. 그나마 예전에는 문어체에서만 이런 표현이 사용되었는데 요즘은 드라마 등에서 구어체로까지 사용이 됩니다.

영어는 무조건 성별을 밝혀야 하는 언어이지만 한국어는 성별을 밝히지 않아도 되는 언어입니다. 눈사람만 해도 우리말에서는 눈 + 사람이지만 영어에서는 snow + man, 눈 남자가 됩니다. 이렇게 man이 남자도 되고 사람도 되는 영어의 특징이 반지의 제왕 영화판에 잘 나옵니다. "그 어떤 사람(man)도 나를 죽일 수 없다!"라고 괴물(나즈굴)이 말하자 공주(에오윈)가 "나는 남자(man)가 아니야" 라고 말하면서 괴물을 베어 버립니다. 한국어로 번역이 안 되는 대사입니다. 한국어의 '사람'이라는 말은 남녀를 다 포함하기 때문입니다.

요즘 영어는 이 성별 문제로 고민하고 있습니다. 불특정한 사람에 대해 이야기할 때에 he라고 쓰나 she라고 쓰나 충분한 표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매번 he or she나 s/he라고 쓰면 글이 매끄럽지가 않습니다. 오죽하면 성별에 상관없는 ze라는 단어를 만들자는 말까지 나올까요.

애초에 한국어의 '그'는 이런 성별 문제가 없는 편리한 단어인데 번역가들이 이 편리한 단어를 망쳐버렸습니다. 이제라도 늦지 않았으니 남자는 '그 남자', 여자는 '그 여자', 그리고 성별에 상관 없이 모든 사람은 '그'라고 쓰는 용법이 다시 살아났으면 좋겠습니다. 영어에서는 성별에 상관없이 사람을 지칭하려고 새로운 단어까지 만드는데, 왜 우리는 이미 있는 좋은 '그'라는 단어를 자꾸 반쪽으로 만들려고 하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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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감히 다가갈 수 없는 존재라면 달은 내가 친근하게, 혹은 물끄러미 바라볼 수 있는 존재다. 해는 오래 쳐다볼 수 없지만 달은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계속 쳐다볼 수 있다. 무엇이 됐건간에 하나를 오랫동안 보고 있으면 이런저런 생각이 어디에서부턴가 슬그머니 조심스럽게 나타나서 자기 이야기를 풀어놓게 마련인데 달은 거기에 추가로 지루하지 않도록 매일 조금씩 모양과 시간까지 바꾸어 주니, 옛부터 수많은 사람들이 달을 노래해 온 데에는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달을 오랫동안 보고 있으면 무슨 생각이 들까? 달은 밤에 뜬다. 밤은 어둡다. 사람은 어두우면 쉬 감상적이 된다. 그래서 달이 나오는 시나 노래에는 대체로 감성이 풍부히 녹아 있다. "해야 솟아라, 해야 솟아라, 밤 새도록 어둠을 살라 먹고" 라는 박두진 시인의 시 '해'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해를 노래하는 노래는 씩씩하게 마련이다. 하지만 달을 보는 사람은 먼 옛날 백제의 누군가가 "달하 노피곰 도다샤, 어긔야 내가논대 졈그랄 셰라 (달님, 높이 돋아 주세요. 날이 저물까 두렵습니다.)" 라고 노래했던 그 때나 지금이나 서정적이 되고 만다. 그 이순신 장군마저도 한산섬 달 밝은 밤에는 "어디서 일성호가(一聲胡笳)는 남의 애를 끓나니" 라고 밖에 말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달과 사람 마음 사이의 이러한 관계를 잘 포착해낸 노래가 달빛이 자기 마음을 대신 표현해준다는 등려군의 대표곡 월량대표아적심(月亮代表我的心)이다.

얼마 전에 우연히 보름달을 봤다. 보는 순간 '아, 다음 보름달은 추석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5년 전 추석 때, 홍콩 생활이 가까스로 1년이 되었던 그 때에는 이국의 하늘을 바라보며 고독을 마음에 품었다(異國の空見つめて孤獨を抱きしめた)던 엑스 재팬의 노래 가사가 자꾸 입에서 맴돌았었다. 그게 벌써 5년 전이고, 강산이 절반은 바뀌었고 나한테도 참 많은 일이 있었다.

보름달을 지나고 하루하루 사그러드는 달이 참 친근하게 느껴지는 요즘이다. 보아는 달을 보름이 지나면 작아지는 슬픈 빛이라고 노래했지만 적어도 지금의 나에게는 작아지는 달이 슬프지 않다. 사실 달 자체는 슬프거나 기쁘거나 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달은 그저 그 곳에 있을 뿐이고, 그 달을 보는 사람이 자기 마음을 거울처럼 달에 비추어 보는 것일 뿐이다. 달은 슬픈 사람에게는 슬프게, 기쁜 사람에게는 기쁘게 보인다. 그런 의미에서 달은 마음을 비추는 거울이다.

이름에부터 달이 들어가 있는 신라의 유적지 월성 옆에는 월지, 달 연못이라는 연못이 있다. 안압지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한 그곳에서 주령구라는 신라 시대의 14면체 주사위가 발견됐다. 술자리 벌칙용 주사위인데 벌칙 중 하나가 월경일곡(月鏡一曲), '달 거울이라는 제목의 노래 한 곡 부르기' 이다. 가사 내용은 모르겠으나 달이 자기 마음을 거울처럼 비춰준다는 내용이 아니었을까 내 맘대로 짐작해본다. 600년대에 경주에 살던 신라 사람이나 2000년대에 홍콩에 사는 대한민국 사람이나 달을 보면서 생각하는 건 다 비슷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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