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2년에 이어령 씨가 일본어로 "축소 지향의 일본인"이라는 책을 썼다. 이 책은 일본에서 출간되자마자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1994년에는 일본론 10대 명저에 뽑히기까지 했다. 이 책에 대한 많은 평 중 내게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동경대 교수 하가 도루 씨의 평이다. "일본인이 한국에서 한국말로 이처럼 능란하게 한국 문화를 논할 날은 대체 언제쯤이면 올 것인가."

이 책은 이전 일본론들의 오류를 지적하면서 시작된다. "국화와 칼"을 위시해서 서양에서 출판된 수많은 일본론의 많은 부분은 사실 일본론이 아니라 동북아론이었다는 것. 바닥에 앉고 젓가락을 쓰고 쌀밥을 먹는 일본인들을 보며 서양인들은 그것이 일본만의 특징이라고 생각하는 오류를 범했다.

그러면 일본인이 쓴 일본론은 괜찮을까. 이 책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은 스스로를 서양과는 끊임없이 비교했으면서도 정작 바로 옆나라, 역사 속에서 끊임없이 교류해 온 한국과는 비교해 본 적이 없었다는 것. 이어령 씨는 그 한 예로 일본에서 나온 책에 일본이 세계에서 유일하게 인분을 비료로 사용했던 나라라는 이야기가 실렸던 것을 지적한다. 똥 얘기로 굳이 다투고 싶지는 않다는 말과 함께.

이렇게 시작되는 "축소 지향의 일본인"은 과장을 보태지 않고 한 장 한 장을 넘길 때 마다 감탄이 나오는 통찰력으로 가득 차 있다. 특히나 같은 뜻의 단어가 서로 다른 언어에서 어떻게 다르게 표현되는지를 파고드는 이어령 씨의 글쓰기 스타일이 잘 살아있기 때문에, 일본어를 공부해 본 사람에게는 이 책의 재미가 세 배, 네 배 배가될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이어령 씨의 접근 방식, 즉 일본을 알려면 일본을 한국과 비교 및 대조해보아야 한다는 말은 한국론에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어느 나라 론(論)이라는 것은 비교할 대상이 있어야만 성립되는 것이다. 이 지구에 나라가 오직 한국 하나 뿐이라면 "한국적인 것이 무엇인가" 라는 질문은 무의미한 것이 될 것이다.

내가 홍콩에 살면서 느꼈던 것은, 한국 사람들은 큰 것을 참 좋아한다는 것이었다. 중국 사람들이 스케일이 크지 않냐고? 중국 사람 이름에서 작을 소(小)자를 보기는 쉬워도 클 대(大)자를 보기는 어렵다. 홍콩을 대표하는 영화배우 이소룡(李小龍)은 작은 용(小龍)이지 큰 용이 아니었고, 개혁개방을 추진했던 인물은 등소평(鄧小平)이었지 등대평이 아니었다. 중국에서는 친한 사람끼리 이름 앞에 작을 소(小)자를 붙여서 부른다. 중국의 유명 IT 기업인 샤오미는 중국어로 좁쌀이라는 뜻인데 한자를 글자 그대로 보면 小米, 작은 쌀이 된다.

한국은 어떤가? 이름에 클 대(大)가 들어간 한국 사람은 많이 봤어도 작을 소(小)가 들어간 사람은 본 적이 없다. 홍콩 옆 마카오에 가면 한국 최초의 로마 가톨릭 신부인 김대건(金大建) 신부의 발등 뼈와 목상이 있다. 우리나라 15대 대통령은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이었다. 다 이름에 클 대(大)가 들어간다. 13대 대통령인 노태우(盧泰愚) 대통령 이름에는 클 대(大)보다도 더 큰 클 태(泰)가 들어가 있다. 하다못해 컵라면도 왕(王)뚜껑이라고 부르는 게 한국식 이름이다. 회사 이름에도 대우, 대림처럼 클 대(大)를 쓰면 썼지 작을 소(小)를 쓰지는 않는다.

스마트폰은 컴퓨터를 한 손에 들고 다닐 수 있을 정도로 작게 만든 물건인데, 이게 한국에 들어오자 크기가 커졌다. 한국인보다 평균 체구가 큰 미국인을 대상으로 만든 아이폰의 화면 크기는 2011년 10월에 발표된 아이폰 4s 시절까지 3.5인치였는데, 한국에서는 2011년 9월에 5.29인치짜리 갤럭시 노트가 나왔다. 물론 2010년에 델 스트릭이라는 제품이 나오기는 했었지만 실질적으로 패블릿 시대를 연 것이 갤럭시 노트라고 말하는 것에 무리는 없을 것이다.

왜 한국인은 큰 것을 좋아하게 되었을까. 일본이 섬나라라고 하지만, 사실 일본은 혼슈만 해도 한반도보다 클 정도로 넓은 나라다. 그런데 왜 일본에서는 SUV까지도 소형으로 만들고, 왜 한국에서는 큰 차가 인기가 많은지. "축소"라는 키워드로 일본을 읽어보는 것 처럼 "거대화"라는 키워드로 한국을 읽어보는 것이 의미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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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지하철의 태자 역과 삼수이포 역 사이에는 바운더리 거리라는 도로가 있습니다. 지금은 그저 많고 많은 도로 중 하나일 뿐이지만 예전에는 이 곳이 영국령 홍콩과 청나라의 경계였고, 나중에 영국이 신계 지역을 99년간 조차하게 된 후에는 이 곳이 영국이 할양받은 땅과 조차받은 땅을 나누는 기준이 되었습니다. 하드 디스크 정리하다가 몇 년 전에 찍은 사진이 나와서 올려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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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24절기의 하나인 청명절이다. 홍콩에서는 이 날이 꽤 중요한 휴일이다. 청명절이 되면 홍콩 사람들은 아침부터 조상들의 묘를 찾는다. 우리 식으로 말하면 성묘를 가는 셈인데, 흙을 둔덕처럼 쌓아 놓고 풀이 자라게 하는 우리 무덤과는 달리 홍콩 무덤은 돌로 되어 있어서 벌초를 할 일은 따로 없다. 무덤을 찾은 사람들은 보통 향을 피우고 내려온다.

내가 사는 아파트 단지 입구에서 횡단보도 하나만 건너면 공동묘지 입구이기 때문에 청명절은 일년 중 우리 집 근처에 사람이 제일 많은 날이다. 휴일이라 오랜만에 늦잠을 잔 뒤 일어나 창 밖을 보니 역시나 수많은 사람들이 줄지어 공동묘지로 가고 있었다.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경찰들까지 와서 일종의 사람 교통정리를 해 주고 있었다.

밀렸던 집 청소를 하고 늦은 오후에 집에서 슬슬 나왔다. 청명절은 24절기에서 춘분 다음이라 대충 겨울이 다 지나가고 봄 기운이 완연해질 즈음이 되어 집 청소하기에 좋은 날이다. 설렁설렁 전철역 한 정거장 거리를 걸어서 평소에 자주 가는 카페에 왔다. 간만에 읽을 책도 한 권 가지고.

그런데 카페가 꽉 차 있었다. 인구밀도가 높은 홍콩에서 카페에 자리가 없는 것이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지만 오늘은 유난히 심했다. 보통은 모르는 사람과 테이블을 같이 쓸 정도로는 자리가 있는데 오늘은 정말 카페가 빽빽했다. 나보다 먼저 커피를 산 사람들이 자리가 비기만 하면 가서 앉으려고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어떻게 하지 하다가 그냥 커피를 사 들고 바깥 공원 벤치로 나왔다. 더 밝고 더 쾌청하고 더 공기 좋은 밖을 두고 내가 굳이 실내에서 경쟁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공원에는 필리핀과 인도네시아에서 온 가정부들이 많았다. 홍콩 인구가 대략 700만 명인데 그 중 30만 명이 외국에서 온 가정부다. 전체 인구의 약 4퍼센트이니 꽤 큰 집단이다. 홍콩은 인종 구성이 참 다양하다. 동남아 출신들도 꽤 많고, 한국 사람과 일본 사람도 많다. 인도 사람들도 많고 서양인도 많다. 중국 본토에서 온 사람들도 매우 많다. 홍콩 토박이들도 깊이 따지면 다시 네 그룹으로 나뉜다.

그런데 나는 이 여러 집단들이 섞이는 것을 거의 보지 못했다. 지금도 그렇다. 홍콩 사람들은 실내에 있고 외국인 가정부들은 공원에 있다. 나만 이도 저도 아니다.

내가 본 홍콩은 다양한 집단이 서로 전혀 섞이지 않는 모자이크같은 도시다. 아니, 모자이크는 여러 점이 골고루 분포해 있기라도 하지, 홍콩은 비슷한 점 끼리 군집을 이루고 있는 모습에 가깝다. 홍콩 사람들은 홍콩 사람들끼리만, 중국 본토 사람들은 본토 사람들끼리만 주로 어울린다. 서양인들은 아예 모여 사는 지역이 정해져 있다. 주말이면 소풍을 나오는 외국인 가정부들도 출신 국가에 따라 모이는 공원이 다르다. 한국인, 일본인도 대부분 모여 산다. 한국 여행책에서 추천한 맛집에 가 보면 손님이 온통 한국 사람 뿐이다. 분명 같은 시간에 다른 어떤 식당에는 일본인들만 모여 있었으리라.

그래서 홍콩에서 6년을 살았어도 내가 아는 홍콩은 지극히 일부분이다. 광동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해지지 않으면 나는 영원히 홍콩에서 이방인으로, 수박 겉만 핥으며 살 수밖에 없다. 가끔, 아주 가끔 광동어를 잘 배워서 외국인으로서 홍콩 토박이들의 사회에 잘 섞이는 사람들을 볼 때가 있다. 그런 사람들은 무슨 여행책 제목마따나 홍콩을 100배 즐기고 있다.

말을 배운다는 건 사고방식과 문화를 배운다는 뜻이다. 사고방식이 다른 사람을 두고 "말이 안 통하는 사람"이라고 하는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나보다 20살은 어린 사람이 나를 유(you)라고 불러도 기분나쁘지 않을 때가 영어를 제대로 배운 때이고, 상대방이 나에게 호의를 베풀어주었을 때 아리가또가 아니라 스미마셍이 튀어나오는 때가 일본어를 제대로 배운 때다. 그래서 외국어를 제대로 배우면 자기가 사용하는 언어에 따라 성격도 바뀌고 목소리 톤도 바뀐다.

올해에는 광동어 실력이 좀 많이 늘었으면 좋겠다. 6년간 이방인으로 살았으니 7년째에는 홍콩을 깊이 이해하게 되었으면 좋겠다. 내년 청명절에는 그렇게 되어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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